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시간과 싸우며 살아간다. 살아온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 무게에 짓눌려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오래전 잘못한 일들이 떠올라 후회되고, 미처 이루지 못한 것들이 아쉽고, 좋았던 시절들은 그립고, 그러면서 어느 순간 앞으로보다 과거가 더 중요해지는 때가 온다. 흔히 그것을 늙었다 말한다.
젊고 늙고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과거를 보는가. 미래를 보는가. 달리 말해 시간의 무게에 눌려 사는가. 아니면 시간의 매혹에 이끌려 사는가.
영화 "쿵푸허슬"에서 주성치가 축구공을 밟아 터뜨린 이유. 순간 공감하고 말았던 것이 마침 글을 하나 연재하고 있었는데 항상 전작과 비교하며 달리던 댓글을 때문이었다. 결국에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가장 큰 경쟁자는 다름아닌 내가 쓴 다른 작품이었구나.
음악인이 음반을 내도 이전의 음악과 비교되고, 배우가 영화에 출연해도 이전의 다른 작품과 비교될 수밖에 없고, 감독이 작품을 만들어도 그것은 항상 그 감독의 이전의 다른 작품과 비교된다. 아이돌이 새로운 무대를 꾸며도 이전의 컨셉이 항상 언급되고.
차라리 얼마 되지 않았다면 더 나아지려니. 그러나 시간이 쌓이면서 과거 더 나았던 시절이 있는 것이다. 더 좋았던 때. 더 훌륭했던 때. 그리고 그런 시간들에 사람들은 사로잡힌다. 그래서 비교한다.
"왜 그만 못한가?"
시간이 흐르면 더 나아질 것이다. 더 훌륭해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시간에 사로잡히면 의식도 그 시점에 머문다. 더 나아졌어도 처음 그것을 보았던 그 순간을 뛰어넘기란 힘들다. 그래서 더 비교하고 더 실망하고 더 아쉬워하고, 배우든 음악인이든 감독이든 10년 넘게 하기가 그리 힘든 게 그래서다. 항상 비교당하니까.
아니 프로그램만이 아니다. 연예인, 아티스트만 그런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도 그렇다. 과거의 어느 한 시점. 지나온 어느 한 순간. 항상 비교하고 비교되고 그로 인해 실망하고 좌절하고 분노하며 원망한다. 사람은 항상 그렇게 시간과 싸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시간 속을 살아가기에 쌓여 온 시간 만큼 항상 시간과 싸우며 그 시간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벌써 5년 반. 6년에 접어든다. 그동안 인상도 강했다.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항상 화제가 되었다. 감히 비판하기도 두려울 정도의 마니아들도 생겻다. 그리고 그런 만큼 시간도 쌓였겠지. 감정도, 기억도, 그 순간들도.
무한도전에 있어서도 가장 큰 경쟁자이자 장애물은 바로 그런 무한도전 자신이 거쳐온 과거의 시단들이다. 오히려 더 잘되었기에. 오히려 더 훌륭했기에. 더 재미있었기에. 더 나아져야 할 것 같고, 더 훌륭해져야 할 것 같고, 더 재미있어져야 할 것 같고, 실제 그렇고. 항상 가장 비교되는 것이 과거의 무한도전이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가장 재미있었던 순간들.
무한도전이 어느 정도 정체기에 있다는 것은 아마 그런 의미일 것이다. 싸워야 할 상대가 많다. 무한도전을 보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기억들과 그 순간들과 지금 이 순간에도 싸워야 한다.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극복하고 또 한 번 재미를 주기 위해서.
5년이 넘은 프로그램이 항상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단순히 습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재미있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시청자도 어느새 매너리즘에 빠지고 마는데.
무한도전에게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이제까지의 무한도전. 가장 잘 나가던 순간의 무한도전. 가장 감동적이던 무한도전. 가장 크게 웃음을 주던 무한도전.
살아있는 물고기는 항상 물을 거슬러 헤엄친다. 물고기가 물이 흐르는대로 자신을 맡길 때 물고기는 어딘가 모르게 떠내려가 마침내 죽고 만다. 살아있다는 것은 거스르는 것이다. 시간을 거스르고, 기억을 거스르고, 관념을 거스르고, 살아있다면. 그리고 살아있고자 한다면.
아마 그를 위한 특집이 아니었을까. 무한도전의 현재와 그리고 과거와 앞으로의 미래와. 나온 이야기들도 하나같이 무한도전의 앞날을 위해서. 아이유의 말처럼 무한도전의 위기를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다시금 지금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도전인 셈이다. 만일 위기가 있다면 그것마저 넘어 앞으로 나아가겠다.
다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있다면 그 시간들을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다. 스타킹을 이야기하는데, 스타킹은 굳이 매회 챙겨보지 않아도 그때그때 지나가듯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하지만 무한도전에는 한 회 한 회가 그런 지나온 시간들이 보여진다. 무한도전이, 무한도전 멤버들이 쌓아 온 시간들이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그리고 편집과 자막을 통해서 고스란히 보여진다. 그게 참 넘기 힘든 벽이다.
새로운 시청자의 유입이 적은 이유. 그리고 어느샌가 도태되는 시청자가 늘어나는 이유. 아마 어느 순간 자신이 그 시간을 따라잡지 못함을 느끼고 손을 놓아 버린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가족처럼 여겨져 적극성이 떨어졌다 하는데 그보다는 쌓인 시간들이 시청자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것이다. 역시 이 또한 무한도전이 어떻게 극복해 가야 할 것인가.
무한도전이 앞으로 나가는 길 자체가 하나의 역사다. 전인미답의 마치 보이저2호가 태양계를 벗어나 먼 우주를 여행하듯 무한도전은 예능에 항상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고 있다. 이제 6년 차, 앞으로 10년차 20년차가 되었을 때 무한도전은 어떤 모습을 갖게 될 것인가. 역시 어떻게 시간을 극복하며 항상 새롭게 시간을 거슬러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항상 궁금하고 관심이 가는 이유다. 무한도전에 대한 호감 이전에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의해 만들어지는 역사와 그로 인해 개척되는 신천지에 대해서. 어떨까?
모두가 하는 말의 공통된 부분일 것이다. 여운혁CP야 방송국 입장에서, 그 밖의 출연자들은 팬의 입장에서. 심지어 KBS의 PD마저 무한도전의 앞날을 믿고 격려해준다. 그들이 걸어가는 걸음에 대해서. 그것은 예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공통된,
"한국 예능은 무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 말처럼 누가 되어도 가질 수밖에 없는 그런 공유점이 아닐까. 그런 특집이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라면 하필 그럼에도 마치 박명수 디스 특집처럼 여겨지는 부분이랄까. 거의 모든 공격이 - 원래 그런 캐릭터이고 컨셉이지만 박명수 개인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방송만 봐서는 정말 박명수는 상종하기 힘든 사람이다. 앞으로도 기대할 것이 없고, 지금도 돌아볼 것이 없고. 과거에도...
누군가는 그것을 김태호PD의 뒤끝이라고도 하는데. 물론 배신이나 음모가 무한도전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알지만 마지막까지 박명수와 사이가 틀어질 것이 꺼려져서 최우수상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닌가. 아예 박명수를 떨어낼 것이 아니라면 모를까.
역시 나는 그런 식으로 누구 한 사람을 바보 만들고 공격해대는 데에는 그다지 익숙지 못하다. 끝내 정준하를 바보로 만드는 것도 그래서 조금은 불편했다. 내가 무한도전 팬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나는 그대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게 있어 무한도전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다. 나의 시간은 무한도전과 함께 하지 않느낟. 지금 이 순간. 지금 내가 느끼는 것. 재미있으면 재미있고 불편하면 불편하고 싫으면 싫고.
조금은 지루한 감이 있었다. 역시 이런 건 팬심 아니면 보아두기가 힘들다. 나중에 남자의 자격도 5년 넘게 하고 이런 특집 하면 그때는 보다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무한도전이 지나온 길과 앞으로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할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 무한도전의 시간을 기억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어찌되었든간에 나도 예능으로서의 무한도전을 좋아하니까. 좋은 프로그램이다.
10년, 20년, 한국 예능의 새 역사를 써나가기를 바라며. 그러나 부담은 갖지 말기를 바란다. 괜히 힘이 들어갈 것도 없다. 다만 그때까지 살아남자면 역시 시간을 거슬러야겠지. 여기서 시간을 거스른다는 것은 과거로 회귀하라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잡히지 말라는 것이다. 흐르는대로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붙잡히게 되고 언젠가는 멈추며 다시 되돌아가게 될 테니.
재미는 조금 그렇지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2010년을 마무리하고 2011년을 준비하는. 이제 이 시간대에 이것 하나 남은 터라. 나를 위해서도 올 한 해도 건투를 빈다. 위기설따위 나오지 않게.
신묘년 무한도전이 보여줄 감동과 재미들을 이 순간 벌써부터 기대한다. 파이팅! 모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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