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마추어스런 드라마편성 - 시청자에 민폐다!

까칠부 2011. 1. 3. 22:32

예를 들어 식당에 갔다. 진열된 모형이나 사진을 보고 또 종업원에게 물어 음식을 시켰다. 그래서 맛있게 먹고 있는데 느닷없이 사장이 나와 그런다.

 

"이거 맛 없는 거니까 먹지 마세요."

 

그러면서 설렁탕을 먹고 있었는데 갈비탕을 대신 내놓는다. 기분이 어떨까?

 

시청자와의 약속이다. 이런 컨셉의, 이런 배우들이 등장하는, 이런 내용의 드라마를 방영하겠다. 그러면 시청자는 그 약속을 믿고 프로그램을 본다. 그리고 마음에 들면 끝까지 더 이상 재미가 없거나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프로그램을 보게 된다. 그 전제는 역시 방송국과 제작사와의 약속과 신뢰다.

 

그런데 시청율 낮다고 갑자기 때도 안 됐는데 프로그램을 끝내 버리고, 원래 전개되었어야 할 내용이 아예 나오지도 않고, 아니면 시청율 높다고 끝났어야 했을 프로그램이 연장 방송된다. 과연 어떨까?

 

굉장히 시청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쁜 것이다. 안다. 이해한다. 시청율 떨어지면 광고부터 떨어져나간다. 방송국도 일단 돈이 들어와야 월급도 주고 운영도 할 텐데 광고가 떨어져나가면 완전 적자인 거다. 따라서 방송국 입장에서도 시청율 낮은 프로그램은 그때그때 빨리 정리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런데 왜 그 책임은 온전히 시청자가 떠안아야 하는가.

 

방송국 입장에서야 시청율 낮은 프로그램 바로 잘라버리고 새로 괜찮은 프로그램 시작하면 좋겠지. 그러나 여직 재미있게 보고 있던 시청자도 있다는 것이다. 방송국의 약속을 믿고 지금 방영하고 있는 내용에 만족하며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다. 그런데 그런 방송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어 버린다면. 누구에게 피해가 있겠는가.

 

이게 얼마나 짜증나는 일이냐면 시청자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다. 단지 드라마를 내보내 광고 따내고 돈 벌려는 목적이지 그것을 보는 시청자의 입장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프로라면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아니면 말고. 되면 되고.

 

하다못해 제품 하나 내놓을 때도 그것이 시장에서 얼마나 팔릴까 면밀한 계획을 세워 개발하고 생산하고 시장에 푼다. 어떤 수요층에 어떻게 공략하여 판매할 것인가. 시장조사도 하고, 예상수요층의 성향조사같은 것도 하고, 하여튼 기획 단계에 할 일들이 그리 많다. 그러고서야 겨우 제품 하나 내놓는 거다. 그 부담은 모두 제조사가 떠안고.

 

그런데 적당히 대충 재미있겠거니. 그래놓고는 시청율 높다고 늘리고, 시청율 낮다고 줄이고, 대중의 반응이 어떻다고 드라마 내용을 바꾸고. 도대체 기획단계에서 무슨 일을 했는가 말이다. 하다가 반응 봐서 그때그때 어떻게 대충 하면 되겠지. 그 책임은 온전히 시청자가 뒤집어쓰고.

 

그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시청자와의 약속은 저버린 채 그때그때 방송국 입장에 따라 알아서. 그러니 제작단계에서도 그리 허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하든 일단 방영한 드라마는 끝을 봐야 하고. 그 책임은 온전히 방송국에 돌아가고. 그 여파가 책임자들에게 돌아간다면. 그래도 이렇게 만들다 마는 드라마라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 그 전에 도대체 방영한 드라마에 대한 판단이라는 게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시청율 낮아서 망했다. 그런데 작품 자체로도 망했는가. 결국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는 드라마가 끝나고 봐야 아는 것이다. 제 분량도 채우지 못하고 끝났는데 그것을 두고 잘만들었네 못만들었네 어떻게 아나. 모르는 것 아닌가. 시작은 미약했으니 끝은 창대하리라. 판단 자체를 막아버린다. 어떤 드라마를 만들려 했는지. 어떻게 대중들에 그것을 보이려 했는지. 마치 시험을 치르고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는 아이마냥.

 

드라마는 결국 상품인 것일까? 상품이더라도 이런 경우는 없다. DIY도 아니고. 만들다 말고 내놓아서 상황 봐가며 뚝딱뚝딱. 분위기 안 좋으면 안 팔아. 일본처럼 아예 죽이되든 밥이 되든 한 번 편성하고 나면 일단 시즌은 마치는 게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게 된다. 최소한 그건 재없고 인기없는 드라마에 대해서 어째서 그런가 납득할 수 있게 한다. 최소한 재미있게 보고 있는 시청자가 배신당할 염려는 없다.

 

결국은 사전제작제라는 것인데. 그게 옳다. 다 만들지도 않은 것을 시장에 툭 던져놓고는 반응 봐서 완성하겠다. 아무리 드라마도 하나의 컨텐츠이고 상품이지만 과연 그것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일까? 그렇더라도 프로로써 시장을 대하는 태도일까? 소비자인 시청자에 대해서는

 

드림하이는 어떻게 해도 내 취향이 아닐 것이기에. 그러나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는 시청율을 이유로 막을 내렸다. 아직 한참을 더 남은 것 같은데도 보지 못한 채. 예전에도 그것 때문에 한국 드라마 안 보겠다 결심한 것이었는데. 아마추어가 만드는 드라마따위.

 

문근영의 말에 십분 동의한다. 어떤 감독과 어떤 시나리오와 어떤 스텝과 어던 배우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방송국과 제작사다. 어떻게 투자하고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방영할 것인가. 그랬다면 그 책임은 방송국이 져야겠지. 기획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기획은 적당히. 책임은 제작진과 배우와 시청자들에. 하기는 방송국이 시청자에게조차 갑일 테니까.

 

월요일 저녁, 간만에 한가해지면서 불만이 많다. 전혀 프로스럽지 못한 아마추어에. 그들의 어설픔으로 인해 내가 입은 피해에.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이라는 비관적인 확신에. 그게 우리나라 드라마환경이고 방송국일 테지만. 사전제작. 진짜 이렇게 절실할 줄 몰랐다.

 

내가 다시 방송국의 약속을 믿으면 돌이다. 개천 밑바닥에 기름때 절어 굴어다니는 콘크리트덩어리. 그러고도 월급을 받는다? 참 세상 살기가 이렇게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