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어른이란 자신의 미래다. 어른에게 아이란 자기의 과거다. 아이는 어른을 보며 자기의 미래를 꿈꾼다. 어른은 아이를 보며 자기의 과거를 후회한다.
어른들은 항상 말한다.
"다 너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
그러나 그곳에 "너"란 없다. "너"를 통해 보는 "나"만이 있다.
분신이라 한다. 말 그대로다. 아이란 나의 일부며 또다른 자신이다. 인간은 바로 그 아이를 통해서 영생을 얻게 된다. 이기적인 유전자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끼도록 되어 있다.
자식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어머니.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가장 이기적인 행동이기도 한 것이다. 아이란 자기 자신이니까. 자기를 대신해 살아갈 존재니까. 내가 죽어도 이 아이를 통해 나는 산다.
그래서 그러는 것이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 내가 미처 해보지 못했던 것들. 내가 미처 갖지 못했던 것들. 그리 했으면 하는 것들. 그리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 마치 과거의 자신에게 말하듯.
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 어른이란 자기의 미래다. 부모란 아이가 장차 자라서 만나게 될 자기의 모습이기도 하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거울을 보게 되면 바로 저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
저렇게 되고 싶다. 저렇게는 되지 않겠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야겠가. 나는 이렇게는 살지 않겠다. 동경하고 모방하고 반발하고 경멸하면서 그렇게 아이는 자기의 미래를 그려간다. 부모의 그늘 아래서. 부모의 그림자를 보면서.
아이와 어른이 서로 필연적으로 충돌하고 마는 이유가 아니다. 아이는 어른이 될 수 없고, 어른은 아이가 될 수 없다. 아니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될 수는 있지만 어른이 다시 어려져 아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는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어른은 머물러 뒤만을 돌아보고. 충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춘기란 아이가 스스로 홀로서고자 하는 시기다. 어른의 그늘을 벗어나서 그에 반발하며 자기만의 정체성을 갖추어가는 시기다. 그것을 어른들은 반항이라 부른다. 다 저를 위해 하는 것인데. 앞으로 나아가려는 어른과 뒤를 돌아볼 나이가 되어 버린 어른과, 그래서 아이와 어른은 항상 갈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매리는 아버지와의 사랑을 위해 야반도주를 선택한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아왔다. 이미 세상에 없는 어머니이기에 그 그림자는 더 짙었는지도 모른다.
위매리의 아버지 입장에서 위매리란 자신과 만나기 이전의 아내의 모습이다. 평생을 고생만 하다가 죽은 아내란 그에게 있어 일생의 가장 큰 후회이며 사랑하기에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달리 선택하고픈 아픈 기억이다. 위매리는 어머니와 같이 사랑을 쫓으려 하고,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달리 현실을 쫓기를 바라고.
정인의 아버지 역시 자기 아들인 정인이 자신이 이루지 못한 사랑을 대신 이루어주기를 바라며 집착하고 있는 중이다. 정인은 자기가 아니고, 위매리도 그녀의 어머니가 아님에도 그를 통해서 과거의 자신과 위매리의 어머니를 보려 하는 것이다.
"네 웃는 얼굴은 어머니를 꼭 닮았구나."
다만 차이라면 정인의 경우는 아버지에 대해 어떤 거부도 반항도 할 수 없다는 것. 아버지에 의해 구원받는 순간 정인은 단지 아버지에 대한 복종만을 강요당할 뿐이었다.
위매리란 정인에게 따라서 아버지의 뜻이기에 따라야 하는 대상인 동시에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쟁취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위매리만 손에 넣는다면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정확히는 아버지의 꿈을 이루어드림으로써 비로써 같은 위치에서 대등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강무결이 결혼을 거부하고 짧은 만남만을 갖는 것도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제대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지 자신이 없다."
강무결이 위매리의 아버지에 대해 불편해하고 어색해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으니까. 위매리의 아버지처럼 구속하고 집착하는 가족에 대한 기억이 없으니까. 그것은 그가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것이었다.
"너는 도대체 언제나 아버지로부터 벗어날 건데?"
어머니로부터 철저히 방치되어왔던 강무결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가족이기에 그래도 아버지를 완전히 외면할 수 없다는 위매리를 그래서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단지 좋아하니까 함께 있고 싶다. 결혼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다. 결혼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정인이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가 한 마디로 하지 못한 것은 그래서다. 가정을 이루고 가족을 책임지며 산다는 생각을 전혀 해 본 적 없을 테니까.
"엄마는 결혼 안 해?"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 보는 신기한 것을 부모에게 묻는 것처럼 보였다. 전혀 자기는 갖지 못한 것. 자기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것. 하지만 인간이기에 그에게는 다연히 주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욕망과 동경이 있다. 마침내 어머니에게 물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매리 너와 함께라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어머니가 답을 주지 못하기에 그는 위매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가 위매리에게 이끌리고 마는 이유다. 그에게는 없는 것이 그녀에게는 있다. 인간이기에 당연하 욕망하는 것이지만 기억조차 없는 그것이 그녀에게는 있다. 매리는 그에게 반드시 갖춰야 하는 잃어버린 일부다.
위매리를 통해 위매리의 아버지와 마주하게 되고. 위매리와 함께 위매리의 아버지 앞에 무릎꿇고 앉은 모습은 그가 아버지라고 하는 존재에 - 가족에 대해 점차 다가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로의 부모에 대해서 위매리와 다투는 가운데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이 생긴 것일까?
다만 경험하지 않은 아버지와 기억에도 없는 기족에 대해 강무결은 어떻게 위매리와의 관계에서 자기의 역할을 찾아가는가. 어른으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자기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자각해 가는가. 앞으로의 내용은 아마 그에 대한 것이 되지 않을까.
아마 서준 또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에 대한 반발이 그녀로 하여금 지나치게 강한 척, 독립적인 척, 가면을 쓰고 자기의 미래를 일정부분 포기하게끔 했을 것이고, 바로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위해 강무결에 집착하기도 했었던 것이었다. 서준이 강무결에게 이별을 선언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믿음이 - 어쩌면 그 전에 정인으로 인해 깨어진 때문일 것이다. 과연 그녀는 또한 정인에게 이끌려갈 것인가?
하여튼 집착하는 부모와 그에 반발하는 자식과. 하긴 대부분의 만화독자들은 자식의 입장에 있다. 그래서 많은 만화에서 부모란 자식과 갈등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억지와 집착, 강제와 강요, 구속, 그렇기 때문에 부모란 또한 만화 속에서 아이와 대립하는 안티테제로서 존재하는 것일 테고. 동경하거나 혹은 증오하거나.
역시나 오늘도 닭살을 주체 못하고 고양이 끌어안고서야 겨우 끝까지 볼 수 있었는데. 닭살에는 역시 닭 잡아먹으라고 고양이다. 우리집 녀석들도 조금 버거워하기는 하더라. 이런 노골적인 순정만화도 오랜만이라.
흥미로웠던 것은 역시 결혼에 대해 고민하는 인디밴드의 음악인들. 나도 먹고 살기 위해 음악을 그만두었더라는 밴드의 리더를 아는 터라.
밴드를 하려고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구했다. 직장에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밴드를 하고. 그런데 갈수록 현실의 어려움은 밴드보다는 직장에 더 비중을 두도록 강요하고, 마침내 결혼을 생각하는 여자가 생기고 나니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가장 속편한 게 음악과 결혼하는 것이다."
하기는 결국은 음악을 버리지 못하니 그리 되는 것일 테지만. 낮에는 직장 다니고, 밤에는 밴드 하고, 그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어지간히 좋아서는 못 한다.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현실에 돈도 안 되는 밴드로 가정을 언제까지나 희생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외진출의 제의가 있었는데 그러면 그동안 겨우 뚫어 놓은 벌이마저 놓치게 될까봐 포기했다는 밴드의 이야기도 들은 적 있는 것 같다. 좋은 기회였는데 그러자면 가족을 굶겨야 하니까.
그같은 현실이 강무결이 위매리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하게끔 하는 장치로써 쓰이고 있다는 점이 또 흥미로운 요소. 인디음악인 강무결은 어떤 선택을 통해 위매리와의 관계를 만들어갈 것인가. 가족으로서 뿐만 아니라 인디음악인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나저나 확실히 만화는 만화였다. 한 켠에 세워진 고풍스런 차와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그리고 어깨를 기댄 연인, 손에는 기타가 들려 있고...
그런데 개연성은 별로 없다. 밤도 아니고 이른 아침에 그러고 이어야 할 개연성도 없고. 그냥 분위기잡기용? 순정만화가 또 그런 난해함이 있다. 보기에는 좋았지만. 보기에 좋았으니 된 것이고.
아무튼 다음주부터가 흥미롭다. 강무결과 서준의 키스 이후 위매리의 반응도 반응이겠지만, 상당히 궁지에 몰린 정인과 서준의 대응도 그렇다. 고전적인 선과 악의 대결이 될 것인가? 아니면 사람 좋은 존재가 있는 라이벌로 끝날 것이냐? 요즘 트렌드라는 게 있기는 하지만. 악역이 되기에는 인상이 너무 선하다.
역시나 오늘도 손발오그라듦과의 투쟁이었다. 온몸에 닭살에 근육이 꼬여대는데. 그게 바로 순정만화의 매력이니까. 약간은 뜬금없는 내용들이. 장르란 그런 것까지 이해하며 보는 것이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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