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매리는 외박중 - 어른의 사랑은 이기적이다...

까칠부 2010. 12. 20. 23:29

사랑에서 순수가 빠지면 욕망이 된다. 순수가 빠진 자리에 집착이 더해지면 탐욕이 된다. 그리고 순수가 다시 더해질 때 그것은 잔인해진다. 어른의 사랑이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순수를 잃어가는 것이다. 순수란 어쩌면 가장 지독한 이기일 수 있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나 아닌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될 때 사람은 타산적이 되고 욕심을 알게 되니. 타산적이란 곧 욕심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어른의 이기란 그래서 욕망을 향한 이기다. 아이의 이기와는 다르다.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아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만나지 말 것을 윽박지른다. 딸이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딸을 사랑하기에 절대 인정할 수 없다 말한다. 위매리에 집착하는 것은 아버지 정석의 아들 정인에 대한 나름의 사랑법일 것이다. 심지어 위매리와 떨어지려 하지 않는 강무결에 대해 폭력을 동원하려 할 정도로.

 

그리고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의 이기에 희생되며 그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아이가 또한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그러한 어른의 욕망을 극복해가는 과정이다. 하나의 인간이 되었을 때 그러나 아이들은 어른의 탐욕을 배운다. 위매리의 아버지 위대한이 아내에 대한 미안함으로 위매리를 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강무결의 어머니 강소정이 자신의 과거로 인해 위매리에게 잔인해질 수 있는 것처럼.

 

이안이 마침내 방실장으로부터 홀로서기를 시도했을 때 방실장은 그것을 가만 두고보지 않는다. 무도하고 무례하게 그를 찾아가고 그를 윽박지르며 그를 억압하려 시도한다. 역시나 정석이나 위대한이나 강소정이나. 어른은 아이가 진정으로 어른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아이란 단지 아이일 뿐. 아이란 단지 대상이며 자기의 일부일 뿐. 탐욕은 아이조차 소유물로 여긴다. 아이는 그래서 더욱 어른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고.

 

많은 드라마 만화 영화의 주제다. 다양한 형태로 여러가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는 전개되지만 주제는 결국 하나다. 어른이 되는 것. 어른이 되어서도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그것이야 말로 사람들의 무의식이다. 억압과 강제, 그리고 그를 극복하기. 아무리 나이를 먹어서도.

 

참 허무하다. 술에 취한 정인이 위매리를 자빠뜨리고, 그것을 강무결이 발견하고... 그나마 쓰러진 정인에 대해 강무결이 더 이상 행동에 들어가지 않는 점이 색다르달까?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전혀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 마지막 강무결의 납치. 어쩐지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았다.

 

말했잖은가? 이 드라마는 전형적이다. 순정만화의 정석을 그대로 밟고 있다. 그것이 더욱 드라마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지만. 전통적인 네러티브 구조보다는 순간순간의 상황과 장면들이. 그 상황과 장면들을 이어가는 감정의 선이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조차도 진부하고 난해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대해서마저 동의했을 때 순정만화란 재미있는 것이니.

 

글쎄... 재미있었을까? 하지만 순간순간 보여지는 장면들은 충분히 시간을 들여 TV앞에 앉은 보람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멋진 그림이라면 스토리따위 상관없이 만화는 볼만할 것이다. 별 내용도 없는 무한의 주인이 그리 화제가 되는 것도 그래서. 눈으로 보는 것이기에 TV드라마에서도 보이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다. 이 드라마는 바로 그런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이고.

 

좋지 않은가? 강무결도 잘 생겼고, 정인도 훈남이고, 이안은 조금 얄상하기는 하지만, 서준은 멋있고, 위매리는 귀엽다. 패션은 정교하게 계산되어진 것 같고, 장소의 섭외며 소품의 배치마저 판타지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것이 만화라는 데만 동의할 수 있다면. 그런 드라마임을 인정할 수 있다면.

 

뻔하지만 그래서 기대하며 보게 된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일 게다. 이쯤 되면 앞으로의 내용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다 알면서도 그래도 다음권을 집어들고, 다음호를 기다리는 것. 정인 역의 김재욱이 또 기사로도 났던데. 시청율이 아쉽지만 그거야 내가 알 바 아니고. 나는 충실히 내가 바라는 재미만을 즐길 수 있으면 된다.

 

원작이 원래 그랬을 것이니 작가를 탓하기도 감독을 탓하기도. 비주얼도 연기도 훌륭하니 연기자들을 탓하기도. 단지 취향이 마니악함을 탓할 밖에. 만족스런 한 회였다. 이번주도. 좋다. 다시 내일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