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불만이었다. 그리고 부러웠다. 우리나라에는 왜 저런 영화가 없을까?
전설적인 락밴드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들을 보면서. 이미 전설이 되어 버린 락스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을 지켜보면서. 왜 우리는 저런 영화가 없는가.
물론 락을 소재로 한 영화는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가상의 밴드들. 실제의 락밴드가, 음악인이, 그의 삶이, 그의 음악이 주인공이 되어 만들어진 영화는 없었다. 한 마디로 락스타가 없었다. 전설이 없었다.
어디 전설이 없을까? 신중현도 있고, 김창완도 있고, 송골매도... 그러고 보니 송골매가 출연한 영화가 있기는 했다. 자전적이었는가는 모르겠도 아무튼 락밴드가 주인공이 된 드라마였다. 그러나 그것이 대중과 대중매체를 통해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 락이란 꿈이며 동경일 텐데, 그런 모델이 될만한 스타가 없었다는 것이 이 나라의 대중들로 하여금 락과 더 멀어지게 만드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딱 적절하다. 해외 락스타들도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약물이다. 실패로 인한 좌절도 있다. 혼란과 방황과 절망. 팀내 갈등도 당연하고. 이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음악인이 또 누가 있을까?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까지도 드라마틱하게 담아낼 수 있는 소재란.
적절한 소재였고, 그래서 더욱 오랜 기다림이 새롭다. 우리나라에서도 드디어...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어쩌면 예능인으로서의 김태원의 이미지가 더 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능인으로서의 김태원의 인지도가 이런 드라마까지 만들게 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미 만들어졌으니까. 예능인이 아닌 음악인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리고 지금도 현역인, 전설이 되어가는 음악인에 대해서.
어찌 보면 참으로 불우했던 삶을 살았던 음악인이었다. 김태원만이 아니다. 원래 신성우의 음악은 이근형이 함께 만든 것이었다. 내가 알기로 신성우와 이근형, 이근상 형제가 의기투합해 만든 말하자면 밴드였는데, 단지 솔로가 대세이기에 신성우의 이름을 앞세웠다고. 본 조비 밴드의 이름이 본 조비이듯. 90년대 중반 김종서가 잘 나갈 때 그의 밴드의 이름도 김종서였다. 그리고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신성우. 이근형은 신성우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잊혀졌다.
그나마 김태원은 예능으로라도 떴지. 신대철의 이름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김도균은? 이현석은 솔로앨범도 내고 했으니까. 손무현도 솔로 앨범을 냈었을 것이다. 자우림도 이선규의 이름일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기타만일까? 더욱 드럼이나 베이시스트는 알아주는 이가 거의 없다. 시나위며 백두산이며 부활이며 H2O며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이 모인 밴드였지만 남는 것은 그나마 보컬의 이름 뿐. 보컬이라도 알려주면.
김태원이 들먹인 이름들. 윤수일밴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당시 밴드라고 하면 보컬을 중심으로 뒤에서 반주해주던 밴드였다. 그나마 밴드 이름이라도 써주면 다행이다. 심지어 무대에 서는데 보컬만 혼자 무대에 서고 밴드는 한참 떨어져서 구석에서 연주만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게 당시의 밴드였고, 따라서 연주자들은 철저히 소외될수밖에 없엇다.
벗님들이 깨진 게 바로 그래서. 이치현도 그래서 벗님들을 깨고 나와 이치현과 벗님들을 만들었지. 워낙에 보컬에게만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결국 팀의 조화마저 깨뜨리고 마는 것이다.
이승철을 질투하는 부활의 멤버들이 속이 좁다? 하지만 밴드란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팀이다. 밴드에서 각 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1/n이다. 그래서 수입도 같이 나눈다. 그런데 어느 하나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받고 그로 인해 나머지가 소외되면? 그때는 더 이상 한 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에 종속되거나, 아니면 그 누군가가 떠나거나. 그렇게 많은 팀들이 깨져나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밴드가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가 보컬에 대한 관심이 유달리 더 크기 때문. 연주는 듣지 않는다. 연주따위 없어도 상관없다 여긴다.
오죽하면 김태원이 이런 말도 했었다.
"그냥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기타를 치고 있다 보면 보컬 옆에 기타치는 사람이 하나 있었구나. 그렇게라도 기억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언젠가 길가다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렇게 물었다던가?
"부활에서 이승철씨 옆에서 기타치던 사람 맞으시죠?"
그러고 보면 김태원이 그런 말도 했었다.
"부활 멤버가 다섯 명이라는 사실을 알리기까지 2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승철이 마치 악역처럼 나왔지만 그것이 당시 가요계의 현실이었으니까. 그래서 구창모도 송골매를 떠났고, 말했듯 이치현도 벗님들을 등졌고,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나 윤수일밴드나 조용필과 윤수일만을 기억하고. 김태원의 말마따나 곡쓰기라도 못하면 그대로 잊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 필사적이었겠지.
더불어 경제난도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앨범 판다고 가수에게 돌아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인세라는 자체가 없었다. 앨범이 나가면 나가는가보다. 전영록조차 당시 그리 많은 음반을 팔았으면서 정작 음반 팔아 번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말하고 있었다. 음반 팔아 버는 돈은 오로지 음반사가 다 가져가는 시스템이었다. 100만 장이 팔리든 200만 장이 팔리든. 그래서 탈세를 목적으로 판매량을 속여 정확히 몇 장이 팔렸는가 모른다. 시나위도 10만 장 팔았다지만 30만 장 팔렸다 하고, 부활 1집도 대충 30만 장 정도 팔렸다는데 그 이상은 누구도 모른다. 콘서트 한다고 돈 되던 시절도 아니고 결국은 배가 고파서.
박완규가 부활을 나온 이유도 20만 장인가 팔렸는데 너무 가난해서라 했었다. 이성욱이 결국 부활에서 쫓겨난 것도 연이은 앨범 실패로 부활의 존립마저 위태해졌기 때문이었다. 시나위에서도 멤버의 교체는 결국 음악적인 견해차이도 견해차이지만 경제적인 이유가 컸었다. 밴드는 돈이 되지 않는다. 이승철도 부활을 나와 걸프렌드라는 밴드를 결성하지만 결국 앨범 하나 내놓지 못하고 해체하고 어쩔 수 없이 솔로로 나섰을 것이다. 당시 걸프렌드의 멤버가 손무현과 윤상이었으니 이것도 대단한 슈퍼밴드였던 셈.
다만 회상3를 마지막콘서트로 개명해 부른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지 않을까. 거의 다른 노래거든. 회상3와 마지막콘서트는 제목부터가 전혀 다른 의미를 준다. 더구나 김태원이 곡을 쓴 의도가 그것이 아니고 보면. 드라마에서도 어느 정도 이승철의 입장을 고려했을 텐데도 그 허락받는 과정이 석연치 않은데. 참고로 또 이 마지막콘서트 버전을 편곡한 것이 바로 유영석이었다. 나는 이 회상3 버전을 더 좋아한다.
아무튼 여러 의미와 재미에도 불구하고 가장 드라마에 몰입하는데 방해요소가 되었던 것이 노민우의 목소리. 생긴 거야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그 징징거리는 듯한 목소리의 울림이 자꾸 사람을 짜증나게 만든다. 너무 청승맞다. 드라마는 우울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김태원 자체는 담담해야 한다. 오히려 담백하게 연기해야 비극이 더 심화될 수 있다. 그런데 자기가 먼저 울어버리니. 완전 신파가 되지 않는가 말이다.
워낙에 오글거리는 것이야 감수하고 보는 드라마지만 노민우의 목소리 때문에 몰입하기가 그리 힘들었다. 아니 연출자의 탓일까? 아무래도 연기지도를 하는 건 연출자의 몫일 테니까. 비주얼도 그만하고 드라마 주인공으로서 적격이었을 터인데.
그나저나 사랑할수록, 내가 알기로 이 노래가 그렇게 쉽게 나온 노래는 아니었다. 한 순간에 뚝딱하고 만드니 곡이 나오더라. 멜로디는 일찌감치 나왔는데 그것을 대중음악에 어울리게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지인들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던 것으로 안다. 김태원도 아마 다시 쓸 수 없는 곡이 사랑할수록일 것이다. 30대로 넘어가는 열정과 연륜과 거친 감수성과 관조가 어울리는 그런 묘한 카오스의 분위기는. 개인적으로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부활 음악 가운데 최고로 꼽는데.
그리고 부활 3집에서 정식멤버는 김태원 단 하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김재기는 죽었고, 김재희는 객원보컬, 정준교와 김성태는 세션, 3집이 성공하고 4집을 앞두고서야 김태원은 정준교와 김성태를 다시 맞아들이며 부활의 재결성을 발표한다. 이때까지 정준교도 김성태도 부활의 정식 멤버는 하나였다. 부활 3집만 놓고 보았을 때 부활은 김태원 1인밴드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덧붙여 어제 오전에도 썼는데, 김태원이 결정적으로 음악인으로써 끝났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 GAME의 실패 때문이었다. 이승철이 밴드를 나가면서 멤버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다시 황태순 등과 손을 잡고 원래는 부활 3집이었을 - 그러나 계약상의 문제로 부활의 이름을 쓰지 못하게 되며 새롭게 만든 밴드가 GAME이었다. 그러나 부활 2집의 암울함에 부활 4집의 난해함까지 겸비한 앨범은 실패했고, 이후 김태원은 다시는 재기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이때 부인 이현주씨가 키보드까지 맡았었다고 하는데. 역시 단편이라 이런 부분까지 상세하게 다루기는 무리였겠지. GAME의 실패가 김태원을 더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셈.
그리고 추가하자면 부활 2집이 그렇게 망한 앨범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전곡이 라디오차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러나 겨우 활동할만하니까 김태원이 잡혀들어갔던 것이었다. 김태원이 잡혀들어가지 않았다면 부활 2집의 흥행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부활 3집도 반응이 상당히 늦었으니. 부활 8집 - 이승철과 함께 한 앨범도 조금 반응이 늦었다.
그러고 보면 무려 3개월이나 지나 반응이 오고 대박을 칠 수 있었던 시대라는 것이 그립기도 한데. 좋은 음악이라면 별다른 홍보 없이도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스며들어 히트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당시 부활의 신세가 여느 인디밴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시 그런 시절이 올지는.
이태윤이 나가고, 김종서가 떠나고, 그리고 이지웅을 잘라내고, 멤버가 교체되고, 다시 팀이 깨지고, 그런 과정들도 디테일하게 다루었으면 좋았을 텐데. 밴드에서 그건 필수거든. 싸움 한 번 없이 사이 좋은 밴드는 어쩌면 밴드가 아닐지 모른다. 서로 다른 개성이 만나 어우러질 수 있어야 밴드일 텐데,
하긴 그런 점에서 부활 역시 김태원의 독재가 심했던 단점이 있었다. 그것이 결국 6집의 실패 이후 팀이 아예 공중분해되어 다시 한 번 김태원 혼자 남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지금이야 예능에 나와 웃길 줄 아는 아저씨가 되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김태원 하면 성격이 장난 아니었거든. 많이 사람 된 거다. 드라마에서는 그런 부분 절반도 나오지 않았다. 더 멋있었을텐데. 락커는 그런 맛이 있어야 멋있다. 확실히.
잘 만든 드라마는 분명 아니다. 연기가 좋았는가면 그런 것도 아니다. 다만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의미가 깊은 드라마가 아니었을까. 그 시절을 추억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부활과 시나위와 백두산, 그러고 보니 백두산이 나오지 않은 것 같다. 재미있었다. 그 소재만으로도. 음악만으로도.
김태원이 아닌 다른 음악인들의 일대기도 이렇게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다. 무모하지만 부디.
덧, 드라마에 삽입된 부활 노래들이 특히 배우가 연기하는 장면들이 거의 부활 7집 2CD에 수록된 이성욱 버전이다. 거의 벼락치기로 녹음하느라 대충 찍어냈다는. 희야도 그렇고, 비와 당신의 이야기도 그렇고,
드라마 보다가 이승철이 부른 것과 사뭇 다른 느낌에 끌렸다면... 아, 7집 2CD는 대부분 막혀있지? 아마 전소속사가 망하면서 그 부분에서 저작권 문제가 완전히 해결이 안 된 듯.
그리고 8집까지 백강기 매니저가 나오는 부분은 그냥 드라마려니 하기 바란다. 백강기씨는 4집을 끝으로 매니저 일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 아마 그 무렵 백강기씨의 여동생인 민혜경씨의 앨범에 김태원이 거의 전곡을 써주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부활 3집이 나온 것은 아닌 듯.
말 그대로 백강기가 바로 민혜경씨 오빠다. 이 백강기가 이후 블랙홀도 데뷔시킨다. 이승철더러 악기 사 오라 한 것도 이 양반. 녹음하다 틀렸다고 불러다 조인트 깐 것도 이 양반이다.
그러고 보니 신해철은 안 나왔구나. 신해철, 손무현, 신성우, 부활과 얽힌 이름도 가볍지 않은데. 그러면 너무 드라마가 지저분해졌을까? 4부작 안에 네버엔딩스토리까지 넣는데 너무했겠지?
그리고 부활이 락이냐? 그래서 부활 트리뷰트에는 정작 락밴드가 하나도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락밴드가 참여하지 않은 락밴드의 트리뷰트라. 지금도 부활을 폄하하는 락마니아들이 많다. 더구나 요즘 김태원이 예능 나오면서 욕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런 부분도 역시 드라마니까.
이래저래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기억의 편린들이 날뛰기 시작해서. 드라마의 폐해다. 뭐 이런저런 사정들이 있었겠거니. 이런 맛에 또 이런 드라마를 보기도 하는 것이다.
더 생각나는 건 나중에.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이것만으로도 넘친다. 즐겁다. 간만에 무척. 어쨌거나.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리는 외박중 - 어른의 사랑은 이기적이다... (0) | 2010.12.20 |
---|---|
락락락 - 부활이 락이냐? (0) | 2010.12.19 |
프레지던트 - 확실히 이 드라마도 판타지는 판타지다! (0) | 2010.12.17 |
프레지던트 - 당신들의 정치혐오증이 문제야! (0) | 2010.12.16 |
프레지던트 - 이 나라를 바꾸고 싶다! (0) | 2010.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