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하면 끝까지 싫은 소리는 않으려 했다. 싫은 소리도 애정이 있고 기대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 이제 다 끝난 프로그램 붙잡고 이러쿵저러쿵 해봐야 그냥 감정낭비지. 하지만 이건 좀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내가 드라마든 예능이든 판단하는 기준은 단 한 가지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앉아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이유란 무엇인가. 무한도전이 1박 2일이 될 수 없고, 런닝맨이 영웅호걸이 될 수 없으며, 남자의 자격은 뜨거운 형제들과 다르다. 프레지던트와 대물이 같다면 굳이 프레지던트를 볼 이유가 없겠지. 시크릿가든과 매리는 외박중도 만화고 판타지지만 전혀 다른 만화고 판타지다.
청춘불패만의 그것은 무엇일까? 결국에 이번 마지막회가 그것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없다. 그저 유치리에 가서 유치리를 배경으로 예능이랍시고 찍는다. 그동안에 쌓인 이야기가 있다면 그에 어울리게 마무리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치리 주민들과의 어울림으로 한 바탕 즐거운 놀이판을 만들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가? 고작 몇몇의 주민들과 좁은 비닐하우스 안에 알량한 게임들. 그것도 청춘불패와 그다지 상관없는 내용들이다. 굳이 이런 걸 청춘불패를 통해 보아야 하는가.
바로 직전 남자의 자격 송년의 밤이 있었다. 어떠했는가. 그것도 마무리라면 마무리다. 한 해를 마무리하려 할 때 어떻게 마무리를 짓던가. 결국에 그저 모여서 눈물파티. 너무나 뻔해서 오히려 제작진이 울라 시킨 것은 아닌가 냉정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청춘불패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었을까. 아쉽고 그래서 다시 들려주고 싶고 다시 이어가고 싶은 이야기들은 없었던 것일까.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 자신만의 이야기는. 아니면 그에 걸맞게 의미있는 마무리를 보여주던가.
모여서 울기나 하고. 처음에는 참 서운하겠구나. 하지만 그것도 한두사람이다. 마침 직전 또 위대한 탄생에서 김윤아가 그랬지. 울면서 노래 부르는 것 듣고 있으면 피곤해진다. 그대로.
PD의 센스가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작가의 성의가 부족한 것인가?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이런 게 청춘불패답다. 맥락없고 뜬금없고 내용없고 이어지는 것 없고. 그냥 모여 눈물 흘리는 게 고작일 테지. 차라리 다 끝나고 지난 14개월동안의 사진과 동영상 나오는데 그게 가장 볼만했다. 이건 그냥 막 만들었다. 어차피 끝나는 마당이니 아이디어고 뭐고 없이 대충 막 찍었다.
다시 뭐라 할 일이 없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어쩌면 실수였을 것이다. 가끔 프로그램의 오류로 보여진 모습들을 이런 게 청춘불패의 진정한 모습이라. 청춘불패만의 개성이며 재미라. 기대할만하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오류. 청춘불패를 즐겨보는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것은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관느 전혀 다른 방향의 것들. 실수로 보았고, 실수로 오판했고, 오판한 채로 끝까지 보았고, 그리고 비판했고. 나 역시 참 할 짓 없이 보낸 지난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남들 다 재밌고 유익하다는데 내가 보기엔 뭐 이리 허접한가. 허접한 채로 그리고 이렇게 끝나버렸고.
PD이름을 기억해두련다. 작가 이름도. 앞으로도 프로그램 선택할 때 참고해야지.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 나와는 영 아니다. 예능이 아닌 다른 분야라면 모를까 예능이라면.
수고했고. 열심히들 했다. 한선화며 구하라는 참 얻은 것도 많았고, 주연은 의외의 예능감을 보았고, 나르샤 역시. 현아도 참 큰 걸 얻고 갔는데. 어차피 프로그램은 끝나도 활동은 여전하니까. 단지 예능일 뿐이고 하나의 프로그램일 뿐이다. 그것을 기대해 본다.
미학이 없는 프로그램. 그 끝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프로그램에 대해서인지. 출연자에 대해서인지. 제작진에 대해서인지. 나 자신에 대해서인지. 어쨌거나 굿바이. 끝이다.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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