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보고, 다른 하나는 명령이다. 그리고 보고에는 서사와 묘사가 있는데 사건을 중심으로 보는가, 아니면 상황을 중심으로 보는가.
이를테면 어떤 남자가 있는데 이러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어떤 여자를 유혹해 호텔로 데려갔다더라. 서사다. 반면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는데 이러저러했고 호텔로 가서는 저러저러했다더라. 묘사다. 내가 가끔 하는 포르노에는 시나리오가 필요없다는 게 그런 것이다.
물론 비디오의 시대에 묘사는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서사를 위한 것인가? 묘사를 위한 것인가? 서사만 존재할 수도 없고 묘사만 존재할 수도 없다. 가끔 어떤 목적을 위해 서사만으로, 혹은 묘사만으로 구성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보고란 서사와 묘사를 함께 한다. 단, 어느 것을 우선할 것이냐?
이를테면 포르노에서라면 역시 섹스가 주가 될 것이다. 섹스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지 그 과정이나 그 이후에 대해 공감을 얻자는 게 아니다. 얼마나 더 자극적으로 더 흥미를 느끼도록 상황을 배치하는가. 그나마 극장에서 상영되던 포르노에는 어느 정도 네러티브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트랜스포머 역시 목표한 것은 화려한 CG와 액션장면. 얼마나 멋진 영상을 보여주는가가 목적이기에 시나리오도 그를 위해 쓰여진다. 네러티브가 부실하다는 것은 그래서다. 그리고 그런 대표적인 예가 아마도 일본의 전대물이나 TV애니메이션 시리즈물일 것이다. 비슷한 서사구조에 단지 등장하는 악역의 캐릭터만 바뀌는 단순한 전개. 하지만 그 단순함이 있기에 사람들은 웃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비슷한 것으로 개그콘서트의 각 코너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인 포맷은 유사하다. 서사구조도 동일하다. 단지 그 안에 채워지는 말이나 행동들이 다르다. 그것을 담보하는 것은 캐릭터. 관계. 아마 그런 것을 달리 시추에이션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말 그대로 상황이다. 장면.
그리고 반면 서사가 위주인 작품에서는 장면이란 그 서사를 떠받치는 장식과 같은 것이다. 장면과 장면이 이어짐으로써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야기와 이야기를 통해 장면이 만들어지는 묘사중심의 이야기와는 상당히 대립되는 개념이다. 때로는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가뿐하게 무시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고, 세세한 디테일에 대해서는 우습게 여기는 것도 있고. 일단 스토리만 잘 이어지면 되니까.
비유하자면 서사위주라면,
"이러이러한 사건이 있고 이렇게 전개되는데 여기서 이런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면 좋겠지?"
반면 묘사위주라면,
"이런 장면을 넣고 싶은데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위주다. 어느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서. 하지만 그 차이는 커서 묘사위주라면 아무래도 장면장면을, 서사위주라면 아무래도 큰 흐름을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스토리를 중요하게 여길 것이냐? 텔링을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이냐?
일본 대하드라마의 경우는 역시 묘사위주다. 디테일이 상당히 강하다. 우리나라 대하드라마는 사건 위주다. 스케일이 크고 힘이 있다. 드라마에 있어서도 일본 드라마는 캐릭터와 스토리에 더 중심을 두는 편이고, 우리나라는 관계에 더 중심을 둔다. 일본 드라마가 아무래도 빠르고 산뜻한 것이나 우리나라 드라마가 끈적거릴 정도로 감정을 자극하는 건 그래서다. 전대물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래서 우리나라 드라마는 뻔하다는 소리도 듣는다. 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묘사하는 것.
다만 아무래도 보이기에는 스토리가 먼저이기 때문에 묘사보다는 서사가 보다 사람들에게 가깝게 다가온다는 것. 묘사는 조금 더 훈련이 필요하다. 과연 그러한 묘사가 적절했는가는 서사보다 더 밀접한 작가와 배우와의 교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쉬운 게 아니다. 그래서 묘사위주로 갈 때는 어려움이 있다. 하다못해 무협소설에서도 싸우는 장면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기보다는 그냥 스토리만 키우는 쪽이 더 인기가 있다. 어떤 무공으로 어떻게 싸우는가보다 어떻게 강해져서 어떻게 적을 무찌르는가 하는 단순함이 더 잘 통한다.
음악도 사실 마찬가지다. 음악에서 스토리라면 가사와 멜로디겠지. 그러나 그것을 살리는 것은 편곡과 연주일 것이다. 하지만 편곡이라든가 연주라든가 다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발라드가 대세를 이루던 것은 그래서다. 록이란 아무래도 연주가 중심이니까. 무대가 중심이다. 어떤 멜로디, 어떤 가사, 어떤 비트인가가 아니라, 현장에서 공감하는 어떤 것에 록의 가장 중요한 무엇이 있다. 정형화된 현재의 일렉트로닉 댄스음악과도 다른 어떤 것이다. 그런 현장감에 대해서는 사실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아쉽게도.
아마 그런 가장 극단적인 예가 예능이 아닐까? 예능이란 다시 말해 묘사다. 디테일이다. 어떤 서사를 쫓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캐릭터의 디테일을 쫓는 것이다. 리얼버라이어티라는 것도 바로 그러한 캐릭터와 관계에서 나오는 디테일에 그 핵심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사람들이 보는 것은 서사. 예능에서마저 스토리를 보려 한다. 깔깔거리고 웃는 것은 결국 각 장면일 텐데, 다 보고 나서는 전체적인 서사를 가지고 의미를 부여하고 비판한다. 사실 예능에서 핵심은 그 웃는 그 부분, 혹은 감동을 받은 그 부분, 나머지는 개그콘서트의 콩트 코너와 마찬가지로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 텐데.
드라마를 보더라도 이것은 서사위주인가. 아니면 묘사위주인가. 상황과 장면의 디테일을 볼 것인가. 이야기의 유기적인 흐름을 볼 것인가. 개인적으로 서사 쪽은 충돌하는 게 많아서 잘 보지 않는 편이라. 서사는 생각많은 사람이 보기에 그리 적절치 않다. 묘사는 순간을 즐기면 되므로. 이야기야 서사적이더라도.
문득 생각났다. 네러티브가 너무 부실하다. 시나리오가 허술하다. 스토리가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것도 있는 법이거든. 하지만 너무 그런 쪽으로만 몰아가니까. 물론 나도 맥락없고 뜬금없는 것은 무척 싫어하지만서도. 서사가 받쳐주지 않는 묘사라는 것도 참 허무하다.
가끔 말이 바뀌고 하는 이유다. 이것은 서사위주로 보는가. 아니면 묘사위주로 보는가. 유기적 흐름으로 보는가. 디테일로 보는가. 평가도 그에 따라 다르다. 말도 다르고. 보는 기준이 다른 것이다. 어쨌든.
뭔가 용어를 정리해서 쓰고 싶은데 귀찮아서. 어차피 이런 종류의 글은 잘 읽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가끔은 성의를 가지고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도 있지만. 역시 블로그에 쓰는 글은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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