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트로트? 가요! - 한국형 스탠다드에 대해...

까칠부 2011. 1. 12. 07:31

작년 연말 하춘화씨가 "놀러와"에 출연해서 이런 말을 한 바 있었다.

 

"트로트라 하니 어색하다. 가요의 여러 장르 가운데 트로트가 있는 것인데 트로트 가수라 하니 그것만 해야 하는 것 같이 되어 버렸다. 전통가요 가수라 불러줬으면 좋겠다."

 

유현상도 비슷한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 노래는 트로트가 아니라 미디움 템포다."

 

과거 트로트 부르던 시절에 대해서도,

 

"예전 가요를 할 때..."

 

하기는 말이 트로트이지 그 스펙트럼이 상당하다. 록이라 이름 붙이면 록이 되듯 트로트라 이름 붙이면 트로트가 된다. 그 안에 다양한 리듬과 멜로디와 비트가 존재하지만 어찌되었든간에 트로트. 최희준의 "맨발의 청춘"도 사실 스탠다드에 가까운데 트로트로 분류되어 있다. 노래방 가면 놀라는 게 꽤 된다.

 

더구나 트로트라는 게 이미지가 고정화되어 있어서. 누군가 트로트가 어느새 정체되어 있지 않은가 말한 적 있는데, 그게 트로트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트로트라는 이미지가 있다. 어쩌면 그래서 유현상도 트로트가 아닌 미디움 템포라 했던 것인지도. 트로트라 할 때의 그 정형화된 멜로디나 리듬과는 차별화되었으니까. 예전 트로트 - 전통가요는 보다 폭넓고 다양했거든. 사실 트로트라는 생각도 그다지 없었고. 그냥 가요를 한다.

 

그래서 문득 생각한 것이다. 어쩌면 유현상이 말한 저 말이 정답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한국 대중음악에서 트로트가 갖는 위치가 상당하다. 한때 대중음악이라 하면 트로트와 트로트 이외로 나뉘었었다. 트로트 이외의 음악에 대해서도 트로트 특유의 멜로디나 리듬, 코드, 혹은 창법이 인용되어 쓰이고 있었고. 그만큼 한국인들이 좋아하고 친숙한 멜로디고 리듬일 테니까. 이른바 뽕기라 부르는 것이다. 일단 대중적으로 히트한 노래에는 그런 것이 다 있다고 보면 된다.

 

원래 사람들이 "팝스럽다"할 때의 팝이 미국의 "스탠다드 팝"이다. 미국의 전통적인 컨트리와 흑인음악인 재즈를 베이스로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받아들여 성립된 그야말로 미국 팝의 스탠다드다. 미국의 여러 장르들이 이 스탠다드의 영향을 받았고, 역시 여러 장르들이 스탠다드에 영향을 주었다. R&B가 대세가 되고서도 R&B가 스탠다드화되고, 스탠다드가 R&B화되는 등 한 마디로 미국 대중음악의 뿌리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트로트라 정의하는 어떤 스타일이 그런 스탠다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시작이야 미국의 폭스트로트 리듬에서 시작했다. 여기에 일본의 전통음악이 덧씌워지고, 그것이 우리나라 들어오면서 전통 민용의 가락과 멜로디, 창법이 더해지고, 스탠다드가 들어오면 스탠다드에, 블루스가 들어오면 블루스에, 남진은 어울리지 않게 엘비스 프레슬리를 오마주했었고, "아리조나 카우보이"같은 웨스턴 풍의 노래도 있었다. 70년대 말부터는 록과 고고리듬을 트로트 안에 받아들였고. 하기는 이박사의 음악은 상당히 독특한 것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말했던 것처럼 트로트만의 고유한 전통적인 특징들이 대중음악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었다. 그야말로 한국의 스탠다드라 해도 과언이 아는 폭과 깊이를 갖고 있는 것이다.

 

스탠다드 팝을 그냥 팝이라고도 하니 이런 전통적인 대중가요 양식에 대해서도 그냥 가요라 해도 좋지 않을까. 어떤 것들은 트로트라 하기에는 장르적으로 엄밀하게 구분짓기에 애매한 경우임에도 트로트라 정의하는 경우마저 보이고 해서. 어쩌면 그것이 최근 트로트라 나오는 노래들이 누가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정형화되어 나오는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화석화, 박제화라랄까? 트로트라 하고 전통가요라 하는 순간 대중음악으로서의 생명령을 잃고 정형화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전통가요도 좋지만 전통가요라는 자체가 낡은 느낌이므로 그냥 가요. 사실 가요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이 가요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에 가장 가까운 장르가 트로트인 때문이다. 가요란 자체가 성악이다. 악기 없이도 부를 수 있고 즐거울 수 있는 노래가 바로 가요다. 트로트라 불리우는 전통가요가 상당히 기교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도 그래서다. 지난주 오늘은 즐겨라에서도 굳이 반주 없이 트로트 오디션을 본 것도 그래서. 노래를 부르는 자신이 자기 목소리를 악기삼아 그 자체로써 음악을 연주하고 들려주어야 한다. 가요의 요는 곧 가사. 그 중심은 역시 가사전달일 것이고. 그에 비하면 이후 도입된 장르들은 사운드가 보다 주요시되니. 따로 대중음악이라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든 생각이다. 예전 유현상의 인터뷰를 들으며 조금 고개를 끄덕였는데, 새삼 하춘화의 출연분을 보고 있자니 이것도 옳겠구나 싶어서. 꺾기가 아닌 넘기기, 혹은 굴리기다. 단지 재주를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사를, 그리고 멜로디를 얼마나 맛깔나게 전달하느냐. 목소리 자체를 악기삼아 들려주는 연주인 셈이다. 트로트라는 장르라기보다는 대중가요이고, 노래일 테고. 괜찮지 않을까?

 

확실히 예전에는 진짜 트로트 듣는 재미가 있었는데. 내가 80년대 이전의 트로트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것일 것이다. 그 다양한 멜로디와 리듬과 창법들. 장르를 특정할 수 없는 다양한 개성과 시도들이. 때로는 요즘 세대에 의해 그것이 희화화되기도 하지만. 재미있지 않은가.

 

하긴 그래도 사람들의 이해를 구하자면 트로트라 해야 편하겠지. 가요라 하면 트로트를 떠올리겠는가? 그나마 전통가요는 다르겠지만. 언제고 트로트에 대해 정리해 보고도 싶지만. 관심이 많다.

 

아무튼 지난 놀러와를 보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어떨까는. 그런 게 블로그하는 맛이다. 부담이 없잖은가? 뭔 소리를 해도. 이런 소리도 있겠거니. 그런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