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젠틀맨, 근사함에 대한 동경...

까칠부 2011. 1. 4. 01:16

오히려 남자의 자격에 대한 비판들을 보면서 그제 남자의 자격의 주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신원호PD는 이런 미션을 생각했던 것이었구나.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 가장 큰 선물. 호기심과 동경일 것이다. 호기심은 알고자 하는 욕구다. 동경이란 더 나아지고자 하는 욕망이다.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멋지고, 더 대단하고, 더 훌륭하고, 더 화려하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런 것들을 보았을 때 닮고자 한다. 배우고자 한다. 따라하고자 한다. 그렇게 인간은 인류의 역사를 지금껏 써오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문화를 동경했다. 그리고 그런 로마의 문화를 게르만인들은 동경했다. 로마의 문화를 동경하여 스스로 로마인이 되고자 했고, 서로마가 멸망하고서는 그 유산을 받아들여 지금의 유럽 문명을 꽃피우고 있었다. 과연 게르만인들에게 로마문화에 대한 동경이 없었다면 지금의 유럽의 문명은 가능했을까.

 

한반도 역시 내내 중국을 동경하여 중국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 왔다. 중국의 한자를 받아들이고, 유교의 예법을 받아들이고, 예술과 문화 전반에 있어 중국은 한반도의 모범이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 조선인들은 스스로 작은 중국이라, 소중화라 하며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던 것이었고.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중국따위라 하여 우리 것만을 고집했다면 한반도의 문명은 어떻게 흘러왔을까.

 

돈 많은 사람을 보면 그것을 닮고 싶으니까. 멋지게 차려입고 있으면 그렇게 따라 입고 싶으니까. 예쁜 사람을 보면 나도 그렇게 되고 싶으니까. 사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도 하고 노력도 하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더 예뻐지기 위해 성형수술비용을 만들고자 아르바이트도 하고. 더 멋진 옷을 입기 위해 보다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을 찾기도 하고. 사실 돈을 벌어 사치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보상이라 할 수 있다. 그만한 노력과 정성이 있었기에 그만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고, 그에 따른 사치야 당연한 권리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원래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원동력이었다. 무한소비와 무한생산. 북학의에서도 박제가는 우물에 비유하며 소비가 늘어아 생산이 늘고 생산이 늘어야 나라가 부강해짐을 역설하고 있었다. 소비는 악이 아니고 미덕이다. 단지 얼마나 멋지게 소비할 것이냐. 아니 정확히는 돈을 어떻게 누릴 것이냐.

 

왜 돈을 버는가? 어째서 돈을 버는가?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그보다는 어떻게 돈을 쓸 것인가? 어떻게 돈을 누릴 것인가? 그보다는 어떻게 자신의 삶을 즐길 것인가? 말하지만 정당한 수입에 의한 사치는 오히려 미덕일 수 있다. 노력에 의한 호사라면.

 

다만 문제라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돈을 버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통장 잔고가 보이고 현재 나의 경제수준이 보인다. 그 수준에서 누릴 수 있는 한계가 보인다. 더 돈을 벌기 위해 타협해야 할 것들이 보인다. 그런데 그 수준에서 저리 돈을 쓰고 하는 것이 얼마나 아니꼽게 보일까. 돈을 더 벌어야 하는데 저리 쓰고 있으니.

 

"도대체 이 무슨 어울리지 않는 사치냐?"

 

하지만 1년에 한 번 정도는 무리해서 한 번 누려볼만 하지 않을까. 남자의 자격에서도 그리 말하고 있었다. 매일은 무리다. 그러나 1년에 한 번 정도는...

 

술을 조금 덜 마시면 된다. 다른 데 쓸 돈을 조금 더 아껴보면 된다. 물론 그만큼 더 열심히 일해야 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조금 더 고급스럽게 격조있게 보낼 수 있다면 그것도 훌륭한 보답이 되지 않겠는가. 함께 나누고픈 사람들과 그런 시간들을 함께 나누는 것도, 보답하고픈 사람들에게 그런 시간을 통해 자기 마음을 전하는 것도, 사업관계라면 또 그렇게 나름대로 특별함을 누려보는 것도.

 

매일 하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때로 아주 가끔은 누려볼 수 있는 사치가 아니겠는가. 이제까지의 자신에 대한 보답으로. 앞으로의 자기에 대한 다짐으로. 그리고 더구나 슬금 삶을 돌아보고 정리할 나이가 되었다면. 더 돈을 벌기보다 얼마나 의미있게 쓸 것인가. 성공을 위해 앞으로 달려가기보다 지금을 즐겨볼 수 있다면. 더 젊은 나이에서는 그것을 꿈꾸어 보아도 좋고. 마치 은퇴 이후의 한적한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처럼. 그때 형편이 닿는대로. 형편이 닿는 한 근사하게.

 

좋지 않은가. 나이 마흔을 넘기면 그렇게 살아보자. 나이 쉰이 넘어서는 그렇게 공연도 보고, 전시회도 보고, 사치도 부리면서 멋지게 살아보자. 아니면 은퇴해서. 당장은 전시회부터. 또 공연부터. 그리고 가끔은 무리해서 호사도 부려보고. 앞으로 달려가는 것만이 삶은 아니다. 멋있는 삶을 위해서.

 

물론 당장은 어렵겠지. 많은 사람들이 어려울 것이다. 지금 형편에 가당키나 하느냐. 하지만 그런 희망을 가지고 산다면 어떨까. 그저 앞으로 달려가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 그렇다고 반드시 프랑스 레스토랑이나 미술관, 클래식만을 말하자는 게 아니다. 그런 품위있는, 고상한, 격조 있는, 삶이 근사해 보이는, 그런 어떤 것들에 대해서. 사치를 부려도 좋을 때.

 

오히려 모두가 어렵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미션이 아니었을까. 알 수 없는 좌절과 분노와.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런 호사스러움이 있다는 것을. 그런 근사한 일들도 있다는 것을. 아주 가끔은. 언젠가는. 당장 어떻게 얼마나 돈을 버는가보다 장차 어떻게 어떤 삶을 누리며 즐기며 살 것인가에 대해.

 

차라리 동경하기보다 분노하고 부러워하기보다 증오하는 것은 어떤 까닭인가. 그만큼 이 사회의 좌절과 절망이 깊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만큼 아직 급하고 여유가 없고. 그래서 조금은 릴렉스해보자. 도시락을 싸가지고 벌서 12년째 호두까기인형 공연을 연말이면 찾아본다는 어느 아주머니처럼. 때로는. 언젠가는.

 

돌이켜 보니 정말 남자의 자격이기에 가능했던 가장 어울리는 미션이 아니었을까. 다른 프로그램이었다면 조금은 애매할 수 있었던.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었어야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알고 있다. 연말이면 꼭 정장을 입고 가장 비싼 레스토랑에서 한 끼의 식사를 즐긴다. 사실 그 돈이 전부다. 그 한 끼를 위해 1년을 일한다. 과연 그 사람은 진정 어리석은 바보일까? 바로 그런.

 

그렇게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저런 삶도 있구나. 한 번 쯤 경험해보고 싶구나. 가족들과 조금은 호사도 부리고. 친구들과 조금은 사치도 부리고. 아마도. 드는 생각이다. 지금.

 

 

 

마치 어려운 시험문제를 받아본 기분이다. 내 답은 명확한데 그것을 정리해 이야기하자니 쉽지 않다. 나름 의미있게 재미있가 보았던 에피소드였기에. 모두가 같지는 않겠지만.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