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Game - 부활 2집과 3집의 잃어버린 고리...

까칠부 2010. 12. 18. 09:49

부활의 음반을 나온 순서대로 한참을 이어듣다 보면 어딘가 위화감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 2집에서 3집으로 넘어가는 사이. 비록 6년의 공백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너무 극적이지 않은가. 도대체 3집의 아련한 서정성이나 4집의 난해한 구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남의 음악도 잘 안 듣는 사람이.

 

비로소 잃어버린 고리가 맞춰지는 것 같았다. 2집을 이어받아 우울하며 가라앉아 있다. 메탈시절의 흔적도 "자연스럽게"와 "어색해"를 통해 나타난다. 자폐적인 세계로 침잠해들어가던 기타가 아련한 안개와 함께 몽환속에 깨어나기 시작하는 것이 "다시 그 길에서". 그 기타톤은 확실히 3집의 그것에 이어진다. 회상3를 연상케 하는 난해하면서도 스케일있는 곡구성은 4집의 "기억이 부르는 날에"로 이어지는 듯 하고. "꿈"과 "초연2"를 듣고 있으면 "다리를 걷는 여인""시를 부르는 시인의 시""거미의 줄""나비" 등으로 이어지는 김태원식 프로그레시브의 단초를 느끼게 한다. 물론 그 뿌리는 2집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리라. "인형의 부활"에서 "천국에서" 그리고 연주의 힘을 빼며 "회상3"는 이렇게 김태원만의 사색적이고 관조적인 음악세계로 이어진다.

 

앨범으로서의 구성도 2집을 이어받은 만큼 통일성 있고 충실하다. 이게 음반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가끔 곡 넘버를 놓쳤다. "자연스럽게"와 "어색해"는 분명 메탈이고 전반적으로 곡의 스타일이 같은 것도 아닌데 가만 듣고 있느면 한 노래를 듣는 듯 통일성이 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가사만이 아니라 멜로디와 코드, 리듬까지도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끝까지 이어진다. 아마 김태원의 이같은 앨범아티스트로서의 완고함은 2집 이후 4집에서 마무리되었으리라. Game은 그런 점에서도 김태원 음악의 잃어버린 한 고리를 채워준다.

 

다만 그럼에도 그다지 사업적인 성공을 기대한 음반은 아니지 않았을까. 3집의 "사랑할수록"이 그토록 김태원 자신도 다시는 쓰기 싫다 할 정도의 실험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완성도를 갖출 수 있었던 이유. "사랑할수록" 역시 Game의 스타일을 이어받고 있다. 그러나 대중음악으로서의 마무리에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이것은 4집에서 "기억이 부르는 날에"가 실패한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김태원의 감수성은 확실히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의 말대로 그의 음악은 대중과 만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실패한 이유가 눈에 보인다. 일단 홍성석의 보컬에는 대중을 끌어들일만한 매력이나 대중을 윽박지를 힘이 부족하다. 김태원의 목소리가 그나마 뒤에서 받쳐주고 있는데 그래도 이렇다 할 끌리는 매력이 없다. 곡도 너무 난해하고. 이런 걸 노래방에서 부르라고? 우리나라에서 히트하는 노래는 따라부를 수 있는 노래다. 이건 연주를 듣고 전체적인 사운드를 듣자는 음악이지 노래를 듣고 따라부르자는 음악은 아니다. 회상3는 실패하고 마지막콘서트는 성공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김태원의 음악적 욕심이 보인다. 김태원이 한때 일관되게 추구하던 어떤 스타일이 보인다. 그곳이 김태원의 음악적 지향점이 있으리라. 그러면서도 아마도 약에 취해 있을 때인 듯 대중을 위한 배려가 전혀 없다. 그나마 2집에서는 대중과의 접점을 아주 외면하지는 않았는데 이건 대중은 전혀 신경쓰지 않은 자위형 음반이다. 한국 대중은 이런 아티스트적인 오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돈되지 않은 난해함은 성가시고 거슬린다.

 

다만 그럼에도 이런 것이 내 스타일이라는 것. 난해하고 우울한데 어쩐지 이런 게 내게는 딱 맞는다. 부활의 음반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것도 그래서 4집이다. 4집이 아무래도 정돈되고 완결된 느낌이라면 Game은 제멋대로 흩뿌려진 듯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성이 귀를 잡아끈다. 아마 그것이 아니었다면 이런 독특한 느낌의 음반은 힘들지 않았을까. "자연스럽게"와 "어색해" 같은 그다지 이렇다 할 매력이 없는 넘버들조차 그래서 Game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며 그 안에 녹아든다. 일부러 들으려 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키보드가 아내 이현주씨라고? 드럼은 락락락에서도 나왔던 서문악기사에서 함께 드럼 연습하던 The End 초기멤버 황태순이다. 가장 어려울 때 함께 했던 동지일까? 원래는 부활 3집으로 나오려 했다고 하고. 그러나 이승철도 증언했듯 부활을 해체하면서 약에 취한 김태원조차 모르는 어떤 이유로 부활이라는 이름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 중간에 백강기 매니저가 끼어 있었을 듯. 김태원이 만든 부활인데 그러나 부활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 그래서 새로 멤버를 구해 만든 앨범이 Game. 부활의 숨겨진 앨범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그래서 부활 음악의 일관성을 - 정확히는 김태원 음악의 일관성을 이어간다. 2집과 3집 사이에는 반드시 이 음반을 들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시나위 4집과 5집 사이에 "자유"의 음반을 듣지 않으면 안 되듯.

 

우연찮게 발견한 것인데. 블로그에 전곡을 올려놓은 것을 들었다. 한참을 듣고, 또 듣고, 반복해 듣고, 그리고 이것 참 마음에 든다. 갈수록 이런 스타일의 음악이 좋아진다. 찾아 듣기도 힘든 스타일이. 김태원만의 그 자폐적인 음악세계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성이 참으로 듣기에 좋았달까.

 

망했거나 말거나, 평론가의 평이야 어떻거나 말거나, 아, 그리고 원래 부활 2집과 Game 사이에 위치하는 부활의 또 한 사람 숨겨진 보컬이 아마 신성우일 것이다. 이승철이 나가고 부활이 해체되고 Game이 결성되는 사이에 아마 함께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태원은 약에 취해 신성우의 가능성을 - 그보다는 홍성석의 목소리를 들으니 김태원의 지향점은 신성우가 아닌 홍성석에게 있었다. 홍성석에게 그만한 힘이 없어 문제였지. 신성우에게도 그다지 김태원의 음악은 맞지 않았을지도. 그동안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던 것을 이렇게라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즐겁고 반갑다.

 

퍼즐의 즐거움은 비어있는 자리를 채워가는 재미일 것이다. 전작주의의 즐거움은 그의 작품이 갖는 일관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Game을 들음으로써 그것이 채워졌다. 부활의 - 김태원의 음악이 이로 인해 하나의 유기적인 선으로 완성되었다. 물론 음반 자체도 괜찮다. 완성도 이전에 취향이다. 아주 좋다. 보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