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그렇다. 아무래도 정치란 남자들의 세계라는 선입견이 있어서일까? 하긴 정치만이 아니다. 기업물에서도 대개 여성은 즉흥적이고 감성적이며 속물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당장의 위기에 중심을 잃고 주인공으로 하여금 원칙을 저버리도록 강요하는 그런.
그래서 보면서 느끼는 게 장일준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도 저 조소희 때문에 뭔가 터져도 크게 터지겠구나. 김경모를 단지 경쟁자라는 이유만으로 적대하고, 고상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끌어들이려 하고, 심지어 찾아가 무릎까지 꿇는 모습이. 그것도 장일준에게 전혀 알리지 않고 그리 하고 있다는 것이 무섭다. 다른 이도 아닌 아내에 의해 자기가 모르는 곳에서 알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하물며 대통령쯤 되어서.
그러고 보면 프롤로그에서도 아내 조소희로 인해 궁지에 내몰리고 마침내 죽임까지 당하던가? 아내와 관련한 구설수로 말미암아 검찰조사까지 받고 불행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어느 정치인이 떠올라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런 조소희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은 고상렬이나 장일준이나 결국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구태정치인이라는 뜻일 테고. 가깝다고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은 바로 측근정치의 시작이며 권력이 부패하고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지름길이다.
어쨌거나 명언이라 생각한다. 정치는 선도 악도 아니다. 단지 권력을 향한 의지다. 바로 그 권력을 향한 의지가 선도 만들고 악도 만드는 것이다. 전혀 생각도 않고, 심지어 그와 전혀 반대 입장을 가진 이가 선거캠프에 합류하고 있음에도 느닷없이 발표한 무상의료처럼. 아내도 몰랐고, 후원자격인 처가에서도 전혀 몰랐고, 선거캠프에서도 몰랐고, 단지 고상열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정치인의 공약이라는 게 그렇다. 하긴 이치수가 장일준에게 따져묻는 대상그룹 회장부자에게 그런다.
"단지 어리석은 대중의 한 표가 필요할 뿐이다."
다만 공약이 단지 공약으로 끝나는가, 아니면 실제 현실에서 이루어지는가, 결국 그것을 결정하는 것도 국민이라는 것일 게다. 공약이 지켜졌을 때 여전히 그에 대해 신뢰하고 지지를 보내고, 장차 정권을 재창출하도록 도와주고, 공약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는 지지를 철회하며 장차 선거를 통해 정권을 뒤집고. 그럼으로써 정치인은 자신의 공약을 단지 공약으로 끝나지 않게 한다.
개인의 선과 사회의 선은 다르다. 개인의 선은 단지 자기 개인의 선으로써 성립하지만 사회의 선이란 서로의 약속에 의해 결정된다. 선이라 생각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그리 생각하니 선이다. 선이라고 여겨서가 아니라 선이라 약속이 되어 있으니 그것을 거스를 수 없어 그를 따르는 것이다. 대중으로부터 이익을 구하고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면 더욱 사람은 선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위선이란 그래서 달리 선에 대한 경의라 불리는 것이다. 그 선을 결정하는 것이 대중. 단지 정치가란 권력에 대한 의지로써 그 선을 쫓을 뿐이다.
다시 말해 정치인이 선하지 못하다는 것은 그 사회가 선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사회가 선하지 못한데 정치인 혼자 선해서 될 일이 아니다. 사회가 선하지 못하면 고상열 같이 선한 정치인도 타락하게 되고, 그나마 타락하지 않으면 일찌감치 도태되어 잊혀질 뿐이다. 그러나 무책임한 대중은 그에 대한 모든 책임마저 정치인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많은 터라. 그래서 이치수도 대중을 두고 어리석다 조롱하는 것이다. 공약 한 번 제대로 살피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도 돌아보지 않으며, 단지 이미지와 선입견만으로 판단하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모두가 조금씩 세금을 더 내면 더 많은 사람들의 무료로 의료혜택을 볼 수 있다. 조금씩만 더 세금을 내고 조금만 더 어려움을 감수하면 자신도 역시 언제 어느때 그로 인해 크게 혜택을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내 주머니에서 세금 나가는 것이 아까우니까. 괜히 내가 낸 세금으로 엉뚱한 사람 도와주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무상급식도 반대하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찬성하는 사람 가운데서도 기존의 예산 가운데 아껴서 그리 하자고 해야지 세금 더 내는 것은 반대라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다. 그런데 과연 정치인은 그런 부담을 무릎쓰고 그같은 정책을 진지하게 제안하고 할 수 있을까? 당선되면 그것을 제대로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
"명분이야 얼마든지 많다."
참 드라마로서 다루기 힘든 소재다. 무상의료라. 돈 없어 병원에 못 가고, 그래서 결국 병을 키워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많은 경우들을 보자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일 것이다.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병도 키우고, 단지 잠시 검사를 받는 것으로도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경우들로부터 보편적인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하지만 드라마에서도 나왔듯이,
"사회주의 하려는 것 아니냐?"
그나마 지금의 의료보험제도조차 자기가 낸 의료보험이 가난한 사람에게 쓰이는 것이 못내 아까워 의료보험 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다. 대단하게 부유한 사람도 아니다. 회사원인데 자기가 내는 의료보험비가 그런 더 열악한 형편의 사람들을 위해 쓰인다는 자체가 불합리하다 생각해 그리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상의료라면 어떨까? 권영길 민주노동당 당시 대통령후보가 이 공약을 발표했을 때 모두 듣기좋은 소리라고만 여겼지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않고 있었다. 오히려 서민층에서 더 반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가능할 것인가? 아예 너도나도 공짜로 병원에 가자는 것인데.
아마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무상의료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나올 것 같기도 한데, 작가의 의도일까? 아니면 PD의 의도일까? 아니면 그냥 얻어걸린 것일까? 어쨌거나 자칫 잘못하면 정치적 이해가 갈리며 꽤나 시끄러워질 수 있는 소재이다 보니. 장일준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한 무상급식에 대한 반대여론과는 마주 충돌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경우 어떻게 하려는가.
하지만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이, 일단 정책에 대해 모두가 보고 듣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가. 시의성도 있다. 무상급식과 무상의료. 그에 대한 재원마련과 구체적인 정책추진. 사회적인 합의의 과정까지도. 우리사회에서 과연 무상의료는 받아들여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인가. 이런 것도 정치드라마를 보는 재미일 테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보면 볼수록 우리의 정치현실과도 맞아떨어지는 부분들이 많아서. 특히 킹메이커로 불리우고, 지지의 댓가로 내각제 개헌을 요구하던 모습은 안경쓴 모습까지 어느 정치인을 닮았다. 대선과정은 지난 대통령선거를 떠올리게 하고. 돈을 요구하고 빌미로 검찰을 부르는 모습도 역시. 그래서 더 흥미진진한 이유랄까. 임기말 인기없는 실패한 대통령과 그와 차별화를 시도하며 대선에 나서는 총리출신의 후보와. 특히 그 초리출신 후보는 그리 선한 사람은 아니지만 대쪽이다.
드라마로서의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유민기와 장인영의 러브라인이 귀엽다. 장인영의 캐릭터 자체가 순수하고 귀여운 캐릭터고 유민기 역시 어딘가 그늘이 있으면서도 구김살이 없다. 참으로 고전적인 솔직하지 못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라는 게 고금동서에 가장 흔히 쓰이던 소재였다. 술마시고 하이힐 부러지는 장면이나, 그래서 업고 돌아가는 장면은 너무 많이 쓰인 클리셰일 테고. 하지만 없으면 안 되니까.
긴장이 고조된다. 가장 필요한 선거참모를 마침내 끌어들이고, 그렇게 체계가 갖추어지며 마침내 드러나는 대통령의 의지. 대통령이 나서게 되면 아무리 인기가 없어도 판이 많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유민기와 장인영의 러브라인도 관심이 가는데다, 새로운 전문적인 선거참모가 더해지며 하나의 유기적인 집단 - 세력이 완성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팀과 팀 사이에 치열하 싸움이 시작될 테지.
아무튼 아무리 봐도 이치수의 말을 부정할 수 없는 게,
"어? 그런 공약도 있었어?"
공약이 공약으로 끝나든말든 공약조차 보지 않고 찍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 그래 놓고는 공약이니 실행하겠다고 하니 하지 말라고. 뻔히 공약으로 내놓고 그래서 선택된 정책임에도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모르고 심지어 비난하며 반대하기까지 한다. 정상일까?
정치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정의는 의지다. 그 의지가 어디로 왜곡되어가는가. 돌아보면 참으로 뼈아픈 일들이지만 모르고 넘어가면 그저 남녀간의 사랑타령으로 재미있지 않을까. 꽤 귀여운 커플이지 않은가. 제이는 역시 "가수"로서 노래를 잘 하고. 가수가 노래 잘하는 컨셉으로 나와 뭐하게?
재미있었다. 우리의 정치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고, 왜 우리 사회가 이 모양인가를 강조해 보여주는 것과도 같고. 최수종의 존재감이야 뭐. 볼수록 볼만한 정치드라마인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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