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유쾌하게 즐기면 그만인 드라마다. 그리고 실제로도 유쾌하다. 사실 아직도 고개가 갸웃거리기는 하지만 김태희는 충분히 타이틀롤로써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내고 있다. 얼마나 연기를 더 잘하는가? 하지만 그보다는 얼마나 캐릭터가 갖는 개성과 매력을 드러내는가? 그녀의 매력은 차고도 넘친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하나하나가 도저히 나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귀엽고 매력적이다. 대한제국황실복원이라는 판타지에 어울리는 과장되었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더불어 나름대로 진지한 캐릭터인 송승헌이 커플을 이루며 맛깔나는 장면들이 만들어진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장면들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를 보는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바로 이런 게 드라마다.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감독은 힌트를 주었다. 바로 이설의 펜션에서 벽을 스크린삼아 보여지던 영화의 장면들을 통해서. 하필 창의 덧문이 열리며 김태희가 오드리 햅번의 자리로 향한 것은 너무나 노골적인 미장센이다. 김태희가 오드리 햅번, 송승헌이 아마 그레고리 펙. "로마의 휴일" 나도 무척 좋아하는 영화다. 한때 내 이상형이 오드리 햅번이었는데. 지금도 눈썹 짙은 여자를 그래서 좋아한다. 김태희가 조금 닮았을까?
아마도 "로마의 휴일"에, "보디가드"에, 뭐 대충 버무려지며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 어차피 더 진지해질 필요도 없고, 진지해지지 않을 것이면 공주와의 로맨스가 적절하다. 송승헌은 그 로맨스물에 어울리는 약간은 까칠한 모든 것을 다 갖춘 남자다. 약간은 사랑에 허술한 푼수같은 부분이 있지만 그것은 김태희의 이설과 매우 어울리는 점일 테고. 그러나 결국은 스토리보다 텔링.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
아무튼 그저 생각없이 보이는 그대로를 즐길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어색하던 김태희의 연기도 과장된 이설의 캐릭터에 녹아들고, 이설과 송승헌의 미묘한 관계는 그 자체로 재미가 있고, 역시나 빠지 않는 3각관계 - 정확히는 4각일까? 로맨스가 있고 판타지가 있고 코미디가 있다. 판타지이지만 황실복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개연성을 갖추고, 어쩐지 코미디지만 시나리오도 제법 탄탄하다. 장르적인 전형성을 지키면서도 보편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는 감각이 있다. 어느 정도 예상이 되면서도 궁금함이 더해지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나름대로 상당한 수작이 아닐까. 소재의 독특함이나 스케일이라는 측면에서 가벼워 보일 수 있다는 약점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로서의 완성도는 상당한 편이다. 특히 마지막 이설과 오윤주와 박해영이 마주치는 장면에서, 이설이 갑작스런 배탈로 곤란한 처지에 놓이는 장면에서는 분명 코미디였지만 점차 긴장이 고조되며 잠시 박해영과 오윤주가 밖으로 나가면서 긴장이 이완되는가 싶은 순간 카운터펀치처럼 이설의 신발과 화장실로 달려가는 이설의 모습을 오윤주가 발견하는 장면은 백미라 할 만했다. 상당히 치밀하게 계산된 듯 조였더 풀었다 다시 터뜨리는 게 감탄이 절로 터저나왔다. 다음 주를 어떻게 기다리라고.
전반적으로 꽤나 감독이며 작가가 세심하게 고민한 흔적들이 보인다. 허술히 지나가는 장면이 없고. 때로 그것이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싶기까지 할 정도. 하기는 그 이상 들어갈 것도 없다. 보는 내가 굳이 말이 필요한가 싶게 깊이 빠져 재미있고 보고 나왔으니. 잘 만들었다. 그 말이 어울린다. 잘 만든 드라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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