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위대한 탄생 - 세심함과 엄격함, 따뜻함...

까칠부 2010. 12. 25. 05:40

"이은미의 노래를 부르는 이은미같은 사람이 아니라 임예지이기를 원합니다."

 

참 엄격하다. 단순히 노래만 잘해서는 안 된다. 물론 노래를 잘해야 한다. 하지만 모창은 절대 안 되고, 자기 색깔이 있어야 하고, 나쁜 버릇도 없어야 하고, 발전가능성도 보여야 하고, 또 외모며 체중도 신경써야 한다.

 

보컬리스트에게 체중이 중요한 게 그런 이유였구나. 성대 주위에도 살이 찌고, 비강에도 영향을 주고, 아마 호흡에도 관계가 있겠지. 그러고 보면 인위적으로 목소리를 바꿀 때 목에 근육을 키우기도 한다. 맑고 깨끗한 고음과는 다른 깊고 탁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어떤 음식을 좋아합니까?"

"다 잘 먹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노력하세요!"

 

아마 이번 회차에서 가장 빛난 출연자라면 김태원이 아닐까. 정확하면서도 위트가 있다. 고집이 있는데 귀를 열 줄 알고 따뜻하게 바라볼 줄 안다.

 

"이은미씨 말씀을 들으니 그런 것도 같네요."

 

하기는 김태원만이 아니다. 이은미나, 김윤아나, 방시혁도, 신승훈도, 다른 심사위원들도, 자기만의 신념도 있고 고집도 있지만 그렇다고 아집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다. 명징한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고 때로 서로 충돌하면서도 귀를 열고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가 있다. 자기가 판단하기 애매할 때는 다른 이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도 전혀 어색해 하지 않는다. 다만 저렇게까지 솔직한 경우는...

 

아마 멘토제이다 보니 심사위원 사이에도 어느 정도 신경전은 있는 것 같다. 음악인으로서의 자부심이며 자존심이겠지. 각자가 자기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사람들이다 보니. 선배라고 하는 우월감도 후배이기에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것도 없다. 가장 어린 김윤아조차 대선배들 앞에 오히려 더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밝힌다. 그것을 또 충분히 존중하며 역시 자기 입장에 충실하고.

 

비브라토에 대한 이은미와 김태원의 충돌이 그 대표가 아닐까. 비브라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김태원. 하지만 인위적인 비브라토는 오히려 필요없다는 이은미. 그렇다고 그런 것 가지고 서로 감정 상할 단계는 지났고.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해하는 김태원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했다.

 

"죄송합니다."

 

6시 이후로 체중관리를 위해서도 먹는 것을 자제하라 했을 때 이은미와 김윤아가 바로 반대하고 나서자 소심하게 사과하는 모습도 무척 귀여웠다. 고집하지 않는 중년의 관록과 여유랄까?

 

밀림과 사자의 비유라든가, 한 어린 출연자에게 집에서 반주 없이 혼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느냐는 장면과, 지난번에도 명문대 다니는 한 출연자에 그리 말했었지.

 

"잘생기고 공부 잘하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뭐 하나 못하는 것도 있어야죠."

 

기분나쁘지 않게 에둘러 자신을 깨닫게 하는 재주가 있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부활 오디션에서 무려 1000명 넘게 떨어뜨렸다고 하니 그도 어지간히 엄격한 귀를 가진 사람일 것이다. 아니 부활 오디션이 아니어서일까? 그리고 주위사람들 말로도 참 사람이 착해졌다고도 하고.

 

어쨌거나 심사위원들의 개성이 확실히 각각 다 다르다. 이은미는 보컬리스트로써 보컬에 대해 보는 눈이 가장 엄격하면서 예리하다. 일반인은 알기 힘든 전문적인 내용들까지 적확하고 예리하게 짚어낸다. 그에 비하면 아무래도 기타리스트인 김태원은 포괄적으로 전체적인 느낌에 주력하는 느낌이고. 김윤아는 그 중간? 그보다는 라이브에서의 어떤 표현력 같은 것을 주로 캐치하는 모양이다. 엄격하기로는 이은미가 가장 엄격하고, 까다롭기로는 김윤아가 가장 까다롭고, 김태원은 아니면 가차없지만 어지간하면 기회를 주고 싶어한다. 물론 재능을 사랑하고 가능성을 아껴 항상 더 많은 기회를 주고자 하는 마음은 셋 다 - 아니 심사위원 모두가 같지만.

 

최소한 위대한 탄생에서는 선곡으로 인한 피해는 없다.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어떻게든 몇 번이고 다시 시켜서라도 그것을 찾아 합격시킨다. 개그맨 출신으로 혹시나 장난으로 여겨질까 발라드를 들고 나온 출전자에게 원래 박명수가 추천했던 트로트를 시킨 것이 그 한 예다. 태국에서도 한 어린 출연자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그의 장래성을 보아 합격시키고 있었다.

 

"노력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오디션. 완성된 가수가 아닌 완성되어갈 가수다. 더구나 멘토인 자신들이 만들어갈 재목들이다. 지금이 아닌 앞으로를 보고 투자한다는 저 말은 얼마나 소중한다. 위대한 탄생이라는 제목에 너무 잘 어울린다.

 

그나저나 박명수의 난입에 놀랐다. 난입이라기보다는 자기가 보살피는 후배개그맨의 오디션을 지켜보러 온 것이겠지만. 후배 개그맨들 열심히 챙긴다더니만 이제는 가수 오디션까지 추천하고 따라와 지켜보고 있다. 원래 안면이 있는 김태원의 디스는 그래서 정겹기까지 하고.

 

혼자서 미스A의 BGGG를 부르던 태국의 한 교포 출연자는 이은미의 말이 아니더라도 보는 이에게 기분 좋은 활력을 주었다. 프로가 되기에는 부족하지만 최소한 무대에 섰을 때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지 않은가. 자신이 무대를 즐기면 보는 사람도 즐겁다. 약간은 코미디가 되어 버렸지만.

 

역시 태국 출전자 가운데 여러번 오디션을 봤는데 왜 떨어졌는지 모르겠다는 출전자에 대해서는 정말 보는 내가 안타까울 정도로 가차없었다. 이은미가 포문을 열고, 조피디가 받치고, 김태원이 마무리, 과연 이렇게까지 신랄하게... 하지만 최소한 지금 뭐가 문제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는 답은 얻을 수 있었겠지. 독해도 그것이 그다지 기분나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애정은 있어도 사감은 없다. 예능감은 더욱.

 

전반적으로 수준은 지난주보다 떨어졌지만 그래도 워낙에 심사위원 보는 재미니까. 오히려 출전자보다는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태원은 위트가 있고, 이은미와 방시혁은 날카롭고, 김윤아도 만만치 않고, 윤상과 조피디 역시 프로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음악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고나 할까? 오디션을 보는 재미를 극대화시켜준다고나 할까?

 

괜한 스토리 만드는 연출이 때로 짜증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건 예능이니까.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심사위원들의 전문적인 비평이 강한 향신료처럼 중구난방으로 제각각인 출전자들의 재능과 실력을 더욱 맛깔나게 즐길 수 있도록 하지 않는가. 그것을 아마 PD도 알고 있는 것 같고.

 

아무튼 보고 있으면 음악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음악을 더 즐겁게 들을 수 있을 것 같고.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고. 프로란 바로 이런 것일 텐데. 아무나 프로는 아니라 하겠다.

 

어쩌면 심사위원을 보자는 프로그램. 어떻게 된 게 스타가 되어야 할 오디션 지원자들보다 심사위원이 더 보인다. 앞으로 본격적인 멘토간의 대결이 시작되면 어떻게 될까? 그 피튀기는 대결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각 멘토들에 의해 선택되고 성장해갈 도전자들의 모습이 기대되기도 하고.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아직 본궤도에 오르지도 않았다. 좋다. 시작이야 어찌되었든 위대한 탄생만의 강점이 보인다. 그것을 기대한다. 한동안 무척 금요일 저녁이 즐거울 것 같다.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