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깝다.
"나는 최소한 돈 때문에 배신을 하지."
"금을 나눈다는 건 100억이라는 돈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악이란 곧 욕망이다. 절제되지 않은 오로지 이기적으로 추구되는 욕망이 곧 악일 것이다.
스릴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악"의 존재다. 보다 명확한 "악"에 대해 사람들은 비로소 주인공의 행위와 캐릭터에 대해 동의하게 된다. 그로부터 선과 정의가, 그에 동의하는 자신도 확실해진다.
그에 비한다면 양회장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양의원이 욕망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 선이 아니고 이기적이며 절제되어 있지 않지만 명확하지 않은 어떤 것이 커튼을 드리운 듯 흐릿하다. 날이 흐린지 해는 졌는지 비는 내리는지... 괜히 꿉꿉하고 멍하기만 하고.
송재호가 나이를 먹어 힘이 떨어진 것일까? 성동일의 연기가 남다른 것일까? 차라리 나까무라 황과 지우의 대결이었다면 더 흥미진진했겠지만. 나까무라 황이 일찌감치 양회장의 편에서 배신을 준비하고 있었다면 그것도 흥미로웠을 테지만. 아마 5회 정도에 지그의 대결구도가 나타났다면 시청율이 지금 같지는... 물론 그냥 내가 재미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하여튼 그래서 또 이 드라마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아버지는 알콜중독으로 요양소에선가 죽었다."
"어머니는 사기당한 돈을 받으러 갔다가 죽었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만 용돈을 달라고 했는데, 어머니는 하루에 1만원어치씩 나를 사랑해주셨다."
그러니까 그게 뭔 상관이냐고? 이제까지 이와 관련해서 단 한 번이라도 나온 적 있나? 과연 지금의 지우의 모습에서 그로 인한 어떤 개연성이나 연관성을 유추할 수 있는가? 괜히 끼워맞추니 원래 지우가 그런 과거가 있다는 것이지 드라마 진행상에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는 - 더구나 거의 끝나가는데 왜 나왔는지도 모르는 그냥 과거의 이야기들이다.
악역이 없으면 주인공의 캐릭터라도 설득력이 있어야 하는데. 정의도 아니고. 선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도 아니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 비의 쓸데없이 과장된 연기가 더욱 그런 것들을 해치고, 어설픈 설정이 지우라는 캐릭터에 몰입하지 못하게 만든다. 악도 없고 주인공도 없고 어디에 이입할까?
도반장의 비중이 낮아진 것도 긴장감이 떨어지는 이유가 되고 있다. 지우가 정의가 아니게 되면 도반장이라도 정의의 역할을 맡아야 할 텐데, 그러나 도반장이 타락에 이어 이제는 뭐 하는지도 모르게 되어 버렸으니. 결국 사이를 채우는 것은 나까무라 황과 제임스 봉 같은 조역들. 사실상 크게 비중이 없는 캐릭터들이다. 존재감은 대단하지만 과연 이들이 도망자에서 진정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까무라와 제임스가 없으면 드라마 보는 재미가 없으니. 도반장과 양형사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도 무척 보기에 맛깔나다. 핵심은 그게 아닐 텐데도.
어쨌거나 그래도 스릴러라고 반전이라는 게 시도되려는 모양인데... 암중의 흑막? 그게 양두희 아들 양의원? 아니면 그 뒤의 다른 누구?
"누구를 위해 일하는 건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한다!"
간첩은 아닐 테고... 국정원일까? 분위기는 양의원이 양두희 뒤에 나타날 듯 바람을 잡는데 그것으로 끝이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있다. 뻔히 예상되는 반전이지만 그나마 기대되는 부분이랄까? 다만 양의원의 함정에 빠져드는 장면이 너무 어이없어서.
하기는 딱 보기에 이나영이 악역으로 보일만한 자연이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반전이 뜬금없다는 것이 놀랍다거나 당황스럽기보다는 허무하다. 많이들 예상하지 않았을까? 예상을 지나친 진지함으로 배반한 것을 넘어 그 진지함조차 배반해 버리다니. 잘만 넘겼으면 그것도 재미있었을 테지만 너무 뜬금없었다. 전혀 긴장도 의심도 않은 지우와 진도 그렇거니와 중간이 없이 맥락없이 넘어가버린 장면도 허무할 따름이었다.
뭐랄까 쪼는 맛이 없달까? 시작과 결과는 있는데 그 과정이 없다. 앞서도 말한 악역이 부재하다는 것도 그것이다. 악역이 쪼는 맛이 있어야 그에 맞서는 주인공도 돋보이는 그런 게 있을 텐데 정작 쪼는 것은 조연인 나까무라 황이니. 스릴러라기에는 너무 심심하다. 스릴이 있어야 스릴러이텐데.
도반장의 동기라는 그 여자경찰도 조금 의심스럽지 않을까. 이박사를 취조하는데 너무 당당하다. 도반장 당한 것을 보고서도 너무 자연스럽고. 반전을 위한 준비인가? 아니면 그냥 조금 오버하는 것 뿐인가? 이래저래 사족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참 볼수록 뭔가 안타까운 드라마다. 뭔가 하나 더해지면. 뭔가 하나 괜찮게 가다듬을 수 있다면. 그러니 욕하면서도 매번 빠뜨리지 않고 보는 것이겠지.
그럭저럭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은 모자르다. 모자른 상태로 이대로 끝이 나려는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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