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정의로움을 다른 사람들에 알리자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TV영웅물에서 영웅들이 항상 악당들과 싸우고 하는 이유일 것이다. 도대체 왜 정의로운지 모르겠는데 일단 악당들과 싸우고 있으니 정의다.
원래 영웅물이라는 게 그렇다. 영웅이 왜 영웅인가를 설명하는 영웅물은 그리 없다. 대신 상대가 얼마나 나쁜놈인가를 강조하는 영웅물은 많다. 나쁜 놈을 때려잡으니 영웅이다. 악을 징벌하니 정의고 선이다.
뭔 일만 나면 듣는 이유가 "실드"다. 이미 결론은 내려졌다. 분명 그럴 것이라 결론은 내려진 지 오래다. 따라서 그에 대한 어떤 반론이나 신중론도 단지 악을 변호하는 "실드"에 불과할 뿐이다.
많이 생각했다. 단지 의혹에 불과함에도 그것이 사실이 되고 그에 대한 어떤 우호적인 주장도 공격의 빌미가 되는 이유에 대해서. 왜 그리 확실하지도 않은 의혹에 사람들은 그리 쉽게 휩쓸리고 하는 것일까?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었다. 정말 아주 오래전이었는데,
"인터넷은 정의롭다!"
그게 문제다. 정의.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믿는다. 옳다고 믿고 싶어한다. 심지어 살인강간강도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여럿이서 한 여자를 강간하고서도,
"저 여자가 먼저 유혹했다!"
그러니 나는 잘못이 없다.
하물며 인터넷이란 가상의 공간이다. 오로지 텍스틀 통해서만 소통되는 현실과 유리된 세계다. 실체는 모호하고 자각마저 없다. 더욱 자신의 정의로써 자기를 증명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 이러이러한 잘못을 저지른 것 같다!"
이를테면 삼국지에서 공을 세우지 못해 안달하는 이름없는 장수와 같다. 공을 세우고 자기를 증명하고 싶은데 기회가 주어지면 어떻게 될까? 백기가 그런 식으로 조괄이 이끄는 조나라 40만을 생매장시키고 있었다.
단지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럴만한 의혹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가차없이 그를 비판한다면 그것이 바로 정의가 아니겠는가. 마녀가 묶인 채 길을 가고 있다면 정의롭다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돌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바로 전까지 존경하던 장군이었어도 역적으로 몰려 능지처사를 당하고 있다면 비난과 욕설을 퍼부어야겠지. 나는 정의로우니까. 마치 미끼에 달려드는 붕어처럼.
그래서다. 구체적인 증거도 없고, 분명한 논리도 없고, 그러나 단지 의혹만이 있고. 일단 믿음이 생기면 이유야 얼마든지 만들어진다. 개연성이란 허구를 사실처럼 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요정이 나오고 외계인의 우주선이 광속을 넘나드는 것도 그럴싸해 보이는데 그저 현실의 가상의 이야기쯤이야. 일단 믿음이 있으니 그 믿음에 충실하면 얼마든지 논리적이고 타당할 수 있다.
왜 그리 쉽게 넘어가는가? 왜 그리 쉽게 휩쓸리는가? 심지어는 확신에 차 공격적이기까지 한가? 사명감에 불타는 십자군처럼 단지 신중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가?
그 똑똑한 사람들이. 파워블로거 쯤 되면 남다른 뛰어남이 있을 텐데도. 논객이라 불리우던 사람들마저도. 자칭 지식인들조차도.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아니 어리석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기의 믿음을 의심하지 않을 때 그는 바보가 된다. 맹목이란 천재도 바보로 만드는 마약이다.
너무 정의롭다. 너무 선하다. 너무 도덕적이다. 정의와 선과 도덕이 너무 넘쳐난다. 그를 통해 자기를 증명해야 하고. 그를 통해 자기를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어째서 어떤 이슈에 대해 그를 "악"이라 단정했을 때 그와 과거의 사소한 일들까지 끄집어내지며 그를 공격하는 빌미가 되는가. 하여튼 사소한 것들까지 들추어,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마저 의미릴 부여하고 그를 공격하는 이유로 삼는가. 역시나 그동안 그놈의 "실드"라는 말을 들으며 느끼던 의문이었다. 답은 너무 정의로워서.
그러니 세상에 생각없이 정의로운 놈들이 가장 문제다. 생각없이 선하고 생각없이 도덕적이고. 생각이 없다는 건 의심이 없다는 것. 그림자가 없는 현실은 단지 판타지일 뿐이다. 인터넷이란 어쩌면 파타지일 것이다.
항상 경계하는 바, 과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말은 과연 옳은가? 의심할 여지 없이 타당한가? 아닌 것을 안다. 그런 것까지 포함해 글을 쓰기에 항상 부끄럽고 항상 미안하다. 단지 그럼에도 그래서 쓰는 것이고.
과연 옳을까?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관찰하고 분석한 결과가 그렇다. 항상 그런 이슈를 만들고 휩쓸리고 키우고 다른 이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가장 정의로운 사람들이거든. 가장 정의롭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지난 타블로 때 특정 성향의 네티즌들이 대거 낚인 것도 그래서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장 정의롭다고 믿고 있으니까. 지금도 그들은 항상 가장 정의롭다. 누구보다도.
왜 그렇게 인터넷에서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의혹이 사실처럼 퍼져나가는가? 사소한 일들마저 크게 이슈화되어 누군가를 악인으로 만들고 마는가? 아마도.
붕어는 그래도 낚이면 낚인 줄은 안다. 매번 잡았다 놓아줘도 다시 낚시바늘을 물고는 하지만 최소한 낚이면 벗어나려 파닥거리기는 한다. 하지만 "실드"란 잡힌 상태에서도 한 점 오류가 없으니. 세상에서 가장 벗겨먹기 쉬운 것이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이다. 달리 호구라 부른다.
한 마디로 실드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미 사실이나 논리의 영역이 아닌 믿음의 영역으로 넘어갔으므로. 광신이란 논쟁하는 자체가 바보짓이다. 쓸데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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