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런닝맨, 개그콘서트 - 심형래와 슬랩스틱...

까칠부 2010. 12. 27. 07:26

예전 찰리 채플린의 메이킹 필름을 본 적이 있었다. 짧게 지나가는 한 장면이었다. 무도회에서 찰리 채플린과 상대 여성이 만나 춤을 추는 과정에서 작은 헤프닝이 일어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장면을 찰리 채플린은 몇 번을 다시 찍고 있었다. 보다 완벽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그냥 헤프닝이 일어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헤프닝이 일어나기까지 과정에서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헤프닝이 일어나고 배우의 리액션에서도,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흐름을 가지며 그러면서도 웃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그 장면은 몇 번의 시도 끝에 폐기되고 말았다. 어떻게 만들어도 개연성있게 재미있게 만들 수 없다.

 

원래 슬랩스틱이란 정통연극에서 출발했다. 음향시설도 좋지 않던 때 배우의 대사는 대개 시설도 좋지 못한 극장에서 관객석까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소리치듯 대사를 외쳐야 했고, 과장된 몸짓으로 디테일을 대신해야 했다. 요즘은 흔한 표정연기나 눈빛연기가 아닌 몸으로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무성영화시대. 가장 확실한 대사전달수단은 말이 아닌 몸짓이었다. 슬랩스틱이란 코미디와 같은 뜻을 가지고 그렇게 시작되었고 존재해 온 것이다.

 

즉 코미디한 주고받는 가운데 철저히 짜여진 하나의 스토리이며 연기였다. 우리나라의 원로코미디언 가운데서도 그래서 유랑극단에서 활동하던 정극배우 출신들이 적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연기가 되어야 대본을 소화할 수 있고, 연기력이 뒷받침되어야 과격한 슬랩스틱 상황에서도 흐름을 깨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무리하다는 느낌 없이 자연스런 웃음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마 그 마지막 계승자가 심형래였을 것이다.

 

심형래는 사실 개그맨이라기보다는 코미디언에 가까운 존재였다. 동시대 데뷔한 이른바 개그맨들이 하나같이 입으로 웃기는 "개그"에 강점을 보였던 반면 심형래는 철저히 전통적인 슬랩스틱에 최적화된 코미디를 보였다. 그런 만큼 그의 코미디는 동시대의 다른 개그맨들과도 다른 차별점을 보였는데, 당장 최양락 이경규만 하더라도 말로 웃기는 이들이었지 심형래처럼 몸으로 구르며 웃기는 타입은 아니었다. 심형래의 코미디는 차라리 그들의 선배세대인 배일짐이나 방일수, 아니 그 이전의 이기동과 배삼룡이 활동하던 당시의 코미디와 닮아 있었다. 말 잘하는 개그맨 사이에 말 못하는 심형래의 존재는 그래서 더 특별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래서 위기도 빨리 찾아왔다. 9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한창 SBS에서 코미디전망대가 인기를 모으고 있을 때, 그러나 정작 SBS의 공격적인 스카웃공세로 인해 SBS로 이적해 있던 심형래에게는 전혀 그 어디에도 자리가 없었다. 코미디전망대라는 자체라 말로 웃기는 코미디를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MBS와 KBS출신들이 모여 각각의 개성을 더해 만들어낸 새로운 스타일의 "코미디" 아닌 "개그"는 심형래와 같은 전통적인 슬랩스틱 코미디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그의 거취를 두고 SBS와 KBS가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는 역시 말로는 웃기지 못하는 코미디언이었다. 개그가 아닌 슬랩스틱으로, 몸으로 웃기는 코미디언.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심형래의 인기는 그야말로 최고였으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아이들 앞에 아무리 열심히 입으로 떠들며 웃겨봐야 태반 알아듣지도 못한다. 오히려 그들에게 가까운 것은 말이 필요없는 동작 - 슬랩스틱이다. 슬랩스틱에 있어 당시 심형래는 경쟁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어지러운 말장난보다는 명쾌한 몸개그에 친숙한 나이 지긋한 세대에서도. 그의 뒤를 이어 이창훈이 봉숭아 학당에서 인기를 얻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창훈도 역시 연극무대 출신이었다.

 

참 새롭다. 정말 오랜만이다. 코미디언 심형래다. 심형래는 어떻게 해도 개그맨보다는 코미디언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최근의 유행하는 몸개그보다는 전통적인 짜맞추는 슬랩스틱에도 어울린다. 동작 하나하나에까지 치밀하게 계산하여 보여주는 그 연기는 순간의 재치로 사람들을 웃기는 현대의 예능과도 차별화되는 무엇이 있다. 전혀 어색하고 어찌 보면 고루하기까지 해도 어느샌가 같이 웃고 마는 바로 그런 원초적인 그것이.

 

유재석이 저리 쩔쩔매는 것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그래도 정극을 한다는 배우들이 그 동선을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 심형래는 그리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동작인데,

 

"눈이 뒤를 향하는데 어떻게 북을 봐요!"

 

그런 것까지 계산하여 동선을 짜는 것이다. 다른 코미디언과는 합을 맞추고. 그것이 가능하기에 코미디언이라는 것일 테지. 스스로 바보가 되어 망가지고 심지어 부상까지 감수해가며 완벽한 웃음을 선보이는 것. 말로써 웃기는 것은 기복이 있어도 몸으로 웃기는 것은 기복이 적다. 철저한 준비만 갖추어진다면.

 

어쩌면 이를 통해 심형래의 대단함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겠는가. 아홉명이나 되는 연기자 전부가 그 짧은 동작 하나를 제대로 따라하지 못한다. 그런 사이사이 마치 일상처럼 보여지는 심형래의 코미디는 과연 심형래는 타고나기를 코미디언이다. 상당히 무례하고 기분 나쁠 수 있는 심형래의 죽도에 대해서도 그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것. 저질이라지만 그런 것이 코미디의 원점이 아니었을까.

 

과연 지금 와서 심형래식의 슬랩스틱이 통할까는, 사실 그다지 자신이 없다. 최양락도 그렇게 황제의 귀환이니 하다가 지금 조용히 묻히고 있다. 한두번은 신기하니까 좋아하겠지만 과연 전처럼 심형래의 슬랩스틱을 좋아라 웃으며 계속 지켜보아줄 수 있을까. 다만 그렇더라도 지난주 - 어제 개그콘서트와 런닝맨을 통해 보여준 심형래의 슬랩스틱에 대한 완고하기까지 한 신념은 진짜라는 것이다. 그것을 보며 웃는 웃음도.

 

그는 내게 있어서도 영웅이었다. 아니 내 또래들에게 그는 영웅을 넘어 차라리 신이었다. 그는 많이 작아졌다. 늙었고 초라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물을 뒤집어쓰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부딪히고, 뒹굴고, 바보가 되어, 웃음을 주는 모습은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 아닌가. 여전히 사람들은 그를 보며 웃고, 그의 동작 하나 말 한 마디에 선배에 대한 예우인지 활짝 즐거운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전설은 여전히 전설이고 신화는 그렇게 다시 돌아온다. 단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할지라도. 전설은 현실이 되고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간다.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역시 함박 웃으며.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은가. 조금은 산만하고, 조금은 정신없고, 어거지스럽기도 하고, 그러나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에 대한 예우라 생각한다면. 영화인이 아닌 코미디언으로써 다시 돌아와 보여주는 것이라면. 심형래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을 때 그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재미있었고, 한참을 웃었다. 익숙지 않은 슬랩스틱에 당황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대선배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은 런닝맨의 출연자들에 대해서도. 능력자 김종국이 그렇게 굴욕을 당해 본 적이 얼마나 되었을까. 꽃미난 송중기마저 맹구로 만들어 버리고. 마치 자신을 위한 무대처럼. 이것이 슬랩스틱이다. 정통 코미디다. 그리고 나는 코미디의 황제다. 신이다.

 

말하지만 나는 영화제작자로서의 심형래를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좋게 보지도 않는다. 다만 코미디언으로서는. 입으로 웃기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한 그의 코미디 본능에 대해서도. 개그맨 시대에 나타난 마지막 코미디언. 코미디언이란 말로 통일된 지금에도 어쩌면 유일한 코미디언. 그가 반갑다. 정말. 진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