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크릿가든 - 으샤으샤 좀 했겠다!

까칠부 2011. 1. 5. 13:49

계급을 정의한 아주 멋진 대사가 있다.

 

"영국은 하나의 나라지만 그 안에 두 개의 서로 다른 나라가 존재한다. 고귀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같은 공간에 있지만 둘은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한다. 같은 공기를 마시지만 둘은 서로 다른 공기를 마신다. 생각하는 것 하나, 말하는 것 하나도 서로 다르다.

 

일본 만화를 보면 그런 걸 정말 극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워낙에 우리보다 자본주의에 대한 경험이 많고, 또 으샤으샤 또한 꽤 과격하게 했었으니.

 

"저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이다!"

 

그것을 가장 극단적으료 묘사한 최초의 작품이 아마 "유한클럽" 아니었을까. 최근에는 "오란고교 호스트부"가 그런 코드로 꽤 인기를 모았었다.

 

"부자들 생각하는 건 도무지 모르겠어."

 

길라임이 말하지.

 

"네 말이 다 맞아. 그러니까 더 화가 나."

 

그게 계급이라는 거거든. 납득할 수 없다. 용납이 안 된다.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옳다.

 

같은 세계, 같은 나라, 더구나 같은 언어로, 같은 논리로 이야기한다. 논리적으로 분명 타당하고 옳은데도 왜 이렇게 억울한가. 당연하다. 사는 세계가 다르니까. 나라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논리도 다르다.

 

바로 그게 계급이다. 같은 사람이다? 서로 같은 한국인이다? 이건희와 지하철에서 용역으로 청소일 하는 아주머니가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같을까? 같은 인간이고 같은 한국인이라고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서로 같겠는가?

 

그러고 보면 한국인들은 평등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정확히는 평등이라기보다는 원시적인 공동체에 대한 집착이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권력자든 무리에서 이탈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권력자가 막걸리 마시고 떡볶이 먹는 모습에 그리 감탄하는 게 그래서다. 부자의 낡은 구두에 고개를 끄덕이고. 대신 그들이 누리는 너무나 당연한 부에 대해서는 질투하고 시기한다. 가난에 대해서도 멸시한다. 그리 부유하지 않은 이가 가난을 동정하고 한 편으로는 무시하며 조롱한다.

 

그것이 드라마에도 등장한다. 영화에서도. 소설에서도. 단지 사는 수준만 다를 뿐 그들도 우리와 같다. 단지 누리는 것이 다를 뿐 그들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다. 신데렐라물이라고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현실을 묘사하는 경우는 없었다. 주위가 반대하고 방해할 뿐 단지 빈부의 차이가 - 계급의 차이가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모르겠다. 그 사이 그런 내용의 드라마가 있었는가. 하지만 이렇게까지 소름끼치도록 냉정하게 현실을 다룬 드라마는 없었던 것 같다. 소설도 글쎄... 어쩌면 그래서 더 인기가 있는지도. 드라마 속의 김주원은 외국의 영화나 소설에서나 볼 법한 왕자 그 자체거든. 하찮은 백성들의 삶따위 도저히 이해 못하는, 아예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고귀하신 왕자님. 그리고 그 사랑에 겁먹고 도망치는 길라임은 가련한 농노의 처녀일 테고. 솔직히 보고 있으면 길라임의 캐릭터가 너무 찌질해서 내가 다 화가 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게 바로 계급이라는 현실이니까.

 

보면서도 참 이것 원작자가 운동 좀 했겠구나. 사회과학에 대한 책을 좀 읽었겠구나. 아니면 유럽이나 일본 쪽의 로맨스물을 좀 보았거나. 거기서 귀족들은 진짜 귀족처럼 묘사되지.

 

다만 문제가 둘 사이의 로맨스가 - 정확히는 하지원의 없는 자존심이 워낙 찌질해 보여 그다지 몰입이 안 된다는 것. 그보다는 오스카와 윤슬의 로맨스 쪽이 훨씬 관심이 간다. 그리고 유인나의 귀여운 연기도. 아무래도 영웅호걸의 영향이 큰 듯. 표절 하나하나가 천연 그 자체다. 윤상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윤슬 역이 아마 김사랑? 예쁘다. 하지원은 솔직히 그동안 한 번도 예쁘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어서.

 

아무튼 인기있는 이유를 알겠다. 이건 꿈이다. 판타지다. 말 그대로 드라마다. 고귀한 왕자와 자존심밖에 없는 가련한 평민의 아가씨와. 과연 왕자와 신데렐라의 이야기는 희극으로 끝났을까. 동화는 아니라는 거겠지. 동화가 아니라는 것이 더 판타지를 자극한다. 꿈을 꾸게 만든다.

 

잘 만든 드라마다. SBS드라마는 어지간하면 패쓰하는데. 그래서 이제서야 겨우 따라잡았다. 이번주부터는 본방으로 볼 수 있을까? 현빈의 연기는 탁월하고. 김사랑과 윤상현의 러브라인은 극적이고. 다만 역시 나이 먹어도 연기 안 되는 사람은 어쩔 수 없구나. 오스카의 어머니. 보톡스를 너무 심하게 맞은 것일까?

 

재미있다. 간만에 제대로 만든 드라마다. 인기있는 건 다 인기있는 이유가 있다. 인정한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