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남자, 그 참을 수 없는 시답잖음이여!

까칠부 2010. 12. 5. 18:41

문득 생각했다. 전혀 상관없는 뜨거운 형제들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단어였다.

 

"시답잖음!"

 

별로 대단할 것 없다. 훌륭할 것도 없다. 멋질 것도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드러나는 진솔함.

 

남자의 자격을 두고 감동버라이어티라 한다. 하지만 그럴까? 내가 남자의 자격에 반한 것은 그보다는 어쩌면 한없이 한심하고 때로는 찌질하기까지 한 남자들의 진실한 모습들 때문이었다.

 

고작해야 담배 하나 끊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항상 말한다. 남자가 왜 그런 것도 못해? 남자가 왜 그런 것 가지고 그러고 그래? 하지만 그게 남자인 걸. 남자란 그렇게 대단하지도 멋지지도 훌륭하지도 않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남자란 때로 대단하고 멋지고 훌륭하다.

 

누가 이윤석이 마라톤을 완주하리라 생각했을까? 그래서 감동이 더했을 것이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기에. 평소의 한심하던 이윤석도, 악착같이 끝까지 하프마라톤을 완주하던 이윤석도 결국은 남자다. 감동을 주려해서가 아니라 어느새 그 시답잖음에 공감하다 보니 어느새 공감이 감동이 되는 것이다. 휴머니즘이란 바로 그들이 보여주는 진실한 남자의 모습일 것이다.

 

남자의 자격의 토크가 빛나는 이유도 그것이다. 참 시답잖다. 전혀 별 것 아닌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남자들이라면 대개 공감하는 이야기다. 연륜이 묻어나고 삶의 깊이와 지혜가 묻어나지만, 그러나 본질은 남자들만의 시시껄렁한 농담들. 남자들 모이면 그러고 논다. 전혀 모르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면.

 

김국진과 김태원 두 사람의 여행은 그것을 보여준다. 그려놓은 것 같다.

 

전혀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들이다. 시시껍절한 수다들이다. 남자들이란 이렇게 수다스러운가? 어쩌면 여자들보다 더 수다스러운 것이 남자일 것이다. 외로운 사람들이기에. 둘 다 그다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맞는 동갑내기 친구가 그리 반가운 것일지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속이 정이 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고, 서로를 알아가려 하는 호기심이 있다. 본질은 우정. 우정이라기에도 더 깊은 애정.

 

작년 김태원이 생명이 위독해 있을 때 김국진이 전화로 협박을 했다던가?

 

"너 당장 병원 안 가면 내가 끌어낸다."

 

친구이기에 할 수 있는 협박이 아닐까? 진심으로 걱정이 되기에 할 수 있는 따뜻한 위협일 것이다.

 

"여기 좋아지면 여자친구와 함께 와라."

 

그리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자기와 함께 오자고 하기보다 비어 있는 옆자리가 채워져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역시.

 

물론 김국진이 즐겨 찾는 아지트에 도착해서 실망해 투덜거리는 김태원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당혹스러워하며 변명의 말을 쏟아내는 김국진이나, 투덜거리면서도 여전히 사진 찍는 데 여념이 없는 김태원이나.

 

꼭 그렇다. 친한 사이라고 좋아하는 곳을 소개시켜준다. 재미있는 영화라든가, 즐기던 게임이라든가, 그런데,

 

"이게 뭐야?"

 

당황스럽다. 그런데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친구이기에 끝까지 함께 어울려준다.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면서도 끝내 함께 하며 마지막까지 찐빵을 나누어 먹는다.

 

두 사람은 이미 한 공간에서 따로 노는 법을 아는 나이들이다. 술자리에 마주 앉아서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도 마음이 통할 수 있는 나이대다. 어느샌가 엇갈리며 따로 노는 두 사람.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고 말도 다르고, 하지만 마지막까지 함께 사진을 찍는 마음이 있다. 참 어울리는 친구들이구나. 남자들이구나.

 

시시껍절한. 아주 시답잖은. 그러나 그래서 더 진정이 느껴지는. 투박하고 꾸밈이 없기에 더 진심으로 다가오는 그런 마음이 느껴지는 장면들이었다. 우습기도 우스웠지만 멘트가 개그스러워서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말들과 그 사이에 통하는 마음이 즐거워서. 흐뭇해서. 아마 저런 게 친구란 것이겠지.

 

오랜 친구처럼 오래된 이들이 만나 우정을 확인해가는 모습이 정말 좋았다. 너무나 뻔한 사진들이지만 그러나 사람의 감정이란 그런 뻔한 가운데 깊이가 있는 법이니까.

 

관계가 무거울수록 대화는 가볍다. 아무렇지도 않은 시시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관계의 깊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인생의 깊이를 보았다.

 

 

이윤석의 여행도 좋았다.

 

"아버지께서 할아버지와 함께 오르셨던 길이고, 아버지와 자신이 함께 올랐고, 지금은 혼자지만 언젠가 아버지 말씀처럼 자식과 함께 오를 것이다."

 

레일 이야기도 좋았지만 이 말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보고,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뒤를 보고, 때로는 우러르고 때로는 반발하며 그렇게 남자는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된다. 아버지를 찾는 여행은 자기를 찾는 여행이었을까?

 

심심하고 분량도 짧았지만 인상이 깊었다. 이윤석만이 보여줄 수 있는 침착하면서도 속깊은 진정이 있었다.

 

 

아직 데뷔하지 못한 언더그라운드 개그맨들 - 즉 자신의 후배들을 찾은 윤형빈의 마음도 보기 좋았다. 나름 크게 성공했어도 아직 햇병아리이던 시절을 잊지 못하는.

 

"나 자신을 찾는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아마 그도 무명시절에는 그처럼 꿈과 열정으로 젊음을 불사르고 있었겠지? 시간이 흘러도 그를 반겨주고 그를 롤모델로 삼아 노력하고 있는 후배의 모습은 지금의 그에게는 채찍질이 되었을 것이다.

 

 

이정진은 너무 진지했다. 의도는 좋았는데 너무 진지했던 것이 사진에 나타났다. 가끔은 그 봉창을 들고 흔든다는 이경규가 말한 편집된 모습을 보여주면 어땠을까? 이정진다웠지만 심심해서. 마치 6시 내고향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것도 이정진의 포지션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이경규...

 

그가 진정 이 시대의 희극인임을 알게 한다. 그렇게 밝은 표정들이란. 그렇게 활짝 웃는 웃음들이란. 이경규가 앞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세상에 가장 즐거운 웃음이 지어진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웃을 수 있다는 것. 단지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리 즐거운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다름아닌 이경규이기에 찍을 수 있었던 사진들일 것이다. 자갈치 시장 사람들의 웃음에서 나는 이경규를 보았다. 그들로 하여금 그리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한 그 이. 그게 이경규일 것이다.

 

 

아쉽다. 김성민은 지리산에 다시 도전했다고 했는데. 2주 분량이었겠지? 아마 김성민까지 해서 2주 분량으로 뽑아놓은 미션이었을 것이다. 김성민을 들어내고 결국은 1주분량. 물론 김성민이 1주 분량을 다 차지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김성민의 비중이 커서 무리하게 2주 분량으로 늘리기란 힘들었으리라. 차라리 기존의 분량을 잘라 1주로 줄이는 게 나았을 테지.

 

가끔 들리는 목소리가 여전히 봉창이었는데. 활기차고. 의욕 넘치고. 과연 다시 이와 같은 친구를 구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형제와 함께 할 수 있을까? 그 빈자리가 또한 느끼지 않았던 것이 더 슬펐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편집에 - 또 그에 어울리는 미션이 그의 빈자리마저 느끼지 못하게 했다.

 

다음주에는 제제와 봉구도 나오는 것 같은데. 그것마저 편집했으면. 연예인이 죄를 짓는 것은 단순히 일신의 죄만이 아닌 이같은 수많은 시청자, 팬들, 대중에 대한 배신이다. 그로 인해 기쁨을 얻고 즐거움을 얻고, 행복해 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말미 조금 눈물이 나려 했다.

 

아무튼 좋았다. 특히 김국진과 김태원. 어찌 보면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두 중년의 남자가. 전혀 46살 먹은 남자들 답지 않은 시답잖음이. 시답잖은 진정이. 아, 이 사람들은 친구구나.

 

멋진 에피소드였다. 이래서 남자의 자격을 본다. 이것이 남자의 자격이다. 김성민의 빈자리에도.

 

여섯 남자들로도 괜찮을 것이다. 이들만으로도. 위안을 삼는다. 아직 우리에게는 여섯 남자들이 있다. 무척이나 정겹고 친숙한 남자들이. 좋았다. 무척. 일주일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