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프레지던트 - 권력의 비정함...

까칠부 2010. 12. 23. 10:13

군왕은 무치라 했다. 그리고 무정하다고도 했다. 왕이란 하늘 아래 왕밖에 없다고.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없다. 자신이 가는 길에 방해가 된다면 그 모든 것을 짓밟고 치우고 가는 것이다. 마치 탱크처럼. 불도저처럼. 오로지 왕의 길 하나를 위해서. 그래서 왕도다.

 

유가에서조차 그래서 왕의 길을 가로막는 것은 단지 죄인일 뿐이었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 했고. 가족이라고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은 그가 왕이 아닐 때. 왕일 때 그것은 항상 옳다. 다름아닌 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자라 하는 것 아닌가. 하늘의 뜻을 대신하는 존재일 텐데 시시비비를 따져 무엇하는가.

 

장일준이 아들의 잘못을 솔직하게 사과할 때, 이건 참 그린 듯 멋진 사내 아닌가? 하지만 김경모를 찾아가 사과를 하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TV론으로 몰고갈 때, 진정 이런 게 정치가 아닌가? 아들마저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무정하고 비정하며 단호하고 부끄러움이 없다.

 

큰 정치와 작은 정치의 차이다. 장일준의 아내 조소희는 끝내 아들 장성민을 버리지 못한다. 장성민을 지키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장일준에게 아들 장성민이란 바로 그런 상황에 얼마든지 이용하고 버릴 수 있는 패에 불과하다. 아마 장일준은 설사 대통령이 되어서도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방해가 된다 생각하면 심지어 아내 조소희마저 쳐낼 수 있을 것이다.

 

잔인한가? 몰인정한가? 그러지 못해서 도대체 얼마의 큰 문제가 일어났던가? 가족이니까 봐주고, 친구니까 봐주고, 친척이라 봐주고, 동문이라 봐주고, 동지라서 봐주고, 이래서 봐주고, 저래서 봐주고, 심지어 정치적인 부담까지 감수하며 문제들을 보아넘긴다. 어려운 시절을 지나왔던 야당 정치인들이 곤란한 지경에 놓이며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이유들이 그것이다. 그에 비하면 장일준은 얼마나 현명한가?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 했다. 이 정도 독심이 없을 것이면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가족마저도 서슴없이 이용하고, 필요하면 가차없이 버리고, 오로지 자신의 야망 하나를 위해.

 

그렇다고 장일준이 그저 깨끗하기만 한 정치인인가? 그는 이상주의자이기만 한가? 그렇다기에는 그가 펼치는 모략이나 뒷거래는 그가 또한 철저히 현실정치인임을 말해준다. 다만 그 그릇의 크기가 다르다. 김경모도 역시. 필요한 것은 취하고, 필요없으면 버리고, 보다 멀리 보고 큰 걸음을 걸을 줄 안다. 그래서 서로 치열하게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도 김경모나 장일준이나 그리 멋있을 수 있었던 것.

 

참 멋이 사라진 시대라는 것이다. 박을섭은 아마 그 상징같은 인물일 것이다. 당대표 고상렬도, 대통령 이수명도. 오로지 개인의 욕망에 충실한 그들의 행보는 차라리 파렴치하기까지 하다. 그런 정치가 당연하게 행해져 온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정치였다. 역시나 생각이 없으니까.

 

유명하니까.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같은 고향 출신이니까. 종교가 같으니까. 학교가 같으니까. 종씨니까. 혹은 자신과 어떤 인연이 있어서. 막연한 믿음으로. 그래서 동네 깡패같은 정치인이 오히려 국민적인 호감을 얻고 권력을 손에 쥔다. 사실 인간적으로도 훌륭해 보인다. 될 사람을 찍어준다는 정서. 그게 바로 동네 깡패 마인드이고 똘마니 마인드다. 누가 정치에서 멋을 없앴는가? 김근태 의원이 경선에서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것을 폭로했을 때 김근태 단 한 사람만을 비난한 것이 당시 국민의 정서였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참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일준이 신희주를 만나 제안하는,

 

"작은 바람을 모아 큰 바람을 만들어보자."

 

그리고 아들 장성민이 김경모의 비리사실을 언론에 제보한 데 대해서도, 결국 지난 대선에서도 하나의 사건이 도리어 지금의 야당에 독이 되어 돌아왔었다. 진실공방이 결국 실체에 다가가는데 실패하면서 도리여 야당은 역풍을 맞았고, 그에 집착하던 야당의 대표는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만일 당시 장일준이 그랬던 것처럼 오히려 그런 것을 무시하고 정책선거로 나갔다면. 차라리 지더라도 뒷날은 기약할 수 있지 않았을까. 완전히 구태정치인 구태정당으로 찍혀 그나마 우호적인 세력마저 떨어져 나갔으니.

 

현실정치를 아주 교묘하게 담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작을 보고 싶어지는데. 아무튼 대단한 정치인이다. 장일준이 도의를 지키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이익이 되는 것인가 알기 때문. 아들을 버리더라도 정직하게 당당하게 인정하고 굽히고 들어갔을 때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 그렇다고 흑색선전 자체를 피하는 것도 아니다. 현실정치인으로서 자신에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을 선택할 뿐.

 

어떻게 그려질까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만만치 않은 행보들이 예상된다. 그저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맑고 깨뜻하고 순수한 정치란 아마 없을 듯. 그렇게 보이기 위한 치열한 싸움은 있어도. 장일준이라는 현실정치인이 현실정치 안에서 그 이상을 이루어내는 과정이라. 지켜볼만한 보람이 있겠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