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연의 작품 스타일이 그렇다. 덕분에 몇 번인가 표절논란이 있었을 것이다. 우습다. 원래 순정만화라는 게 - 아니 장르물이라는 게 클리셰의 답습이거든. 시스터 액트와 노다메 칸타빌레와 베토벤 바이러스가 유사한 포맷을 갖는 이유다. 순정만화든 할리퀸이든 대개 그 구성과 구조가 비슷하다.
원수연의 강점이다. 누구나 알만한 뻔한 이야기를 뻔하게 맛깔나게 그려내는 것. 어디선가 본 듯한 친숙한 내용인데 그것을 한결 더 친숙하게 이해하기 쉽게 그려낸다. 놀라움이나 특별함은 없지만 어쩐지 마음놓이는 편안함과 익숙함이 있다. 전형적인데 그래서 읽기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 대중작가로서 가장 큰 강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삼각관계로 들어서는구나. 원래는 지난주에 방영되었어야 했던 부분인데. 그랬으면 좀 더 나았을까? 어느샌가 위매리에 끌리는 정인과 강무결 두 남자의 감정의 선이 그린 것 같고, 그 주위에 선 서준의 캐릭터 또한 전형적이다. 앞으로의 전개가 어쩐지 예상이 될 것 같은. 하지만 틀리면 쪽팔리겠지?
가장 압권은 강무결이 가발 쓰고 나온 것을 머리 잘랐다 오해하는 부분. 이건 정말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은가. 설마설마 하면서 끝까지 보았다. 역시나. 강무결의 위기에 위매리가 끼어들고 거기에 정인이 마무리짓고. 그 뒤에는 강무결의 철없는 어머니. 하지만 같은 상황이라도 캐릭터가 있고 배우의 연기가 있으니 한결 매력적이고 보기 좋다. 원수연은 드물게 그림 잘 그리는 만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원작을 봐야 할까?
그나저나 위매리의 심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무래도 무능한 아버지 때문에 항상 아버지로부터 보호를 받기보다는 아버지를 보호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즉 위매리에게 아버지란 보호받고 싶은 대상인 동시에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다. 오히려 그녀는 약하다. 여리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은 아직도 꿈을 꾸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속의 유리된 현실은 그녀로 하여금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통로다. 그것은 어쩌면 현실의 각박함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기제일 것이다. 드라마 초반 집안의 가구며 가전제품을 모두 들어내고 텅 빈 방에 홀로 앉아 숫자를 헤아리며 기합을 넣던 것처럼.
강무결에게 위장결혼을 부탁하면서. 그의 의외의 생활력을 곁에서 보면서. 그의 음악적인 재능과 노력을 지켜보면서. 그러나 어딘가 어설프고 보살펴주어야 하는 그의 빈 자리를 겪으면서. 강무결이란 위매리에게 결혼때문에라도 의지해야 하는 대상이다. 그러면서도 이것저것 곁에서 챙겨주지 않으면 안 되는 한심한 주제이기도 하다. 어질러진 방안과 문득 해준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과 무엇보다 철없는 어머니로 인해 고생하는 데 대한 동병상련과, 방을 청소하며 문득 발견한 뜨다 만 벙어리장갑은 그러한 위매리의 내심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강무결의 기습키스로 그에게서 남성을 느끼면서, 왜곡되어진 부성에 대한 갈구가 그에 대한 애정으로 바뀐 것은 아닐까. 벙어리장갑을 다 뜨고서 크구나 하고 감탄하는 것은 그로부터 강무결의 큰 손을 - 그녀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부성을 느끼는 때문일 것이다.
강무결의 위매리에 대한 심리도 어느 정도는 비슷할 테고. 약한 여자를 느껴 버렸다. 보호해주어야 하고 감싸주어야 하고. 하지만 그녀는 누나다. 오히려 강무결이 위매리에 의지하는 바가 크다. 강무결이 갖지 못한 모성이며, 또한 강무결이 보살펴주어야 하는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의 빈 일부다.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은 어떤 운명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정인이 멋진 모습을 보여주어도 위매리는 존경은 할지언정 애정까지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위매리의 아버지에 대한 뿌리깊은 컴플렉스 - 트라우마가 치유되기 전까지는. 그러나 그것은 정인이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뻔히 지는 게임이랄까? 결과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런 것이 또 이런 류의 작품을 즐기는 매력이니까. 운명같은 사랑. 그것은 순정만화에서 가장 오래된 - 아니 인류 역사와 함께 하는 중요한 플롯일 것이다.
물론 과연 그런가? 모른다. 내가 작가가 아니니 아나? 다만 그런 디테일한 배려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위매리와 강무결의 내면은 지난주 점차 서로에게 가까워지며 드라마의 시작을 알렸어야 했다. 그러고 나면 서준과 정인과의 관계도 본격적으로 진행되겠지. 지난주 방영하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쉽달까?
아무튼 그나저나 이것도 참 판타지다. 미국도 아니고 보고서 한 장에 바로 감탄해서는 그 재능을 알아보고 기획실 아니면 보조작가? 그 보고서의 내용이라는 것도 특별한 것이 없다. 전혀 구체적인 것이 없다. 하지만 판타지니까. 요즘의 신데렐라는 왕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만난다.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매리야 말로 신데렐라겠지. 느닷없이 커리어우먼으로 변신하는 위매리의 모습은 어색하고.
강무결의 말마따나 내내 손발이 오그라들어 죽는 줄 알았다. 원수연을 느껴 버렸다. 원수연이 이런 데 정말 강한데. 그것이 내가 원수연의 만화를 그리 즐겨 보지 않은 이유일 것이고. 잡지로 연재된 것을 보는 것 말고는 단행본은 따로 구해 보거나 한 적 없는 것 같다. 그래도 간만에 드라마로 보니 이것도 꽤 재미있지 않은가.
그리고 한 가지, 이 드라마에서 어떤 인디밴드나 드라마제작의 현실에 대한 디테일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겠구나. 이건 만화다. 판타지다. 철저히 판타지에 충실한 만화다. 이미 그것을 동의하고. 원수연 원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단은 재미있으니까. 재미있었다. 오늘도 역시. 만족스런 드라마였다. 만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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