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시봉특집 때도 그랬다. 물론 오가는 이야기들도 재미있기는 했다. 껄껄거리며 웃었고. 하지만 진정 흐뭇한 웃음을 짓게 만든 건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이 세 사람의 더없이 아름다운 목소리 아니었을까.
사람이 단순히 웃겨서만 웃지는 않는다. 슬퍼서도 웃고 화가 나서도 웃고 놀라서도 웃고 당황해서도 웃고, 감탄하거나 감동해서도 웃는다. 멋진 공연을 보고 나면 절로 만족한 웃음이 지어지지 않는가.
나의 웃음 이론 가운데 하나다. 내가 예능을 보는 기준이기도 하다. 영웅호걸에서도 어떻게 니콜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이름으로 오르내리게 되었을까? 니콜 자신도 인정했듯 딱히 말한 것도 없고 재미있게 행동한 것도 없는데.
땀과 기름에 범벅이 된 이진의 얼굴이나, 지친 얼굴로 몸도 못 가누는 이진이나, 천진스레 화상입은 자리를 보여주는 홍수아나, 웃음이 나지 않던가? 대견하다. 멋지다. 아름답다. 그것도 예능이다.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핫팩 남은 걸 모아 갖다 드리던 나르샤의 모습에서도. 청춘불패에서도 순이 할머니에게 호순이라 불리며 좋아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때 짓던 웃음도 웃음이다.
어제 놀러와를 뒤늦게 보면서 새삼 감탄했다. 그리고 입가에 걸린 또다른 웃음을 확인했다. 그래. 그랬다. 그 분들이었다. 양지운씨라면 나는 "두얼굴의 사나이"에서 주인공 목소리로 기억한다. 어찌나 인상적이었는지 이름마저 외워버렸다. 양지운 다음이 이재명, 배한성, 최덕희, 박일...
그때의 감동도 감동이고, 그리고 그 감동 뒤에 보이지 않던 치열한 노력을도 또 감동이었고, 작품에 색을 입히고 재미를 더하는 그분들의 탁월한 목소리 연기에 또 한 번 더 감동하고, 그리고 웃었다. 아, 이 분들은 정말 이렇게 대단한 분들이구나.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보았던 더빙영화들에 대한 기억도 새록하고.
정말 그런 경우들이 많았다. 더빙된 영화를 보면서 "이게 뭐야?" 하지만 원작을 보니 이건 더 "이게 뭐야?"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일본판 애니메이션을 구하듯 일본에서도 한국 더빙판 애니메이션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했었다. 말 그대로, 해외의 배우들도 바로 성우들에 빚진 바가 많다. 맥가이버도 배한성씨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인기를 모으지는 못했겠지. 맥가이버의 목소리는 배한성씨 오히려 오리지널이다.
바로 이런 게 예능일 터다. 코미디가 개그가 되고, 개그가 예능이 되고, 개그맨 대신 다양한 사람들이 예능에 출연해 웃음을 주고. 더 자연스럽고 더 다양한 웃음을 주고자. 그런 웃음을 찾고자.
놀러와가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한결같이 이어져 올 수 있었는가. 월요일 심야시간대에 수많은 경쟁자를 이기고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는가. 유재석도 있었고, 김원희도 있었고, 그보다는 웃음의 본질을 꿰뚫는 제작진의 의지가 있었다. 웃음 그 이상의 웃음을 요구하는.
하기는 이제는 그것이 또 하나의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 비록 폐지되었지만 천하무적야구단, 정작 제작진이 포인트를 놓치며 가능성을 놓쳐버린 청춘불패, 이제는 자리를 잡아버린 남자의 자격, 아름다운 영웅호걸도, 아 그 원조는 무한도전이겠지. 1박 2일도. 왜 사람들은 굳이 리얼버라이어티를 보려 할까? 리얼이라는 말 뒤에 숨은 더 깊고 더 넓고 더 풍부하고 더 자연스런 웃음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페이소스란 단순히 우스워서 웃는 것이 아니다. 그 내면의 열정이다. 그 내면의 본능이다. 웃음이란 단지 그것이 표출되는 형태일 뿐이다. 과거 코미디가 추구했고 지금의 예능이 지향하는 바다.
TV프로그램을 두고 아름답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 과연 적합할까. 하지만 아름답다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이 필요할까? 김태원의 말을 이 순간 인용해보고 싶은 것은,
"점수를 준다면 아름다움이다."
성우들도 아름다웠고, 그런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준 유재석과 김원희 이하 놀러와 제작진도 아름다웠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실컷 웃을 수 있었다. 진정 기꺼운 웃음을. 그것은 행복이었다. 최고의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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