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뜬금없는 대박이었다. 누가 예상한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허술하게 시작한 합창편이 이렇게 대박을 치리라고. 나 역시 처음 합창편 시작할 때 이게 뭔가 했었다. 합창이라는 주제는 좋지만 너무 연예인이 많지 않은가. 이래서야 무슨 감동이 있을까.
하지만 합창편이 진행되는 내내 남자의 자격은 한 주에 가장 핫한 예능 가운데 하나였고 동시간대에 감히 견줄 존재가 없는 독보적인 코너로써 자리를 굳히고 있었다. 오죽하면 런닝맨이 시작한지 얼마난에 이대로 끝나네 마네 하고 있었을까. 그렇게 유재석마저 고전하게 만든 합창편이었으니.
힘이 들어갈 만하다. 이렇게 크게 한 번 빵 하고 터뜨려서. 하긴 KBS 안에서는 그에 대한 미련이 적지 않은 듯하다. 자꾸 합창편 시즌2를 만들 거라며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러나 마치 그런 건 우리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우연찮게 이끌려 보기 시작한 사람들을 실망케하는 그런 느슨한 모습들이란.
어제만 해도 그렇다. 그게 뭔가? 툇마루에 나란히 모여 앉아 한 마디도 없이. 그냥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만이 오갈 뿐 예능이라 할만한 것이 없었다. 어떤 힘든 과제도 없었고, 뭐라도 재미있는 게임도 없었고, 그냥 모여서 노닥노닥. 낮잠도 자고, 설거지도 하고, 아내와 뽀뽀도 하고, 수다도 떨고...
굳이 감동이라는 코드에 집착하지 않는다. 아니 아예 염두에조차 없었던 듯하다. 남녀간의 소개팅에 무슨 감동이 있을까. 남자와 여자가 서로 소개받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혹은 하는 일 없이 카메라 하나 던져주고는 가서 사진이나 찍어오라. 초심으로 돌아가기도 시청자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제작진 자신을 위한 미션이었을 것이다. 그냥 우리는 이런 것을 한다. 그러니 볼 사람은 보라.
가끔 주위의 칭찬에 자기를 잃고 휩쓸리다 좌초해버리는 예능을 보고 하는 터라. 당장 꽃다발만 해도 지금 뭐하는 프로그램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청춘불패도, 아마 영웅호걸도 보아하니 그렇게 되기 쉽지 않을까. 천하무적야구단도 오빠밴드도 기대와는 달리 중간에 방향을 잃고 헤매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남자의 자격이 합창편의 성공에 고무되어 그렇게 크게크게만 가려 했다면 과연...?
하기는 그런 욕심이 있는 PD라면 그렇게 욕먹어가며 연습과정 하나하나, 대회에 출전하기까지의 작은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하지도 않았겠지. 사람들은 결과만을 원하니까. 그러나 PD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 가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합창단원 모두의 모습이었다. 더 대단한 무언가보다는 하찮더라도 그런 작지만 소중한 모습들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것에 나는 또 감동했던 것이었다.
참 시답잖고. 참 시시껍절하고. 하찮고. 게으르고. 열심히 뛰고 구르는 다른 예능에 비하면 얼마나 널럴한가. 귀농이라고 가서 하는 것이라고는 국수 삶아 먹고, 떡 먹고, 아랫목에서 누워 잠들고. 아, 일 하나 했다. 장독 묻기. 그러나 바로 그런 것이 남자의 자격만의 색깔이라. 뭐라도 해야겠다 힘이 들어가 있지 않으니 보는 나도 힘을 빼고 편하게 웃는다. 그냥 새어나온다. 그런 슬금슬금 새어나오는 웃음이야 말로 원래 남자의 자격의 웃음이었을 터였다. 마치 물빠진 청바지처럼 바랜 편안한 그런 웃음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변했다고 한다. 합창편의 성공 이후 너무 감동코드로 간다고. 하지만 원래부터 이랬다. 남자의 자격은 원래부터 그랬다. 처음부터. 비겁하고 나약하고 게으르고 한심한 남자들의 날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던. 그래서 어느새 그들의 모습에 공감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것이 때로 감동이 되었었고. 하지만 그 실체는 아무데서고 찾아볼 수 있는 중년의 남자들. 혹은 중년을 앞둔 남자들. 그래서 처음부터도 웃음이 부족하다 항상 비판을 듣고 했었지. 게임을 하라. 더 독하게 하라. 하지만 항상 그대로였다. 항상 남자의 자격 그대로였다.
내가 남자의 자격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전에도 말했지만 남자의 자격은 나의 이야기다. 보통의 남자들이 항상 꿈꾸던 것들. 항상 생각하던 것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그렇다고 나와 다른 것이 아닌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반응들. 방송이라면 귀농한다는데 좋아하는 척은 해주어야겠지.
"그런 걸 왜 해?"
그러면서도 어느샌가 귀농생활을 즐기게 되어 버리는 그런 모습들같이. 예능귀신인 이경규마저 그 넉넉함에 취해 예능을 잊어버리는 그런 모습들처럼. 굳이 예능을 하려 하지 않는 예능.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리얼버라이어티가 아닐까. 그것이 웃기지 않음에도 어느새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뚝심을 가지고 이제까지 초지일관 그 시청율의 위기상황에서도 버텨온 신원호PD일 것이고.
그리고 더해서 가끔 보면 제작진의 목소리나 모습이 너무 자주 나온다고 뭐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미 그 제작진들까지도 남자의 자격의 한 부분이 된 지 오래다. 당장 미녀작가 김작가만 해도 캐릭터가 있지 않은가. 러브라인까지 있다. 남자의 자격 외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김태원과 양말을 가지고 아웅다웅하던 작가인가 VJ인가 모르겠는 여성은. 가끔 방송을 보다 보면 들리는 "경규 오빠"도. 이경규만 나타나면 여자 작가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둘로 좍 갈라진다던게 불과 얼마전 같은데.
그런 것까지 포함해 좋아하는 것이다. 어쩐지 방송인데 방송 냄새가 나지 않는다. 예능이지만 예능 냄새가 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실제 그들의 일상을 보는 것처럼. 방송이고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음에도 끝내 돌아가 아내에게 뽀뽀를 하고 돌아서는 김태원처럼. 그것을 괜히 충동질하는 VJ처럼. 좋지 않은가.
항상 감탄하는 바다. 그리고 고마워하는 바다. 신원호PD - 아니 이하 모든 작가, 카메라감독, 음향감독, VJ 제작진 모두에 대해서. 그들은 충분히 감사와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일주일에 단 한 시간이지만 나를 이토록 행복하게 해 주므로. 그들은 최고다, 남자의 자격처럼. 사랑한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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