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가사의 시대는 끝났다 - 왜 가사를 탓하는가?

까칠부 2010. 11. 25. 22:16

가사란 곧 멜로디다. 가사 안에 운율이 있고 곡조가 있다. 좋은 가사란 이미 그 자체로 노래가 된다.

 

멜로디가 중요하던 시절에는 가사 역시 중요했다. 멜로디를 가장 훌륭하게 전달하는 수단이 바로 가사였으니까. 가사를 가장 확실하게 전달하는 수단도 멜로디였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은 비트의 시대다. 쿵쾅거리며 강렬한 비트가 사람들의 심장을 뒤흔든다. 발라드라 불리는 노래에서조차 그렇다.

 

비트가 멜로디와 어우러지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비트가 멜로디를 떠받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비트가 멜로디를 쪼개는 것. 전자가 이제까지 일반적이었다면 후자는 지금 일반적이다. 보다 강렬한 비트에 대한 요구가 비트를 살리려 멜로디를 쪼갠다. 리듬감은 강해지는대신 멜로디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요즘 나오는 노래들이 그래서 멜로디가 짧다. 그리고 멜로디가 짧은 만큼 가사도 짧다. 긴 문장으로 이어지기보다는 단속적으로 짧은 어휘들을 나열하는 정도다. 어쩔 수 없다. 멜로디가 끊어지는데 가사만 길게 이어봐야 그걸 어떻게 부르라고. 입에 붙고 귀에 붙어야 가사다.

 

가끔 음악평론사이트 등에서 가사 어쩌고 시비를 거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들어보면 이건 가사가 정교하게 들어갈만한 노래가 아니다. 강렬한 비트가 멜로디를 있는대로 쪼개며 리듬으로 파고드는데, 그러나 가사는 서정적으로 길고 장황하게...

 

인터넷 글쓰기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인터넷 소설들에서도 그런 만연체는 쓰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심리가 각박해지고, 욕망은 더욱 직접적이고 직설적이 되었다. 짧고 강렬하게. 그보다는 심장에 직접 와 닿는 비트에 실려서.

 

원래 록의 가사가 단속적으로 끊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래서였다. 내가 요즘의 이른바 후크송에 별 거부감이 없는 것도 강렬한 비트와 리듬에 실린 멜로디는 그처럼 정교한 가사를 실을 수 없기 때문이거든. 그래서 더 주관적이고, 더 직설적이고, 더 개인적이다. 힙합 역시 그래서 가사로 이루어진 랩을 하면서도 문장이 이어지기보다는 단속적으로 감각적으로 끊어진다. 어떤 가사를 바라는 것일까?

 

가사의 시대는 끝났다. 가사의 시대는 멜로디의 시대였다. 그리고 멜로디의 시대는 끝났다. 더 이상 멜로디보다는 비트를 듣는다. 리듬을 듣는다. 어쩌면 지금이야 말로 록이 파고들만한 때이지만. 이상하게 기계음은 그리 친하면서 일렉트릭 기타의 디스토션은 그리 친하지 못하다.

 

후크송이 사람들에 먹히는 이유. 먹힐만한 짧은 멜로디가 강렬한 비트의 리듬과 함께 반복적으로 들려오니까. CF음악에 사람들이 매료되는 이유다. 결국에 최근의 음악의 대중적 성과가 모바일로 나타나는 이유일 테고.

 

가사의 시대는 끝났다.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아집보다는. 시대가 바뀌면 음악도 바뀐다. 당연히 가사도 바뀐다. 영원히 옳은 것은 없다.

 

문득 음악을 들으면서 깨닫는다. 어차피 나는 가사를 잘 듣지 않는다. 가사가 아니어도 음악은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