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놀러와 - 꺾기가 아니라 굴리기다.

까칠부 2010. 12. 28. 06:57

바로 저거였구나. 전에도 썼지만 나는 최근의 어떤 인위적인 트로트의 과장된 꺾기에 대해 반감이 있다. 원래 트로트란 저런 게 아니었거든.

 

시작이야 일본에서 들여온 엔카에서 시작했지만 그러나 발전은 전통의 민요의 영향을 받으며 우리만으 양식으로 정착되고 있었다. 전통가요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민요에서 발견되는 어떤 구성짐이 트로트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책임지는 것이 바이브레이션. 혹은 그루브.

 

말하자면 트로트야 말로 한국의 소울이라 할 수 있다. 그 소울을 만들어내는 것이 적절히 리듬을 타며 이루어지는 바이브레이션과 그루브. 남자의 자격에서도 홍기훈이 몸으로 리듬을 타며 소리를 끌어내고 있었는데, 그것은 알앤비나 블루스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다. 몸으로 리듬을 타고 그루브를 만든다. 결국은 비브라토. 바이브레이션.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꺾기라는 요상한 양식으로 굳어져 버린 거라. 아마 80년대 주현미가 독특한 창법으로 시대를 풍미하면서부터가 아닐까. 지나치게 양식화되어 버린 창법이 트로트를 정의해 버린 것이다. 사실은 그조차 트로트의 창법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텐데도 말이다.

 

비유하자면 소몰이한다고 다 알앤비는 아니라고나 할까? 우우우하며 몸을 흔들어댄다고 그게 그루브가 되는 게 아니고 알앤비가 되는 게 아니다. 어찌되었든간에 무작정 꺾는다고 그것이 트로트가 되는 것은 아니듯 말이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음악에 맞게 그 맛을 살리는 그 모든 수단이 곧 트로트인 것을.

 

그리고 더불어 트로트가수에 대한 대중의 강요에 대해서도. 발라드가수라고 발라드만 부르는가? 락커라고 락만 해야 하는가? 트로트가수라고 트로트만 부를까? 그래서 유현상은 자신의 음악을 트로트가 아닌 미디움템포라 불러주기를 바라기도 했었지. 트로트로 정의하기에는 또 포괄적인 개념이라도. 하춘화는 그것을 전통가요라 바꿔 불러주기를 바라고 있었고.

 

하긴 트로트라 따로 정의하기에는 70년대 이후 트로트는 다양한 형태로 한국 대중음악 전반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흔히 뽕끼라 하지? 다른 장르의 음악이 뽕끼를 띄던가, 아니면 트로트가 형식을 갖추고 다른 음악의 양식을 받아들이던가. 그러고 보면 그런 노력들이 중단된 것도 트로트라고 하는 양식화와 고착화에 있을 것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아직도 트로트에는 있을 텐데.

 

어쨌거나 그래서 또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장르의 음악만을 가지고 가요라 부르기도 한다. 유현상이 가끔 그러는데. 정확한 의미는 한국식 스탠다드. 미국식 팝의 기본이 되는 스탠다드 팝처럼 한국 대중음악의 기본이라고. 70년대 이후로는 확실히 그냥 가요를 부르는 가수인데 트로트를 부르는 경우도 많았다. 이게 트로트인가 아닌가 싶은 것들도 있었고. 역시 또 아쉬운 부분.

 

아쉽다면 남진이나 하춘화나 내 수비범위 밖이라는 것. 현숙은 아직도 댄스음악하던 이미지가 강하고, 송대관은 - 송대관이야 말로 스탠다드에 가까운 트로트를 구사하는 가수다. 독특하지. 박현빈은 확실히 노래를 잘 하고. 트로트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도한 기교를 조금 뺀다면. 느끼하다.

 

밤이면밤마다를 보느라 제꼈는데 듣자니 재미있었다네? 그래서 보았다. 그리고 빵. 평생을 가요만 불러온 원로들의 심오한 음악에 대한 이해가 웃음 그 이상의 재미를 준다. 지난주 성우특집도 그랬고. 이거 세다.

 

정정. 아직도 월요일 심야시간대에 놀러와의 적수는 없다. "안녕하세요"와 "밤이면밤마다"를 모두 보았지만 밤이면밤마다에서 대성이 말한 것처럼 "위대한 유재석님"이랄까? 제작진의 노력도 대단하고. 다만 세시봉 특집에서처럼 음악의 비중이 높지 않았던 점은 많이 아깝기도 하다.

 

재미있었다. 의미도 있었고. 연륜이라는 것도. 그리고 기억들에 대해서도. 그러나 내 수비범위가 아닌 가수와 음악들. 하지만 항상 모든 것이 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니까. 뒤늦게 즐거웠다.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