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소리들을 듣는다. 듣는다기보다는 읽는다.
"심형래도 예능을 못하니 가치가 없다."
예능이 트랜드인데 그것을 따라오지 못하고 옛날 구시대 슬랩스틱만 한다는 것이다.
뭐 일견 맞는 말이다. 확실히 심형래의 슬랩스틱이 예전만 재미가 못한 게 사실이니까. 수가 읽히거든.
어차피 90년대부터도 심형래는 퇴조기였다. 슬랩스틱에서 토크로 코미디의 중심이 옮겨가면서 사실상 심형래가 설 자리 자체가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심형래가 토크를 할까.
물론 토크도 잘하면 좋기는 할 것이다. 토크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고, 예능도 잘하고... 하지만 그 이전에 심형래의 슬랩스틱은 동시대 코미디언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는 것이다. 비록 슬랩스틱의 시대는 지났어도 그는 여전히 최고의 슬랩스틱 코미디언이었다. 그런데 굳이 슬랩스틱을 버리고 다른 코미디를 했어야 할까?
좋겠지. 그렇게 다른 분야에서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웃음을 시도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성공할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할 것이고. 그렇다고 과연 그의 슬랩스틱이 의미없고 가치없는 것이 되는가.
문득 하는 생각. 왜 아무리 대세에서 벗어나고 인기가 없다고 슬랩스틱을 잘하는 것이 가치가 없는 것이 되어야 할까. 예능이 대세이고 리얼버라이어티가 대세라고 최고의 슬랩스틱 코미디가 그 앞에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야 할까. 입담이 좋아야 하니까 몸으로 웃기는 건 구시대적이라. 그는 그 시대에 최적화된 코미디언인걸?
어떤 시대라도 한 분야에서 최고라면 그것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기만의 최고의 개성과 강점이 있다면 그것으로 그는 존중받고 존경받아야 하는 것이다. 단지 시대가 그렇고 대세가 그럴 뿐 그 개인이 갖는 가치는 바뀌지 않는 것이니까.
당연히 억지로 웃으라는 것도 아니다. 재미없는데 어찌 억지로 웃을까? 그래서 도태되기도 하겠지. 어느샌가 묻혀버린 수많은 돌아온 옛스타들처럼. 하지만 그렇게 묻혀도 클래스는 클래스다. 그만한 슬랩스틱을 보여줄 수 있는 누군가가 없다면 - 아니 그런 누군가가 있다 하더라도 그의 재능과 개성과 업적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 자체로 훌륭하고 대단하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런 베테랑들도 최근의 트랜드에 맞춰야 하니. 그렇지 못하면 가치가 없고 의미도 없고. 존경할만한 무엇도 없고. 더구나 개그맨이니까. 차라리 음악인이면 아티스트로서 고집을 인정해주었을까.
하기는 얼마전 대상을 받은 이경규더러도 한때 유재석이 대세니 유재석을 닮으라는 소리가 나온 적도 있었다. 이경규가 박명수를 따라한다고. 이경규에게는 이경규의 방식이 있겠지. 유강이 대세라 해도 어제 신동엽이 보여준 진행처럼 이휘재며 김제동에게도 그같은 자기만의 스타일이라는 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중은 그런 다양한 개성들을 차별적으로 소비하고 있고.
누가 낫고 못하네. 당연하다. 그런 재미도 있어야겠지. 하지만 누가 누구를 따라가야 하네. 누구에 비해 누가 못하고 못났네. 이렇게 했어야 하네. 물론 그런 것들이 나름 자기만의 기준이 되고 하겠지만.
지금이야 인기가 없어다로 한때는 대단했으니까. 대단한 정도가 아니라 그 분야에서 최고라 인정받던 이들이었다. 시대가 바뀌고 흐름이 바뀌며 전같지 못할 뿐. 그렇다고 조롱받아야 하나? 비난받아야 하나? 아예 먼지가 되어 흩날리듯 온라인에서 까이고 있는 최양락처럼. 그냥 예능이 안 맞았을 뿐이다. 이성미에게도 이성미 나름의 코미디에 대한 철학이 있을 테지.
존경이 없다는 것. 그래도 빈티지스타들에 대한 존경이 이리도 없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와인도 이렇게 오래 묵고 나면 가격대가 달라질 텐데도. 억지로 웃으라는 게 아니라 이제는 이만하면 존경해주어도 좋지 않은가.
하지만 대중님이시기에 대중의 시각에만 따른다. 지금의 대중의 눈에 드느냐 못 드느냐. 개성은 각기 다른데 대중의 취향으로만 소비하려 드니. 정작 그 개성들이 그 보편적인 대중의 취향에만 봉사하려 들 때 과연 어떤 현상이 나타나겠는가.
아이돌의 대세라는 것... 여러가지로 분석해도 역시 사회현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역시 어디까지나 대중에 있고. 더 이상 연예인을 - 하긴 존경했던 적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대중문화에는 획일화라는 우려가 당연하다는 듯 따라다니고 있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그저 슬랩스틱만 잘해도 좋지 않은가. 가끔 나와서 심형래만의 슬랩스틱을 보여주는 것도. 시청율이 문제면 어딘가 작은 극장에서라도. 김제동의 토크콘서트처럼. 다양한 개성이 공존해야 다양한 재미가 있지.
나는 연예인이야 말로 충분히 존경받아 마땅한 존재들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다양한 개성과 재능이 이리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므로. 비록 그것이 미미할지라도. 차라리 대중보다 그들이 더 훌륭하다. 그리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나 역시 더 즐겁고 행복해질 것이므로.
심형래도 있고, 이경규도 있고, 유재석 강호동도 있고, 신동엽도 있고. 남자의 자격도 있고 무한도전도 있고 영웅호걸도 있고. 때로는 시청율 5%짜리 쩌리프로그램도 있고. 마니악한 건 마니악한 맛이 있으니까.
그래서 하는 말. 그의 차별화된 강점과 개성은 무엇인가. 무엇으로써 나를 설득하려 하는가. 어떤 새로운 재미와 다양한 가능성으로 나를 납득시키려 하는가. 문득 생각케 되는 말이기도 하다. 원래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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