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욱 했다.
"뽀뽀하고 싶은데 못해서 아쉬워하는 것 가은데?"
도대체 만난지 26년 넘었다는데 언제까지 저리 닭살일 건가? 방송이라는 걸 생각해야지? 이 추운 겨울 홀로 긴긴밤을 지새울 솔로는 생각지 않는 것인가? 언제부터 방송은 소외된 이웃을 외면하게 된 것일까?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원래는 게임이었구나. 게임에서 진 벌칙으로. 하지만 그것을 몰랐을 때 그냥 쓰러지고 말았다. 하필 윤형빈인가. 이경규도 이정진도 한가하게 드러누워 있는데 막내 혼자서 설거지. 그리고 흘러나오는 신데렐라...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덕구와 그런 덕구와 함께 마당을 뛰노는 김국진과, 아아... 우리집 녀석들도 마당 넓은 집이면 저러고 놀 텐데. 남자의 자격 보는 동안에도 두 녀석이 한 녀석은 옆으로 드러눕고 다른 한 녀석은 무릎에 앉아 고롱고롱 잠이 든다. 사람이 마냥 강아지처럼 되는 동네.
하지만 역시 압권은 툇마루에 나란히 아무말 없이 아무것도 않고 앉아 있는 장면 아닐까?
"방송은 PD가 알아서 내보내겠지."
마치 방송조차 신경쓰지 않는 듯한 그 넉넉함. 아예 방송이라고는 아랑곳없는 그 여유가 눈처럼 하얗게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얼마나 바쁘게 각박하게 살아왔던가.
방에 드러누워 하는 일 없이 낮잠을 자고, 자다가 일어나서는 떡을 나누어 먹고, 배낭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시시껍절한 농담들. 그다지 웃길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멤버들과 함께 어느새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넉넉함에 전염된 것일까?
아예 밥하지 말라며 밥을 솥째로 해주시는 할머니, 김치며 반찬을 바리바리 싸 오시고, 떡을 가지고 가니 오히려 먼저 대접하지 못했음을 미안해 한다.
"잡솨!"
"참말로..."
과일을 한 바구니나 가지고 와서도 공치사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워 도망가시는 할머니는 귀여우셨다. 베푸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그런 계산하지 않는 선의일 것이다. 배가 맛있는 것일까? 그 마음이 맛있는 것일까?
이래서 귀농이로구나. 귀농에 대한 판타지를 그대로 보여준 듯한 회차였다. 왜 사람들은 귀농을 꿈꾸는가? 왜 전원의 삶을 그리 그리고 살아가는가? 예능귀신 이경규마저 예능을 잊은 듯한 그런 모습들에서. 굳이 예능을 하지 않으려는 그런 여백과도 같은 자연스러움에서. 물론 그런 가운데서도 할머니는 할머니였고 경규옹은 경규옹이었지만. 이윤석은 이제 김태원의 하인까지 겸업할 것 같고, 윤형빈은 층층시하 선임하인 이윤석의 시달림을 받아야 할 것 가고. 마치 왁자하게 어느 형제 많은 집을 모는 것 같은 흥겨움.
하얀 눈을 보니 나도 그것을 밟고 싶다. 누구나 그렇지 않던가. 누구도 밟지 않은 전인미답의 하얀 눈밭에 발자국을 내고 싶다. 이경규가 먼저 들어가고, 이윤석이, 그리고 이윤석이 재촉한다.
"왕비호, 내 뒤로 안 와?"
"왕비호 그만둔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왕비호라고..."
지난 KBS 연예대상에서 이경규가 말한 시상소감에 대한 퍼포먼스다. 후배들과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내가 가는 길이 후배들의 모범이 될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걸어가리라.
"역시 경규 형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니 편하네요."
이윤석과 윤형빈의 이어진 발자국은 그에 대한 경외이리라. 그리고 그들이 나아갈 길일 것이고. 그러고 보니 윤형빈도 이경규 같은 MC를 목표로 한다고 했었지. 그리고 누군가는 그들이 걸어간 뒤를 역시 그들이 그랬듯 뒤따라 걸어가리라.
하여튼 아직 저녁도 먹기 전인데. 죽는 줄 알았다. 맛난 밥에, 동치미배추에, 아마 돼지고기 수육인 듯하고, 장조림, 게장... 그리고 경규옹의 잔치국수.
"국수가 비려요. 먹을수록 비려요."
역시 부창부수다. 아내는 뽀뽀를 바라고, 남편도 그게 아쉬워서 끝내 돌아가 차 문을 열고 쪽. 아니나 다를까 남들 다 시골의 한적함을 즐기고 있는데,
"방안이 난방이 안 되니까..."
이현주씨의 등장은 조금 의외였다. 하지만 집이 있으면 손님도 있어야겠지. 반가운 손님이면 좋을 것이다. 지나치게 솔직한 - 그리고 김태원의 노골적인 애정표현이 역시나 시골의 정취가 어우러져 정겹다.
대단하게 터진 건 없는 것 같은데,
아,
"주인 마음이에요!"
"돈만 주시면 되요!"
슈퍼 사장님. 하기는 웃음이란 웃겨서만 웃는 게 아니다. 그 마음이 고맙고, 그럼에도 내색하지 않는 것이 정겹고, 그 무뚝뚝뚝한 모습이 어느새 흐뭇하고. 내내 뭐라고 오히려 미안해하며 챙겨주던 마을주민들도.
개밥도 저렇게 정성들여 끟여 주는구나. 새끼 낳았다고. 예전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녀석도 새끼 낳으니 아주 집안이 난리가 아니었는데. 동물을 학대하는 그 마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느샌가 사람과 경쟁하듯 동물도 경쟁하고 배제할 대상으로 보게 된 것이 아닐까?
잡아먹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 하는 것. 자연의 섭리로써 죽이고 먹더라도 살아서는 그 관계에 항상 충실한 것. 도리란 다른 데 있는 게 아닐 텐데.
그 개밥 끓이는 솥이 너무 정겹고 아팠다. 요즘 들려오는 뉴스들에. 그런 마음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마음이 비어 있어야 그런 당연한 마음들도 돌아와 자리할 수 있는 것인지. 어쩌면 우리가 어느새 잃어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죽이고 먹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대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마 제대로 전염된 듯 어느새 떡집에서 떡을 하는데 화면 안으로 들어와 낼름 찐 떡을 집어먹는 담당 PD도. 참말로 할머니의 뒤를 열심히 쫓고 있는 미녀작가도. 옹기종기 카메라를 들고 방안에 모여 있는 스텝들도. 모두가. 그렇지. 한 집에서 함께 음식을 나누니 그래서 식구다. 남자의 자격 여섯 멤버들만일까? 함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모두가 한 식구, 한 가족이다.
"양말 벗어!"
"내 거에요!"
한 바탕 왁자한 웃음처럼. 문득 들리는 오빠라 하고 형이라 하는 그 정겨운 이름들처럼. 가족일 테지.
바베큐가 먹고 싶다. 숯불에 맑은 공기로 구운 바베큐를. 눈까지 내려 밤도 서늘하니 더 맛있을 것이다. 먹물처럼 까만 하늘과 흩뿌린 별빛과 마을의 드문한 불빛들. 타닥타닥 숯불은 타고. 빌어먹을.
예능 보다 욕 나오기도 오랜만이네. 질투는 인간의 당연한 본능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배아프다. 속쓰리다.
시시껍절한. 시답잖은. 하찮은. 무의미한. 그러나 그래서 지금도 미소가 떠나지 않는. 그것이 아니었을까?
시골집처럼 넉넉한 남자의 자격이었으면 한다. 올 한 해에도. 가족과 같은 그 온기를 즐거워한다. 여백처럼 넉넉한 마음들을 기꺼워한다. 재미 그 이상의.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바람이 분다. 막은 바람이. 추워야 할 터임에도. 우풍이 세다. 고양이 녀석들은 고롱거리며 어느새 잠이 들었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밥이 맛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벌써 배가 불러버린 것인지.
취해버린 것 같다. 그 넉넉함에. 그 정겨움에. 조금은 샘이 나려 한다. 좋다.
'남자의 자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자의 자격 - 배낭여행을 기대하는 이유... (0) | 2011.01.11 |
---|---|
남자의 자격 - 신원호 PD에게 감탄하는 이유... (0) | 2011.01.10 |
남자의 자격 - 젠틀맨, 어쩌면 묘사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0) | 2011.01.05 |
남자의 자격 - 젠틀맨, 근사함에 대한 동경... (0) | 2011.01.04 |
남자의 자격 - 젠틀맨, 예禮와 악樂, 더해서... (0) | 2011.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