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매트릭스의 경계인 어느 지하철역에서 만난 샤티의 아버지 라마 카디스는 사랑과 운명에 대해 묻는 네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그건 단지 단어에 불과하다."
로고스란 곧 질서다. 로고스는 언어다. 그리고 이성이며 합리이고 질서다.
데미우르고스는 신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데미우르고스가 창조한 것이다. 하지만 데미우르고스는 불완전한 신이다. 천사 소피아가 지고신의 창조를 흉내내려다가 실수로 태어난 것이 바로 데미우르고스라는 불완전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지고신이라 여겼기에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이었다.
불완전한 신 데미우르고스가 창조한 세계 역시 따라서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그래서 불완전한 세계에서 모든 모순과 부조리를 겪으며 고통에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데미우르고스가 만든 세계이기에 인간은 그것이 모순인지 부조리인지조차 모른 채 수용하며 살아가야 했었다. 천사 소피아는 그것이 가여웠다. 그것은 그의 죄이기도 했다.
그래서 소피아는 이 가엾은 인간들을 위해 자신의 종들을 내려보냈다. 진정한 지고신의 뜻을 인간들에 전하기 위해. 그 비밀스럽고 완전한 지식은 선택된 이들에게 전해졌고, 그들을 이 부조리한 세계로부터 구원할 것이었다. 그들을 선지자, 혹은 메시아라 불렀다.
데미우르고스는 플라톤 철학에서 말하는 이 우주를 관장하는 질서 - 즉 이데아다. 소피아는 필로소피아 - 철학이며 이성이다. 이성은 신성을 흉내내려 하고 이성이 신성을 흉내내려 하며 그 과정에서 잘못된 질서가 만들어진다. 간단히 근대적인 이성이 만들어낸 파시즘의 광기를 떠올려 보면 되겠다. 과거의 학살이 철저히 충동적인 광기에 의해 저질러졌다면 파시즘의 학살은 이성적인 고민과 계산과 계획 아래 저질러졌다.
로고스는 또한 바로 그 질서다. 언어는 모든 것을 정의한다. 언어에 의해 정의되어 이 세계는 존재한다. 국화라 하기 전에는 국화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성에라 하기 전까지 성에란 없는 것이다. 노란색은 노란색이어야 하며 파란색이 될 수 없다. 노란색이라 했다면 노란색으로 보이고 노란색으로 사고되며 노란색으로 소통된다. 파란색은 파란색일 뿐이다.
선하고, 도덕적이고, 정의롭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이고, 그 모든 것도 언어로써 정의된다. 훌륭하고 뛰어나고 열등하고 비열하고 하찮은 모든 것들 역시 언어로써 정의된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인지와 인식 사고를 지배한다. 인간의 소통을 지배하며 인간의 세계를 역시 정의한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에 의해 정의된 그같은 질서가 얼마나 적확하겠는가.
더구나 인간의 사회화는 그 이상의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강제한다. 노란색이 파란색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기린이 코끼리가 되어서도 안 된다. 하늘은 하늘이어야 하고 땅은 땅이어야 한다. 누군가 부추라 하고 누군가는 정구지라 하고, 누군가는 우유라 하고 누군가는 규뉴라 하고. 그것은 다른 세계다. 인지될수도 인식될수도 없는 다른 세계라 보아야 한다. 인간의 사고는 그렇게 철저히 언어에 의해 만들어진 질서 안에 갇힌 채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세계가 확장된 지금도 오히려 더 많은 다양한 정의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과 판단을 정의하며 구속한다.
당장에 어떤 생각을 하려 해도 대개는 그 언어로써 생각할 수밖에 없다. 노란 색을 떠올리면 색으로서 노란색과 더불어 "노랗다"고 하는 언어가 떠오른다. "노랗다"라는 단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노란색에 이를 수 없다. 다만 과연 인간의 언어란 얼마나 많은 이 세계의 것들을 담아내고 있는가. 얼마나 정확하게 사전 속의 개념들을 정의하고 있는가.
언어란 인간이 표현하는 수단의 일부에 불과하다. 인간의 인지며 사고 역시 이 우주에 비하면 하찮은 일부에 불과하다. 인간은 무지하며 불완전하다. 그런 인간이 만들어낸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판단마저 구속한다. 인간의 존재마저 정의하며 강제한다. 모순은 거기에서부터 이미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그렇게 닫힌 세계에서 자기가 갇혀 있는 줄도 모른 채 제한된 정의만을 그것이 전부라 여기며 살아간다.
하필이면 컴퓨터라는 것이다. 컴퓨터야 말로 로고스 그 자체다. 0과 1이라는 숫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논리구조야 말로 어쩌면 가장 완벽한 이성이다. 하지만 그 이성마저 데이터를 가지고 속일 수 있다. 스미스가 그런 존재다. 잘못된 정보과 연산의 오류가 더해지면 그 완벽한 논리 안에서도 스미스라는 괴물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컴퓨터가 만드는 매트릭스를 파괴할 수도 있는 바이러스다.
모순이 모순인지도 모르는 인간. 질서는 모순마저도 합리라 받아들이라 강요한다. 부조리마저도 정당함으로 여기도록 만든다. 그렇게 하라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그러나 누군가는 그러한 모순과 부조리를 인식하고 그것을 부수려 들었으니 흔히 그들을 지혜를 전하는 사람 - 선지자라 불렀다. 소크라테스, 공자, 붓다, 마호메트, 간디, 데카트르, 짜라투스트라...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무엇이 문제인가.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를 떠돌며 아테네 청년들에게 묻고 다녔다. 물으며 그들이 믿고 있는 바를 철저히 부수었다. 무지를 깨닫게 하고자. 무지를 깨닫고 그 위에 지혜를 쌓는다. 선종은 아예 언어 자체를 부정한다. 언어로써 전할 수 없는 무언가의 존재를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또한 언어에 지배되는 존재라. 의심하고 또 의심했더니 의심하는 나 자신만이 남더라. 장자는 그 자신마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하긴 그러고 보니 매트릭스란 장자지몽에서 힌트를 따왔다고 했었다.
지금도 언어는 넘친다. 아니 오히려 발달한 미디어로 인해 언어가 쏟아진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익숙해지기도 전에 새로운 언어가 세계를, 삶을, 존재를 정의한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언어는 생각할 여지마저 빼앗아 버린 채 인간의 일상을 정의하고 지배한다. 마치 파도처럼 밀려드는 센티넬처럼 언어의 홍수 속에 인간이란 단지 떠내려갈 뿐이다. 개인적인 판단이나 사고란 없이.
인터넷이란 그렇다. 어느샌가 누군가 내뱉은 말이 언어로써 사물과 사실을 정의하고, 그것이 다시 사람들의 사고와 판단을 정의하고, 사람들의 행동을 내몬다. 의심조차 없이 쏟아지는 언어 속에 휩쓸리듯 그리로 내몰리며 그것을 정의라 여긴다. 단순한 텍스트라고 넘쳐나는 언어 속에 자기 생각을 지키고 판단을 지킨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 사고와 판단조차 언어에 의한 것이고 보면. 텍스트로 이루어진 공간이기에 언어로 이루어진 사고는 더욱 강력히 지배당한다. 거대한 파도처럼 언어는 인간을 - 개인을 덮어버린다.
어쩌면 장자의 꿈이란 것도 언어가 만드는 꿈인지 모른다. 사람인가? 나비인가? 언어로써 정의하려 하지 않을 때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묻는다. 그리고 장자지몽이라는 말로 확정한다. 매트릭스란 - 바로 컴퓨터가 만드는 논리의 구조다. 그리고 자기를 둘러싸고 억압하며 강제하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순수한 분노는 그것을 일깨운다. 모순을 모순인 채로 받아들이려는 사람들과 끝내 그것을 저항해 싸우는 사람들. 누군가는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세계의 틀은 깨어지고 인간은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 보았을 때는 장자의 꿈인가? 두 번 째 보았을 때는 브라만의 꿈인가? 그리고 다시 보았을 때는 이것은 언어에 대한것인가? 문득 3편에서 나온 그 한 마디의 대사가. 그렇게 보고 나니 모든 것이 그렇게 흘러간다. 인간은 언어의 매트릭스 안에 갇혀 살며 지금도 언어의 매트릭스에 지배당한다. 센티넬에 대항하는 인간들처럼 누군가는 그 매트릭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고 저항하고 있고. 다만 선지자란 조채도 다시 하나의 언어를 더하는 존재일 뿐. 그러나 그 매트릭스의 모순을 일깨울 수 있을 때.
그래서인가? 상당히 종교적이다. 고난을 당하여 눈을 잃고, 사랑하는 이마저 떠나보내고, 그러나 오히려 그 순간 각성하여 다른 인간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매트릭스 그 자체와 맞서 싸운다. 마침내 스미스에게 동화되었다가 깨어나는 순간은 부활을 의미할 것이다. 문득 붉은 빛으로 보이는 천사의 날개와 십자가의 매달린 예수의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네오 역시. 어쩔 수 없이 기독교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영화일 테니.
좋은 영화는 두 번 보았을 때 안다. 세 번 보면 더 느낌이 새롭다. 우연찮게 중고DVD를 발견해 주워온 것인데. 다시 보면 또 어떤 느낌일까? 기대하며 볼 수 있는 영화란 얼마나 행복한가. 즐겁다.
덧, 역시 즉흥적으로 쓰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다. 그렇다고 각잡고 쓰자니 생기는 게 없고. 어쨌거나 여기는 이것으로 끝내고 다른 데서 이걸 초고삼아 써봐야겠다. 간만에 흥미로운 주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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