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정적으로 도망자에 실망하게 된 것이 바로 양영준의 변신이다. 양영준은 내내 양심적인 정치인의 모델인 양 행세하고 있었다. 매우 정직하고 올곧고 바르고... 그에 비하면 이번주 그의 변신은 파격적이라 할 만하다. 파격적인 걸 넘어 뜬금없고 맥락없다.
그가 그렇게 변하기까지의 과정이 없다. 원래 그런 인간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적 위기상황에 그렇게 바뀌게 된 것인지. 최소한 양두희를 한 순간에 무력화시킬 정도면 그 전부터 단초가 나왔어야 했다. 양두희의 측근 가운데 누군가 외부와 연락하는 존재가 있거나, 황미진의 경우도 양두희 이외에도 연락하는 대상이 있거나, 아니면 어느 순간 양영준이 외부와 연락을 하는 장면을 넣어도 좋았을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해야지... 추리소설 가운데서도 그런 게 있다. 아마 아가사 크리스티일 것이다. 탐정이 우연히 사건현장에서 고무조각을 하나 발견했다. 그런데 그것이 무언지 전혀 힌트가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알고 보았더니 사건에 쓰였던 고무풍선.
"그게 그거였어?"
하지만 이 경우는 나중에라도 끼워맞출 수 있는 단서라도 있다. 여기서는 그조차도 없다. 양영준이 어떻게 이전의 양심적인 정치인의 모습에서 이후의 권력에 눈이 먼 악당으로 바뀌는가. 바뀐 것이 아니라 단지 숨기고 있던 것을 드러내었을 뿐인가? 그냥 그러려니...
드라마라는 건 결국 허구다. 소설이든 영화든 연극이든 거짓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그것이 설득력을 가지고 사람들에 전해질 수 있는 것은 개연성이라는 것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앞과 뒤가 이어진다. 그런데 그게 없으면 어떻게 될까?
그렇지 않아도 뜬금없고 맥락없는 드라마였지만 양두희에서 양영준에게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중요한 순간에조차 뜬금없고 맥락없으면 어쩌라는 것인지. 집중도 안 되고, 설득력도 없고, 그냥 양영준은 나쁜 놈이다. 그러고서도 반전을 넣었으니 잘 썼다 스스로 기뻐했을까?
드라마 분량이 짧은 것도 아니고. 드라마 분량이 짧아서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그런다 이해나 한다. 미니시리즈라지만 이것도 어지간한 분량 아닌가. 그 안에 이 정도 내용도 녹여내지 못해서야 뭐하자는 작가이고 제작진인 것일까?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어서. 내가 보아온 지난 시간이 아깝다. 화가 난다. 실망 정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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