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젠틀맨, 예禮와 악樂, 더해서...

까칠부 2011. 1. 3. 16:28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 굳이 프렌치를 먹고, 굳이 클래식을 듣고, 값비싼 서양요리를 먹고 서양의 전통음악을 듣고 하는 것이 과연 젠틀한 것이냐? 샤갈이어야 하고 이응노여야 하느냐?

 

어제 했던 말의 연장이다. 예는 곧 악이며, 악은 곧 예다. 예는 악으로써 채워지며 악은 예로써 마무리된다. 악은 정신이며, 가장 치열한 이성이며 가장 첨예한 감성이다. 예는 그것을 구체화하는 행위다.

 

예를 들어 아이돌 공연을 보자. 무지 시끄럽다. 음악을 듣고 싶은데 멤버의 이름을 연호하고, 그때그때 가사를 따라 외쳐 부르고. 하지만 가만 보면 그게 다 약속이 되어 있다. 어디서 어떻게 외치고, 어디서 어떻게 부르고, 그것은 말하자면 그 아이돌의 팬이라고 하는 "예"다.

 

양식화하는 것이다. 아이돌을 좋아한다. 아이돌을 사랑한다. 그들의 무대가 기쁘다. 어떻게 표현하는가? 고함을 지르는 거다. 박수를 치는 거다. 야광봉도 흔들고. 그리고 그것은 응원이라고 하는 형태로 보다 구체화되고 정형화된다. 그게 바로 예다.

 

상대를 사랑한다. 상대를 공경한다. 상대를 존중한다. 그것을 예로써 표현하는 것이다. 말을 높이고, 존칭을 쓰고, 행동을 삼가고, 자신을 낮추고, 그러나 서로 모르는 사이에 속내를 그냥 표현한다고 알 수 있을까? 그래서 약속한 양식화된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그게 바로 예다.

 

예로써 자신을 다스리는 것. 예로써 타인을 다스리는 것. 그 예 안에 서로에 대한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양식화된 의식이 있어 그로써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첨단의 비언어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말이지만 그 말조차도 그 형식을 통해 더 전하는 바가 많은 것이다.

 

그러면 왜 프렌치인가? 가장 예법이 엄격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귀족들이, 대혁명 이후로는 프랑스의 부르주아들이 만들어낸 프랑스 요리의 예법은 가장 복잡하고 가장 엄격해서 이후 세계의 요리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었다. 물론 프랑스요리도 이탈리아 요리와 러시아 요리로부터 영향을 받은 바가 적지 않지만 그것을 양식화하여 세계로 퍼뜨린 것은 바로 프랑스다.

 

다시 말해 젠틀하다는 것은 값비싼 프랑스요리 자체만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기까지의 그 과정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떻게 앉고, 어떻게 음식을 먹고, 어떻게 대화를 하고, 어떻게 그 자리를 즐기는가. 그것이 가장 양식화된 것이 프랑스요리이기에 그러는 것이지, 프랑스요리가 고급스럽고 값비싸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정식도 충분히 비싸다. 다만 그런 한정식은 역시 프랑스요리만큼이나 정형화되고 양식화된 예법을 따라 먹을 필요가 있다. 한식이라고 설렁탕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사물놀이와 클래식은 그 즐기는 문화 자체가 다르다. 클래식도 상당히 양식화된 문화다. 감성으로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성으로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음악을 즐기면서도 지켜야 할 예절 같은 것들이 있다. 이윤석이 내내 언제 박수를 쳐야 할 지 몰라서 헤매던 것처럼. 다만 우리나라 음악의 경우는 그같은 양식화가 아직 덜 되어 있다. 대중음악은 더더욱이다.

 

바로 그것이다. 음식을 즐기고, 음식을 먹는 자리를 즐기고, 음악을 즐기고, 공연을 즐기고, 어디서나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양식화된 보다 엄밀하고 절제된 예라는 것은 그렇게 한정되어 있다. 그런 부분에서 보다 우리보다 앞서 있는 것이 바로 유럽이고, 과거 중국의 예가 우리의 문화를 지배했듯 그들의 예가 오늘의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 예를 통한 정신을 받아들이는 것. 그 예로써 정의되는 삶의 양식을 받아들여 따르는 것. 그것이 바로 교양이라는 것이겠지.

 

젠틀맨이라는 건 그런 뜻이다. 값비싼 요리를 먹어서? 고상한 음악을 들어서? 그보다는 예를 알고 그 예로써 즐기는 악을 알고. 악을 즐기면서 그로써 예를 알아가고.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 없다. 공자는 군자라 했고, 언제부터인가는 선비라 했고, 귀족이라 했고, 신사라 했고. 품위니 고상함이니 우아함이니. 가슴을 채우고 머리를 채운다. 그것을 드러내기에 가장 좋은 소재가 프렌치이고 클래식이었던 것이다. 그보다 그런 것들을 통해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그 시간들이었던 것이다.

 

뭐 그렇게 거추장스럽게... 그게 바로 예다. 뭐 그리 졸립고 피곤하게. 그게 바로 악이다. 괜히 그렇게 비싼 것들을... 하지만 그렇기에 예이고 악인 것이다. 그것이 마음이며 정성이다. 그것이 의지이며 노력이다. 다른 이를 대하고, 다른 이들과 대접하고, 또 어울리고. 자기를 높이고 상대를 높이며.

 

말이 너무 어려울까? 아마 나로서는 이 이상 쉽게 쓰기가 어려울 것이다. 글은 내공이 깊을수록 쉽게 나온다. 예를 잊는다는 것은 예를 알고서 가능하다. 악을 잊는 것도 악을 알고서 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경지가 되지 못해서.

 

앞서 말한 그대로다. 아이돌 팬이다. 아이돌 공연을 보러 간다. 어떻게 자세를 가져야 하겠는가? 준비를 하겠지. 야광봉에 뭐에. 그리고 모여서 약속을 할 것이다. 언제 어떻게 어떤 식으로 응원을 한다. 그것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것은 무엇으로써 완성되는가.

 

아이돌만이 아니라 록밴드의 공연을 볼 때도. 원로가수의 디너쇼를 찾을 때도. 아티스트에 대한 경의외 존경을 담아서. 애정과 관심을 듬뿍 표현함으로써.

 

집에서 밥을 먹더라도 격식을 차려 흐트러짐이 없다면 밥상에서의 관계도 그만큼 정돈되고 마무리지어지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대화보다 아버지로써, 아내로써, 자식으로써, 그러나 대충 차려 먹는 밥은 말도 행동도 대출 하게 한다. 양반들이 근본없는 집안이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물론 굳이 어떤 정해진 엄격한 예법을 따를 필요는 없겠지. 아이돌 팬덤처럼. 다만 자기만의 양식을 지켜서 행할 수 있다면. 자기만의 격식을 지켜 스스로를, 관계를 다스려나갈 수 있다면.

 

지루해도 참고. 재미없어도 견디고. 그러면서도 알아가고. 그러면서도 이해하려 하고.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지키고. 모르면 묻고. 물어서 들으면 따르고. 공자도 말했지. 예란 묻는 것이다.

 

하기는 TV시청층이란 대개 젊다. 인터넷사용층도 대부분은 젊다. 어느샌가 삶을 돌아볼 나이가 되면 그런 것이 필요하다. 자신을 정리하고, 자기를 다스리고, 주위를 정의할 수 있는. 삶의 품격일 것이다.

 

굳이 클래식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닐 게다. 프렌치여야 한다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그 양식화된 정신을. 그것을 쫓는 그 자세에 대해. 인간의 격일 것이다. 고상함. 우아함. 아름다움.

 

확실히 서양문화가 지금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들이 먼저 양식화시키고 그로 인해 영향받는 것들에 대해서도. 그로부터 배우는 것이 있는가. 아니면 단지 남의 문화일 뿐인 것인가.

 

생각할 것이 많다. 하필 얼마전 관심을 가지고 읽던 것이 예와 악에 대한 부분이라. 예술과 예절에 대해서. 양식화된 인간의 행위와 정신에 대해서다. 과연... 더 길게 더 쉽게 쓸 수 없음이 아까울 뿐.

 

세상에 그저 허투루 지날 것은 없다. 함부로 폄훼할 것도 없다. 물론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따라야 할 것도 없다. 그 다스림이 곧 예와 악일 것이다. 어제의 주제. 스스로 격을 높여가는 과정일 것이다. 젠틀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