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와 맹자가 말하는 성악설과 성선설이다.
인간은 원래 선하다. 선하도록 되어 있다. 혹은 인간은 욕망의 존재이며 죄를 저지르도록 되어 있다.
전자는 개인의 인성을 강조하며, 후자는 그렇기 때문에 교육과 법, 제도 등의 사회적 강제를 강조한다.
성악설이 마냥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는 게 아니다. 인간은 욕망의 존재이고 유혹에 약하기 때문에 법과 교육 등의 사회적 장치를 통해서 바르게 이끌어야 한다. 따라서 인간이 죄를 짓는다는 것은 그러한 욕망과 유혹에 진 결과이지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약한 것이지 악한 것이 아니다. 악해서가 아니라 단지 유혹을 견딜만큼 강하지 못해서다. 따라서 인간 그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행위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만 집중한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여기서 비롯된다.
하지만 성선설의 입장에서 인간은 원래 선하기 때문에 악하다는 자체가 비정상이다. 인간은 누구나 옳아야 하고 발라야 하고 법과 도덕 질서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악" 그 자체다. 따라서 그것은 그 개인의 본성에 따른 것이며 개인의 인성과 존재 그 자체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를테면 단지 교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무차별한 폭력을 가하는 학교 선생들이 그 예일 수 있겠다. 당연히 학생은 교칙을 지켜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칙을 지킨다. 그런데 교칙을 어겼으니 그는 정상에서 벗어나 있다. 행위만이 아닌 그의 존재 자체가 정상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폭력은 학생 자신에 대해 가해진다. 행위가 아니다.
"너 전에도 이러이러한 일을 했었지?"
아마 내가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맞다. 인터넷에 넘나드는 증오도 바로 여기에 비롯된다.
"얘가 예능에서 이런 거짓말을 했네?"
그 순간 허언증이 되고, 쓰레기가 되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의혹에 대해서도 분명히 잘못했을 것이고. 더불어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한 어떠한 폭력도 정당하고. 왜? 잘못했으니까. 잘못해서는 안 되는데 잘못했으니까.
물론 그럼에도 그러한 범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가 있다면 함부로 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피해자 입장에서야 어떤 이유에서든 그러한 행위 자체는 용서할 수 없는 "죄"이자 "악" 그 자체일 것이므로.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가 지은 죄에 대해서 그 이유에 대해, 그 결과에 대해, 그 책임 부분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다른 범죄를 막기 위해서도. 그리고 그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도.
당연한 거다.
"야 이 쓰레기야!"
학교에 문제학생이 있어 선생들이 그를 쓰레기도 단정짓는다. 아무도 그를 바로 이끌려 하지 않는다. 단지 때리고 모욕줄 뿐 그를 올바르게 가르치고 이끌려는 노력은 그 순간 멈추고 만다. 학생 자신도 자신이 쓰레기라 여기는 순간 더 이상 자신을 다잡고 삼가려 하지 않게 된다.
쓰레기인데 거기서 뭐 다시 바로잡고 바로 가르치고 바로 이끌고 할 게 있겠는가. 인간이 쓰레기라서 죄를 지었는데. 반면 원래 인간이 죄를 짓는다 보았을 때는 그것이 어떤 구조적인 일탈로써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다시 원래대로 돌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 과거의 행형이 단순한 응보의 차원이었다면 지금의 행형이 수감자를 다시 사회인으로 되돌리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죄야 저지른 것이지만 그 이유를 알고 그것을 바로잡고 그것을 교훈삼음으로써 이를테면 치유하는 것이다.
확실히 한국사회는 유교사회다. 그리고 전근대적인 질서로부터 벗어난지도 그리 오래지 않았다. 권위주의가 오래도록 지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당위의 지배 아래 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뭐든 그리 당연한 게 많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 당연히 그러지 않으면 안 되고...
"사람이라면..."
"남자라면..."
"여자라면..."
"한국인이라면..."
"연예인이라면..."
"공인이라면..."
물론 실제 공인이라면 그같은 공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라 해서 모두가 같을 필요가 있을까? 한국인이라고 모두가 한결같을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그같은 믿음이 이탈을 용납하지 않는다. 단지 지인이기에 호의적인 응원발언을 한 것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난하는 이유일 것이다.
내가 비난하니 너도 함께 비난해야 한다. 내가 욕하니 너도 함께 욕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하다. 왜? 죄인이므로. 그에게 돌을 던지든, 그 가족에게 오물을 뿌리든 죄를 지었으니 당연하다. 강호순 때던가? 그 가족에게 모욕을 주고 테러를 하는 것이 죄에 대한 정당한 응보라 주장하던 인간들이 그리 많았었다.
김성민만이 아니다. 그동안도 줄곡 해 온 말이고, 내 입장이기도 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그런 피상적인 말이 아니라 죄를 지었다는 것이 한 인간의 존재와 가치를 부정할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고 단지 그가 그런 경우였을 뿐. 그렇다면 어떻게 그 이유를 알고 그 대책을 알고 그를 다시 정상으로 되돌리며 사회적으로 경계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과거에는 단지 10살짜리 어린아이도 일벌백계 차원에서 소매치기 했다고 광장에서 대놓고 목을 매달고 혹은 잘랐다. 더 엄격한 형벌만이 범죄를 없앨 수 있다. 하지만 그다지 현명한 생각이 아니었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엄격한 형벌이 있는 곳에 범죄도 더 많다. 법을 두려워하면 비굴해지지만 스스로 길을 알아 찾아갈 수 있으면 당당하다. 논어의 말이다.
그래도 알아온 사이로서 그만한 말 한 마디 못할까. 김성민이라는 개인에 대한 것이지 전적으로 "마약을 한 김성민"만이 존재하며 그렇게 대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네티즌. 그리고 한국인. 틀렸다는 것은 아닌데, 그것이 절대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도 있다.
별로 필로폰을 밀반입까지 하려 했던 김성민을 옹호하려는 건 아닌데. 필로폰이라는 게 시작은 쉽지만 나중 가면 절제가 안 된다는 점에서 지금은 괜찮으니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다 생각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건 그것 이건 이것. 인간을 증오할 것인가? 죄를 분노할 것인가? 생각이 필요하다 하겠다.
답은 하나가 아니다. 그 답을 찾아 인간의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세상에 가장 쓸데없는 것이 생각없이 똑똑하고 생각없이 정의로운 사람이다. 옳고 바른 사람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가장 전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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