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크릿가든 - 우아하신 문분홍여사!

까칠부 2011. 1. 9. 07:06

이제 한 회 남았구나. 마지막을 향해 치달아가는 어제 방송분량에서 유독 인상깊었던 것은 주원의 어머니 문분홍여사. 얼마나 매혹적인가.

 

길라임의 아버지 길익선이 아들 김주원을 살리려다 목숨을 잃은 것을 알면서도, 그래서 매해 잊지 않고 기일이면 그의 무덤을 찾아가면서도, 그러나 미안한 가운데서도 오히려 끝까지 길라임을 다그치는 모습이란.

 

"그 아이에게 상처가 없도록 잘 정리하기 바란다."

 

진심어린 눈물이 있기에 그 소름끼치도록 차가운 냉혹함은 더 빛을 발한다.

 

"그 아이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거야."

 

친아들임에도 끝내 져주기보다 차라리 그동안 주었던 것을 다시 빼앗으려는 그 단호함. 김주원의 편지에 진심으로 - 마치 소녀처럼 기뻐하는 모습이 있기에 그녀의 의지가 더욱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하기는 지킬 것이 많은 입장에서 한낱 혈육쯤이야. 가진 것이 많고 누리는 것도 많고 그런 만큼 지켜야 할 것도 많다. 그 가운데는 자기 자식보다 더 대단한 것도 있다. 아니 자기 자신보다도 더 중요하다. 은혜는 은혜이더라도 그 순간에조차 놓지 못할 만큼.

 

옛날 이야기에 신주단자를 구하려다 불에 타 죽은 며느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어리석음을 얼마나 비웃었던가. 그깟 나무쪼가리가 무어냐고. 하지만 그것이 가문이니까. 전통이니까.

 

양반으로서 누리는 권리란 그 양반으로서의 권위와 품위를 지키는 의무도 동반한다. 함부로 뛰어서도 안 되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서도 안 되고, 차라리 자식을 구하느니 전재산을 털어 가문의 뿌리인 조상의 신주를 돌려받아야 한다. 자식이야 노예가 되어 어디로 팔려가든. 평생 살을 맞대고 살던 아내를 스스로 내쫓고, 심지어 영조는 왕위를 위해 아들인 사도세자마저 죽였다.

 

유럽이라고 다를까. 에드워드 8세는 미국 출신의 미망인 심슨 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포기해야만 했다. 아무리 사랑이 그 사랑이 절절해도 영국 왕실에 어울리는 격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찰스 왕세자도 그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카밀라 파커 볼스와 정식으로 부부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논란들을 극복해야 했었다. 결혼 잘못해서 집안에서 쫓겨난 귀족의 이야기야 어디 한둘인가. 심지어 천박한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고 그 동생이 형수를 암살하고 마침내 형까지 독살해 버린 경우도 있다. 물론 형과 함께 가족묘에 묻혔던 형수는 이내 시체가 파헤쳐져 길거리에 내던져지고 있었다.

 

고귀한 혈통이니까. 그 고귀함을 지키자면 배우자를 선택하는데도 허투루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혈연으로서의 인정을 뛰어넘는 당위다. 집안을 지키고, 재산을 지키고, 그를 위해 결혼도, 자기 자신도 수단으로서 이용할 수 있다. 아들 김주원을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길라임같은 며느리를 들일 수는 없는 것처럼. 설사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서 그녀를 보고 할머니라 부른다고 그것이 용납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단호함 앞에 길라임은 마침내 꺾이고 만다.

 

멋지다. 어찌 보면 코믹캐릭터인데, 문분홍이라는 캐릭터가 든든히 뒤에서 받쳐줌으로써 왕자 김주원의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보다더 귀족적이고, 보다더 아집이 강한, 그렇기 때문에 왕자 김주원은 존재하고, 길라임이 사는 세계와 충돌한다. 그리고 길라임이 문분홍의 캐릭터와 충돌함으로써 김주원은 어느새 계급의 벽을 넘어 길라임에게로 다가온다. 많은 로맨스에서 쓰는 구도다. 또라이와 더 또라이가 있으면 또라이 쪽이 훨씬 정상적으로 보일 터이므로.

 

과연 신데렐라는 행복했겠는가. 라푼젤은 행복했을까? 그나마 신데렐라는 그래도 왕궁무도회에 초대받을 수 있는 신분의 아가씨였다. 하지만 라푼젤은 부모가 양배추를 훔친 댓가로 팔려간 처지였다. 그런 그녀가 왕자를 쫓아 - 왕자라기보다는 어딘가 영주의 아들이었겠지만 - 귀족가에서 제대로 적응해 살 수 있었을까. 결혼이야 어떻게 하겠지만 과연. 길라임은 과연 김주원과 결혼해서 행복했을까? 길라임이 김주원의 집안에 받아들여지든, 아니면 김주원이 길라임에게 가든.

 

물론 판타지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을 안다. 한 회 분량이 남았다. 아마 이대로 끝났다면, 혹은 10분을 남겨두고 있다면 이것은 비극으로 끝날 것이다. 그런데 무려 한 회 분량을 남겨두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판타지는 판타지로서 마무리되어야 한다. 김주원도 판타지고 길라임도 판타지다. 김주원은 현실의 왕자이고 길라임은 자신의 삶에 충실한 신데렐라고 캔디다. 그러고 보면 요즘의 신데렐라는 캔디의 모습을 띄고 있는 것 같다. 단순히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함으로써 구원자와 만난다. 그것은 신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캔디물은 치유물의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의 만남이 행복한 결말로만 끝이 날까. 끝내 함께 생활하면서 느끼는 서로간의 괴리는, 그리고 어느 쪽이든 느낄 수밖에 없는 열등감과 상실감은 그들을 끝내 회의케 할 것이다. 에드워드8세도 끝내 심슨 부인과의 결혼을 후회했다던가. 그리 세기의 사랑이라 회자되고 있음에도.

 

어쩌면 바로 이런 것이 현실이 아닐까. 아니 그것이 현실이기에 판타지는 극대화된다. 문분홍 여사가 물렁한 성격이었다면. 아들을 구하고 죽은 길익선의 딸이라는 이유로 길라임에게 온정적이 되었다면. 그런 식으로 좋게좋게 흘렀다면 판타지란 이렇게 극적으로 완성될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막장으로 그저 내지르기만 했다면 이건 진짜 판타지도 아닌 코미디가 되었을 것이다. 인간이 갖는 내면의 모순과 외연의 모순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는 순간에도 냉혹해지고, 사랑하면서도 더없이 냉철해지는 그런 이중성이야 말로 드라마의 판타지와 현실을 완성하고 있을 것이다. 김주원의 진심어린 눈물도, 마치 통곡과도 같은 웃음도, 체념어린 진정한 의지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극복해야 할 장애가 보다 명확할 때 희망은 간절해지고 판타지도 역시 간절해진다.

 

이렇게나 계급간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 드라마도 오랜만이라. 단순히 돈이 많고 돈이 적고가 아니라, 단순히 사회적 지위가 높고 지위가 낮고가 아니라, 그들이 사는 세계. 그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서. 그래서 더 판타지라는 것이겠지. 그래서 더 문분홍 여사에게 눈이 가는 것이고.

 

의외로 오스카와 윤슬의 사랑은 허술하게 끝날 것 같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는데 캐릭터가 갖는 매력에 비해 임아영의 비중은 너무 작다. 순간순간 그 철없으면서 사려깊은 앳띤 목소리가 얼마나 청량제같이 들렸었는지. 썬의 러브스토리는 이건 야오이가 아니니까. 뭔가 열심히 달려왔지만 갑작스레 마무리되는 듯한 숨이 딸리는 느낌? 바로 저기가 고지인데 힘이 딸려 치트키 쓰고 점프한 느낌이다. 도대체 그동안 지나쳐 온 것들이 얼마나 될까.

 

가끔은 - 아니 아주 자주 무척이나 참기 힘들게 오글거리기도 했지만, 그러나 다양한 이야기가 적절히 교차되며 텐션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지칠 때 쯤 이야기가 전환되고, 적절히 긴장을 풀어주다 지루할 때 쯤 다시 조여주고. 다만 후반 들어 그런 힘이 떨어져가는 것이 드라마 자체가 지쳐버린 것은 아닐까.

 

어째서 그리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며 화제가 되고 있는가. 유인나의 귀여운 모습에 호기심이 동해 보았지만, 역시 인기가 있다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잘 만들었고. 완벽하게 내 취향이라 하기는 힘들지만 보기드문 수작이라 생각한다. 대사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 그것을 구성하는 연출까지. 배우들의 연기도. 리얼리티와 판타지를 조화시키는 그 역량도.

 

정말 재미있었다. 마지막 한 회 남았는데 부디 지금 이대로 힘을 빼지 말고 제대로 마무리짓기를. 화룡점정이지만 용두사미이기도 하다. 눈을 찍을 것인가. 꼬리를 그릴 것인가. 바로 오늘. 과연... 좋다. 무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