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 후에 - 들국화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 편에
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없이
집으로 하나- 둘씩 돌아가는데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저 석양은
나를 깨우고 밤이 내앞에
다시 다가오는데
이젠 잊어야만 하는 내 아픈 기억이
별이 되어 반짝이며 나를 흔드네
저기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의 커다란 울음이라도
달랠수 없어
나는 왜 여기 서있나 오늘밤엔
수많은 별이 기억들이 내앞
에 다시 춤을 추는데
어디서 왔는지 내 머리위로
작은새 한마리 날아가네
어느새 밝아온 새벽 하늘이
다른 하루를 재촉하는데
종소리는 맑게 퍼지고 저 불빛은
누굴 위한걸까 새벽이 내
앞에 다시 설레이는데
가사 출처 : Daum뮤직
1986년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나온 들국화의 2집은 실망 그 자체였다. 1집에서 들려주었던 치열함과 첨예함이 더 이상 2집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좋은 앨범이었다. 좋은 음악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들국화의 이름이 주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었다.
들국화 1집의 성공은 들국화를 두고하던 최성원에게 어떤 자신감과 기대를 심어주게 되었다. 음악에 대한 욕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들국화를 제대로 큰 밴드로 키워보자. 그리고 그러기에는 조덕환의 실력이 영 최성원에게는 미덥지 못했다. 마침내 최성원은 조덕환을 들국화에서 밀어내고 들국화의 공연에서 세션을 뛰던 역시 언더그라운드에서 인정받고 있던 기타리스트 최구희를 영입하게 된다. 분열의 시작이었다.
전인권은 최성원의 그같은 독단을 이해하지 못했다. 함께 팀을 만들었으면 끝까지 가는 것이지 실력이 눈에 차지 않는다고 일방적으로 밀어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리고 그것은 전인권과 최성원의 갈등으로 이어지며 마침내 최성원의 독단에 의해 나오게 된 들국화 2집이 참담한 실패로 끝나는 이유가 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1집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난하기만 한 멤버들이었다. 더구나 2집이 실패하고 그 과정에서 들국화를 주도하고 있던 전인권, 최성원 두 사람의 갈등까지 불거지고 나니 더 이상 팀을 유지할 동력이 사라지고 말았다. 한국 대중음악역사에 빛나는 들국화라는 이름은 그렇게 겨우 단 두 장의 앨범만을 내놓은 채 2집을 끝으로 해체되고 말았다.
들국화의 해체는 전인권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들국화란 그의 오랜 언더그라운드 생활의 결정판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언더그라운드에 있던 시절 만났던 인연이었고, 친구였으며, 음악적 동지였다. 조덕환의 탈퇴를 두고 최성원과 갈등을 빚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런데 이제 들국화가 해체되었으니.
그러나 그것은 또한 전인권에게 기회이기도 했다. 사실상 들국화 시절 들국화의 음악은 최성원의 영향 아래 있었다. 물론 전인권이나 허성욱, 조덕환 등도 일정지분을 가지고 들국화의 음악에 참여하고 있기는 했지만 주도권은 가장 음악적으로 성숙해 있었던 최성원이었다. 다시말해 들국화가 해체되고 최성원과 갈라섬으로써 전인권은 비로소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펼쳐보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었다.
실제 들국화가 해체되고 멤버 가운데 가장 친분이 있던 허성욱과 듀엣으로 만들어낸 앨범 "추억 들국화"는 들국화의 치열함과 첨예함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전인권 특유의 히피스런 허무함을 녹여낸 더욱 치열하고 첨예한 들국화의 또 하나의 명반으로 완성되고 있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바로 이 "추억 들국화"야 말로 진정한 들국화 1집을 잇는 들국화의 2집이라 말하기도 할 정도로 그 완성도는 전인권 음악인생에 있어서도 가장 절정기의 백미라 할 수 있었다.
하기는 말이 전인권과 허성욱의 "추억들국화"지, 세션을 보면 베이스 최성원에, 기타 최구희, 드럼 주찬권 등 들국화의 멤버들이 고스란이 참여한 사실상의 들국화 앨범이었다. 곡을 쓰고 가사를 쓰고 편곡을 맡아 한 것은 전인권과 허성욱이었지만, 두 사람의 주도 아래 들국화의 멤버 전원이 이 음반을 통해 다시 한번 합을 맞추게 되었던 것이었다. 들국화의 이름을 달고 나온 들국화 2집보다도 오히려 더 들국화스런 음반이라는 것은 바로 그래서였을 것이다.
참 좋은 노래들이 많았다. 처음 들었을 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던 "머리에 꽃을"부터, 한때 입에 달고 살았던 민중가요 "사노라면", "어떤...(가을)""북소리""여자""이유"... 그리고 이 노래 "사랑한 후에"
원곡은 "The Palace of Versailles". 원래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포크록 아티스트 알 스튜어트의 1978년 앨범 Time Passages에 그것도 여섯번째 트랙으로 수록된 노래다. 프랑스혁명을 노래한 마치 서사시처럼 서정적이면서도 유장한 음악이었는데 추억 들국화에 리메이크되면서 이렇게나 달라졌다. 원곡을 같이 놓고 들어도 전혀 같은 노래로 들리지 않을 정도다. 인트로의 피아노 연주와 멜로디가 이렇게까지 비슷한데도.
전인권의 힘이다. 아니 허성욱, 주찬권, 최구희, 최성원, 들국회의 힘이다. 전인권의 목소리는 그렇게 피를 토할 듯 절절하다. 허성욱의 피아노는 관조하듯 서정적이다. 체온이 느껴지는 듯 따뜻한 주찬권의 드럼과 전인권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 비장한 최구희의 기타. 먼 역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언가 대단하고 거창한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노래가 아니다. 나의 노래다. 나 자신의 노래. 남자의 노래.
전인권이 그랬다. "사랑한 후에"야 말로 남자의 노래라고. 남자는 울지 않는다. 울더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운다. 홀로 삭히며. 남자의 눈물을 함께 하는 것은 단지 하늘과 땅과 바람과 그리고 시간 뿐. 그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그 아픔을 삭이고 내일을 맞는다. 좌절하거나 절망하는 법 없이 슬픔의 끝에서 어느새 다시 일어설 힘을 찾아 그 길을 걸어간다. 상처란 남자의 훈장이다. 상처를 두려워만 해서야 남자가 될 수 없다.
그런 노래다. 아마 어느 철길가일 것이다.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 선로가 내려다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이었을 것이다. 저 멀리 전신주가 보이고, 길게 휘영청 늘어진 전깃줄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너머에는 노을이 넘어가려는 산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을 것이다. 산 아래 반짝이며 흐르는 개울과 그 안쪽으로 비어 있는 들판들, 그 안쪽으로 어느새 저녁을 준비하려는 민가들. 하얀 콘트리트 도로 위로는 한가한 차 몇 대가 아이들 뛰노는 사이로 지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기차는 큰 울음과 함께 지나가고, 어느새 어둠이 찾아오며 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마치 가슴 속의 사연들마냥 반짝이는 별들이 시간을 잊게 만든다. 아무도 없이, 집들의 불조차 꺼지고, 외로운 가로등만이 가끔 도로 위를 지나는 차들을 비춘다. 가끔 급행열차는 어디로 서둘러 가는지 바로 앞을 지나가고 소리조차 잠든 밤에 별똥별 하나가 까맣게 칠해진 산 너머로 사라진다.
그녀는 어떻게 지낼까?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마지막 흘린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왜 그때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왜 나는 그녀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했을까? 오래전 나는 왜 그녀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런 행동을 했을까? 더 잘해줄 수 있었을 텐데. 더 조심해서 대했어야 했을 텐데. 사랑은 했을까? 과연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그녀는 나를 사랑했던 것일까?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어디서 시작되었던 것일까? 우리의 만남은? 우리의 사랑은? 별만큼이나 많은 생각들이 별처럼 뜨고 지고 다시 진다. 멀리 동이 터올 때까지. 서럽도록 말갛게 터오는 동녘하늘에 참고 있던 눈물이 흐르는 것 같다.
다른 악기 없이 허성욱의 피아노로만 채워진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주찬권의 드럼은 어느새 삭히며 삼키는 울음이었을 것이다. 최구희의 기타가 토해지고 서러운 가운데 비명처럼 외마디 외침이 들려온다. 하늘을 향한 것일까? 땅을 향한 것일까? 아니면 그 누구에 대한 원망일까? 자신에 대한 원망일까? 담백하게 간결한 연주 가운데 그래서 전인권의 목소리는 새벽기차소리마냥 어둠속을 내달린다. 지는 별이나 떠오르는 동녘 해나 아무 소리가 없지만 밝아오는 남빛 하늘로 달리는 기차는 비명처럼 소리를 토해놓는다. 인간의 목소리가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수 있구나. 피를 토한 듯 처절한 그
인간의 목소리가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수 있구나. 그 처절함에 마치 화석처럼 멈춰 있던 오랜 상처마저 깨어나는 것 같다. 왈칵 눈물이라도 쏟아질 듯 어느새 멈췄던 강물은 흘러 대지를 적시고 황금빛 동이 터오르는 말간 바다로 향한다. 사랑한 후이기에. 사랑을 하고 났으면 무엇을 해야겠는가. 다시 사랑을 해야겠지. 그것은 희망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설렘일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추억 들국화"의 추억마저 이 한 장의 앨범을 끝으로 역사에 화석으로 남게 되었다는 것일 게다. "사랑한 후에"에서 전인권은 내일의 설렘을 노래하는데, 여전히 전인권과 최성원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음악적인 견해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현실적인 여러 여건들이 그로 하여금 더이상 들국화의 전인권이 아닌 음악인 전인권으로서의 역사적인 1집 앨범을 내놓게끔 만든다. 바로 이듬해였다. 1988년. 그리고 1997년 최성원과 전인권 사이를 중재할 수 있었던 허성욱이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죽음으로써 들국화는 영영 역사 속에 화석으로만 남게 된다. 최성원과 전인권의 사이가 다시 회복되었어도 허성욱이 없는 들국화는 들국화가 아니었다. 조덕환이 돌아왔어도. 최구희와 주찬권이 있어도. 전인권이 들국화의 이름으로 몇 장의 앨범을 냈어도. 들국화는 들국과 자신에 의한 들국화였다.
들국화의 이름으로 나온 마지막 앨범. 그래서 앨범은 비장할 정도로 아름다운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체념적이고 몽환적이며 그러면서도 희망을 담은. 그것은 어쩌면 절망의 끝에 선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처절한 완성도 만큼이나. 그것은 들국화의 이루지 못한 마지막 꿈이었다. 모두의 미처 깨지 못할 꿈이었다.
처음 듣는 순간부터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원곡이 따로 있다지만 리메이크 수준을 넘어선 재해석은 지금도 때때로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으면 가슴 저 깊은 곳을 헤집고 지나간다. 전인권이기에 가능했던. 들국화이기에 그럴 수 있었던. 과연 누가 있어 이 노래를 그토록 처절하도록 아름답게 불러 소화할 수 있을까.
먼 하늘을 보면서. 어둑하니 젖은 밤하늘을 보면서. 도시의 밤불빛은 슬프도록 저렴하다. 창백하고 얄팍한 도시 불빛 가운데 문득 별을 보고 싶다는 충동에 별을 부른다. 토하듯. 절규하듯. 비명처럼. 오랜 먼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나도 그리 아파했으리라. 지금에야. 그깟것 지금에야.
문득 떠오른다. 그야말로 문득문득 떠오른다. 단지 그것을 말로 표현할 재주가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 그것을 어찌 말로 풀어내야 할까. 아직 나의 재주가 그에 미치지 못하는 때문이다. 그 몇 십 배의 단어를 쓰면서도 고작 이정도밖에 쓰지 못하는 것은. 한탄할 뿐이다. 나의 글은 아름다움에 미치지 못한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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