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있는 세 아이가 있다. 아버지의 따뜻함이 그리워서. 아버지의 보살핌이 안타까워서. 어머니의 사랑이 간절해서. 정인, 위매리, 강무결...
오늘의 포인트는 역시 감기에 걸린 강무결이 위매리에게 전화하는 장면일 것이다. 처음에는 어머니에게 전화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예 받지 않는다. 소통불가. 그리고 대신해 위매리에게 걸었을 때 그녀는 기꺼이 약을 사들고 그에게로 달려온다.
사람이 진심이 되어 버리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 바로 거짓이다. 사랑하는 이와 과연 거짓사랑을 연기할 수 있을까?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을 때 거짓연인의 모습을 연기해 보일 수 있을까?
"우리 이제 그만 끝내자."
그것은 강무결의 일생일대의 사랑고백이었다. 그것을 알았기에 정인도 굳이 서준이 강무결을 만나려는 것을 막은 것이었고. 위매리와 강무결만이 아닌 강무결과 정인도 동병상련의 처지니까.
위매리가 정인에게 건낸 수면양말도 마찬가지다. 따뜻하다. 부드럽다. 그리고 편안하다. 지난 아픈 기억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강하게 기르고자 했던 것이 정인 아버지의 사랑이라면, 지금 이 순간 정인이 바라는 것은 그 꿈마저 보듬어줄 수 있는 따뜻함일 것이다. 기대어 울 수도 있고, 펑펑 울며 하소연할 수도 있고, 그러면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는 그런 다정함일 것이다.
아버지는 위매리에게 바로 그런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가 바라는 그런 다정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것을 질투이고 그리움이었다. 위매리의 순수함과 솔직함, 당당함은 그가 또한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다. 재래시장이라는 가식을 벗어던진 원시의 공간에서 정인은 위매리 앞에 솔직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바로 수면양말. 그의 밤의 고통을 잊게 해 줄 따뜻함이며 포근함이었다.
어쩌면 정인이 위매리에게 진심이 되어 버린 것은 바로 이때부터일지도. 이전까지 단지 위매리에 대한 감정이 질투이고 그리움이고 집착이었다면, 아버지에 대한 어떤 보상심리였다면, 이제는 진심으로 위매리에 대해 욕심을 내게 되었다. 그의 억눌린 자아는 욕심조차도 함부로 드러내지 못하도록 한다.
아마 버림받은 것 같을 것이다. 강무결이 더 이상 거짓결혼생활을 그만두자고 했을 때 위매리가 지은 표정은 자신이 거부당했다는 배신감이며 상실감이었다. 위매리에게 강무결은 오빠이자 아빠다. 보살펴주어야 하고, 보살핌으로써 의지해야 하는 대상이다. 단지 의지하기만 했다면 그녀는 강무결에게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강해야만 하니까. 보살피기만 했다면 또한 강무결에게 빠져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약하니까.
이후의 전개는 예고편을 보더라도 위매리의 절망과 강무결의 솔직함이 드라마를 만들어갈 것 같다. 정인의 역할은 애매한데... 과연 고전적인 악역이 될 지. 아니면 오해받기 쉬운 착한 사람이 될 지. 결국은 치유물이 될 것이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겠다. 서준의 역할이 중요해지겠지. 과연 역시나 고전적인 악역이 될 것인가 단지 상처입기 쉬운 고집스런 캐릭터가 될 것인가.
아무튼 이 드라마에서 어른이 하는 역할은 한 가지다. 세 아이의 상처를 헤집는 것. 세 아이의 상처를 헤집어 울리는 것. 우는 아이들은 서로를 찾고 서로에 기대어 울며 위로를 받는다.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서로의 따뜻함에 기대어, 서로의 울음소리에 위안을 받으며.
그래도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 철없고 무책임하더라도 기꺼이 싸울 수 있는 것이 어른이니까. 화를 내고 몸싸움을 하고 그래도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그것이 위매리와 강무결이 더욱 서로를 찾아가는 이유겠지.
"매리는 마치 가족같아!"
여자가 아닌 가족이니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하지만 심수봉도 그랬지. 사랑보다 더 깊은 게 정이라고. 정보다 더 깊은 것이 당연함이다. 사랑한다는 느낌조차 없이 그의 존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 아직 사랑이라 여기고 있다면 단지 타인일 테지만 사랑조차 느낄 수 없게 되면 이미 그는 자신의 일부다. 뭐 그러다가도 깨지는 것이 사람 사는 것이겠지만.
참 전형적인데... 그런데 전형적인 가운데서도 장치들이 참 세심하다. 연기의 삑사리거나 사족이 아니라면 장면 장면들이 다 의미가 있겠지. 세 아이의 울음과 그 아이들을 울리는 울음과 그 울음을 서로 치유해가는 모습이. 그래서 순정만화에서의 사랑이야기는 치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사랑은 치유의 과정이다.
그나저나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완전무결 그들이 과연 팀인가? 밴드 맞나?
밴드라면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컴퓨터 앞에서 곡이 만들어지기보다는 모두가 한 데 모여 연습하는 가운데서 곡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신성우의 "서시"도 그렇게 당시 함께 팀을 이루던 이근형과 술을 마시다 문득 화장실 가는데 떠오른 멜로디라 했었다.
프레이즈가 나오고, 리프가 떠오르고, 거기에 하나하나 악기가 살을 붙여가며 음악을 만든다. 어느 한 사람의 천재성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각자 자기의 소리를 더해 음악을 만들어간다. 모두의 의지가 모여 만들어지기에 밴드음악이다.
하지만 완전무결의 음악은 거의 전적으로 강무결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가. 모여서 연습하는 장면도 없고, 곡을 쓰는데 의견을 교환하고 때로 그때문에 싸우는 장면도 없고. 이래서야 거의 강무결밴드 아닌가. 강무결과 아이들. 이게 어디 밴드인가? 강무결 말고는 누가 빠져도 전혀 문제가 될 게 없겠구만.
더구나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컴퓨터. 밴드가 그러면 멋이 없지 않은가? 기왕에 스테레오타입의 록커를 묘사하고 싶으면 기타 하나로 곡을 쓰는 그런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어땠을까? 최첨단 장비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음악보다는 직접 기타를 치며 드럼을 두드리며 만들어가는 음악 쪽이 더 드라마적일 텐데. 아무래도 가난한 록커라는 이미지에도 도움이 될 테고. 요즘에야 다 그렇게 곡을 쓴다지만. 만화니까.
그러나 결국은 판타지니까. 말했듯 만화니까. 어설프고 어색한 연기며 서툰 장면들까지도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는 용서된다. 현실이 아니다. 드라마다. 허구다. 만화다. 철저히 타자가 되어 한 걸음 떨어져 그것을 본다. 그래서 보기 좋으면 그 뿐.
어쨌거나 괜하게 일이 꼬이는 바람에 가기로 했던 쇼케이스도 못 가고, 덕분에 피곤에 지쳐 들어오자 마자 쓰러져 자 버리고, 매리는 외박중도 결국 본방을 놓치고 이제서야 다시보기로 보았다. 꼬이려면 일이 이렇게도 꼬인다. 더구나 요즘 건강도 전과 같지 않은데. 그래서 재미있던 것이 더 아쉬웠던.
일주일이 어여 후딱 지나갔으면 좋겠다. 간만에 즐겁게 챙겨보는 드라마다. 뻔히 예상되지만 그만큼 캐릭터가 매력적이어서. 그 속이 훤히 보여도 배우들도 한결같이 매력적이다. 연출이 좋다. 다음주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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