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아무리 대통령이 뒤를 봐주고 있다고 한 나라의 총리씩이나 한 사람이다. 더구나 대선후볼로써 대권에 도전하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다. 권력욕이든 아니면 신념에 의한 것이든 - 아니 오히려 신념에 의한 것이기에 더욱 절실하며 단호할 수 있다.
원래 정의로운 자가 단호해지면 더 단호해진다. 잔인해지면 더 잔인해진다. 비열해져도 더 비열해진다. 자신의 정의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그것은 정의로운 것이 아니다. 최소한 정치에서는 그렇다. 자기가 정한 최소한의 선마저 양보할 때 정치란 의미가 없어진다. 그때부터 꾼이 된다.
"장일준은 이 나라와 당을 위해서 사라져야 할 인물이다!"
그 최소한의 룰을 저버렸을 때 김경모는 누구보다 장일준에 단호해진다. 누구보다 장일준에 관대했던 김경모였다. 누구보다 장일준에 우호적이었던 김경모였다. 단호했지만 장일준을 높이 보아 많은 양보도 해주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을 장일준은 저버렸다. 그것마저 용납했을 때 김경모의 정의는 가치를 잃는다. 정의가 아닌 것과 타협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정의가 아니다.
선하기에 단호하다. 정의롭기에 비열하다. 당당하기에 잔인하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과격한 수단을 쓸 수 있었는지 모른다. 참모인 백찬기마저 주저하는 일을, 닳고 닳은 고상열조차 혀를 차는 행동을, 대통령조차 그렇게까지는 생각지 않았다. 그것이 정의로운 권력이 위험한 이유겠지만.
차라리 닳고 닳아서 적당히 타협할 줄 안다면. 바로 그것이 정치다. 타협. 협상. 양보. 탐욕. 그래서 사실 이번 회차를 보면서 김경모에게서 공포마저 느꼈다. 그는 정치가가 아니다. 정치가에게는 절대적인 악도 절대적인 선도 있어서는 안 된다. 타협해서는 안 되는 선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배제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확고한 정의에 권력이 주어졌을 때 어떠한 결과가 돌아왔는가는 역사를 통해 모두가 알고 있다. 보다 복잡하고 거대한 국가단위의 사회에서 한 개인의 확신은 자칫 다양성을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하나의 멋일 테니까. 신념을 위해 자기가 가장 꺼려하는 악조차 끌어안을 수 있다. 순백한 자신의 손을 악으로 물들일 수 있다. 그런 당당함. 자신감. 무엇보다 굳은 신념. 위험하지만 또한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 이끌린다. 나쁜 남자에 이끌리는 건 비단 세상물정 모르는 여자들만은 아닌 것이다. 악은 그렇게 달콤하고 향기롭다. 더구나 그 사람좋은 점잖은 웃음 이면에 도사린 이런 섬뜩함이란. 뭐든 의외성이 있을 때 사람들은 더 이끌린다. 다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이 장일준에 비해 불리한 점이랄까.
오히려 순진하기는 박을섭이다. 하는 게 참 한심하기 이를 데 없지만 고상열이 말하는 낭만이 있던 시절의 허술함이 그에게는 있다. 사고를 쳐봐야 작게 개인적인 치부나 하겠지 큰 건 칠 위인이 못된다. 그에 비하면 김경모는 쳐도 절망적으로 치겠지. 그가 반드시 이것을 해야겠다, 혹은 해서는 안 되겠다 판단내렸을 때. 장일준은 그 중간이랄까? 하지만 이 아저씨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결과를 위해서 얼마든지 중간에 희새할 수 있음을 뜻하므로. 참 이런 위험한 정치인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우리 사회가 정체되었고 변화를 목말라 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하겠다. 결국 이런 캐릭터들을 등장시킨 자체가 어떤 정치에 대한 무의식의 반영일 테니.
이번 회차는 그야말로 김경모를 위한 회차였다. 대통령과도 부담이 되니 적당히 선을 긋고, 그러나 조직이라는 도움은 받아들이고, 장일준에 대해서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강력한 한 방을. 그런 가운데조차 여전히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그런 섬뜩함에서. 제대로 정치인인데. 다만 그것이 신념에 의해서가 아닌 권력욕에 의한 것이었다면 더 나았을지 모르겠다. 하긴 그래서 장일준이 주인공인가?
어쨌거나 앞으로 갈수록 개싸움이 펼쳐질 것 같은데. 음모와 모략과 야합과 술책들이. 진흙탕 속에서 서로 핏물을 뒤집어써가며 권력을 위해 달려가는 모습이 얼마나 매혹적으로 그려질까. 더불어 그런 가운데 국민의 시선을 끌기 위해 공약을 개발하고 정책을 구상하는 장면도 적극적으로 집어넣었으면 좋겠다. 단지 더러운 것만이 아닌 그 더러움이 우리가 아는 정치를 만드는 것이다. 더러움 속에 정치는 꽃핀다.
재미있다. 역시 사람은 이런 악의에 이끌리는 모양이다. 사람냄새 나는 탐욕과 이기에. 김경모도 마침내 땅으로 내려와 진흙탕을 뒤집어쓰기로 했으니. 다음에는 신희주가 또 어떤 모습을 보일까. 박을섭도. 야당은? 기다려 볼 정도는 아니지만 매번 눈을 떼지 못한다. 최고다. 최고의 정치드라마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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