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영화의 한 장면에서처럼,
"네... 네가..."
배에 칼을 꽂은 상대에 대해 죽어가면서도 화를 내고 미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애닲아하고 눈물을 흘린다.
불교의 자비란 어머니가 자식을 애닲아 하는 마음을 뜻하는 단어다. 어머니께 그리 잘못을 저질러보라. 사고를 치고 말썽을 부리고, 그리고 죄를 저질러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얼마전 김수철의 경우에도 그 양부모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비난받는 피가 이어지지 않은 자식에 대해 여전히 슬퍼하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내가 더욱 김수철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였지만. 저리 좋은 부모를 두고.
사랑이란 결국 슬퍼하는 것이다. 슬퍼할 줄 아는 것이다. 화를 내야 할 때. 미워해야 할 때. 비웃어야 할 때. 놀려야 할 때. 하지만 그보다는,
"네가 왜...?"
놀랍고 당황스럽겠지. 충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마음에 지금의 모습이 단지 아쉽고 안타깝고 슬플 뿐이다.
물론 제 3자의 입장에서야 그냥 밉겠지. 하지만 그건 제 3자의 입장이다. 타인의 입장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임에도 단지 죄를 지었으니 같이 화를 내고 미워해야 한다? 그건 어느 나라 법인가? 어느 나라의 윤리이고 가치인가? 사람의 당연한 정이라는 것이다.
도대체가 모니터 너머로만 세상을 보다 보니 세상이 모니터만하게만 보이는 것인지. 모니터에서 나오는 열 이상의 체온은 느껴보지도 못한 모양이다.
사랑한다는 건 슬퍼할 줄 안다는 것이다.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슬퍼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너 죄를 저질렀어? 이 새끼! 다시는 아는 체도 하지 마!"
글쎄...
그렇다고 죄나 악 그 자체를 감싸고 비호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테지만 그런 것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도.
엄한 벌보다 어머니의 애처로운 눈물이 더 죄의 무게를 무겁게 느끼게 하는 법이다. 가까운 이들의 실망어린 안타까운 모습들이 죄의 무게를 더 버겁게 만드는 것이다. 사랑이 있어 사람은 먼 여행을 떠났다가도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사람을 사랑하라. 모든 사람은 아니더라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단지 안타까운 일일 뿐. 그 아픔은 어떠하겠는가.
뭐 대부분은 아는 상식일 테지만. 그래서 사람의 당연한 정이라 하는 것이다. 당연한 마음인 것이다. 괜히 혼자 정의로운 척 하는 인간들이나 저러고 있지. 웃기는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정의로운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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