여전히 옛사랑을 잊지 못하고 부여안고 살아가는 정인의 아버지도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다. 자기만의 기억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자기 멋대로 하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의 입장은 아랑곳없다. 이해하려고도 알려고도 들지 않는다. 매리의 아버지더러 살 빼라고 한 사이즈 작은 양복을 맞춰주는 것은 그다운 소심한 복수.
오로지 그것이 딸을 위하는 것이라 여기며 철없이 달려드는 매리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하기는 철이 없기로는 강무결의 어머니도 뒤지지 않는다. 모두가 자기 세계 안에 갇혀 주위를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아이들은 방치된 채 자기들끼리 어른이 되어 간다. 어른이 되지 못한지도 모른 채.
아버지와 위매리가 사이좋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는 정인의 표정이 인상깊다. 위매리가 잠에서 깨어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어떻게 하면 메모가 잘 전달될까 한참을 고민하는 것은 정인다운 어른스러움일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 어른이 되어 버란 아이는 항상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게 된다. 설사 그것이 거짓된 것이고 단지 조각에 불과한 것이라 할지라도. 매리의 아버지가 사위라 불렀을 때 표정이 바뀐 듯 보인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위매리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실수처럼 무심코 튀어나온 "엄마"라는 말. 그것은 진심일 것이다. 고작 몇 달 빨리 태어났다고 누나라 하는 것에 그가 반발하지 않는 이유다. 그가 위매리를 도와주는 것은 어쩌면 엄마를 보살펴야 했던 사정과도 관계가 있다. 그가 밴드의 멤버들에 집착하는 것도 단지 밴드라고 하는 의리 하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에게는 가족이 필요하고, 엄마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엄마란 그의 기억에 보살펴주어야 하는 대상이다. 무심코 얻어먹은 손수 차린 밥상이 어색할 정도로. 아이는 고집이 강하다.
어른인 척 하는 위매리는 그러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역시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 버린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결혼이라는 당면한 상황에 대해 그녀 역시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잃게 된다. 밥을 차려주고 장갑을 떠줄 때는 엄마가 되지만, 결혼을 하기 싫은 마음에 강무결에게 도움을 구할 때는 보호를 바라는 아이가 되어 버린다. 나만을 봐주었으면 싶고, 나만을 위해주었으면 싶고. 서준과 함께 있는 강무결을 보면서 느끼는 위매리의 배신감은 강무결에 대한 사랑이 아닌 보호할 대상을 빼앗긴데 대한 상실감이었다. 강무결의 위매리에 대한 집착도 마찬가지다.
강무결이 위매리에 키스를 해 버린 이유도 그것이다. 아무리 어른인 척 해도 아직 아이다. 아직 아이인데 주위에서 이것저것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해 온다. 자신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더구나 위매리는 계속해서 자기에게 보호를 요청해 온다. 동생을 가져 본 오빠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조차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매달리는 동생에 대한 증오를. 강무결에게 위매리는 어머니이며 동생이며 또한 자신이다. 그것은 위매리에 대한 복수인 동시에 어머니에 대한 복수이며 그의 집착이고 사랑이다.
오히려 어른스런 차림을 하면서 위매리는 비로소 어른의 꺼풀을 벗고 아이가 된다. 오늘의 위매리는 확실히 아이였다. 그리고 그런 아이의 거짓말에 순순히 넘어가주는 정인의 순진함 또한 아이의 그것이었다. 강무결의 위매리에 대한 집착과 분노 또한. 더불어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 아버지와 아버지와 어머니.
흥미로웠던 것은 정인이 제작하는 드라마에 대한 평가. 위매리는 말한다.
"너무 마니아적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유로 편성에서 밀렸다고 하자 대안을 제시한다.
"아버지와 볼 수 있게 가족 이야기를 넣으면 어떨까?"
정인이 일본에서 살다가 왔다. 역시 이해해 버렸다. 일본 드라마가 그렇다. 일본 드라마와 한국 드라마의 가장 큰 차이, 일본 드라마는 캐릭터 위주다. 사건이 일어나도 캐릭터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반면 한국 드라마는 관계가 주가 된다. 사건도 관계를 통해 일어난다.
그렇게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많다. 아마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특히 중년여성 이상에서 인기있는 이유일 것이다. 일본 드라마는 어찌 보면 참 삭막하다. 그리고 외롭다. 그에 비해 한국 드라마에는 어쩌면 잊혀진 풍성한 관계들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 사람들도 그런 걸 좋아한다. 밴드 이야기를 하더라도 단순히 주인공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나 장애를 극복해가는 드라마보다는, 주위와의 끈끈한 이야기들을 더 좋아하는 것이 한국의 대중들이다.
드라마도 그렇게 만들어진다. 정인의 드라마가 편성에서 밀린 이유다. 우리나라에서 드라마란 아직 가족들이 보는 것이다. 매리는 외박중을 우리 어머니도 보신다. 젊은 층이 보는 드라마라고 기성세대에서 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란 당연히 그들이 보는 것이란 생각이 있다. 그래서 지나치게 이해할 수 없는 코드가 아니라면 억지로 이해해가면서도 본다. 그런 공감대가 있는 것이 바로 가족이다. 자기 또래의 철없는 부모들이란 또한 그분들이 이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할 것이다.
드라마 마니아이기에 위매리는 그것을 알았다. 그러나 일본에 있었고, 작품 자체로써만 접근하려 했기에 정인은 몰랐다. 여기에 작가의 욕심도 더해져서. 아마 작가도 알았을 텐데. 한국의 실정에서 드라마가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그것을 조율하는 것이 또 제작자의 역할일 테지만.
역시나 오늘도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위매리의 청담동 패션은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 이상하게 내게는 그런 문근영의 모습이 어색하게만 보인다. - 전형적이면서도 짜임새있는 구조와 캐릭터 연기가 오늘도 한 편의 재미있는 만화를 보는 것 같다.
To be countined...
안타까우면서도 설레이는 단어.
다음호에 계속...
그나마 윙크는 격주간이었다. 나인은 격월간이었다. 매리는 외박중은 주에 2회를 한다. 주간보다도 짧다. 순정만화는 주간지도 아마 없었을 텐데. 과연... 그 과연이라는 말도. 강무결의 계약건은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어쩌면 최초의 장애일 것이기에 궁금증은 흥분을 더한다. 내일이 이렇게 멀다.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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