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유재석과 강호동이 한 프로그램에서 MC로서 진행을 하게 된다고 생각해 보라. 유재석과 강호동은 유강이라는 말 그대로 MC로서의 진행스타일이 상당히 다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맞춰야 할까?
서브와 메인의 차이다. 서브급은 자기 롤이 있어도 결국 다른 메인이 있다면 그에 맞춰가지 않으면 안 된다. 반면 메인은 그 자체가 브랜드이기 때문에 자신의 롤을 포기할 수 없다. 차라리 안 하고 만다. 과연 유재석이나 강호동이나 어느 한 쪽이 자기의 스타일을 죽이고 상대의 스타일에 맞춰 방송을 할 수 있겠는가?
김학래의 말마따나 심형래나 김형곤이나 최양락이나 서로 개성이 너무나 다른 개그맨이었다. 차라리 전유성이나 임하룡은 그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김정식, 장두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다 세 사람 모두 확실한 웃음을 갖고 있던 말 그대로 에이스들이라. 과연 최양락이 김형곤에 맞춰 시사개그를 할까? 김형곤이 심형래에 맞춰 슬랩스틱을 할까? 그런 게 재미있을까? 일류만 모아놓고 망하는 경우가 이런 경우일 것이다.
엄용수의 말처럼 자기만의 롤이 있기에 갖는 신경전이다. 내가 메인이다. 내가 돋보여야겠다. 어쩔 수 없다. 콩트 하나가 10분이 채 안 된다. 그 안에서 재미를 만들자면 이야기를 몰아주어야 한다. 여기저기 흩어놔봐야 짧은 시간동안 산만할 뿐이다. 짧은 시간동안 집중적으로 웃음을 기대하게 하고 기대한 웃음을 주어야 한다. 지금의 개그콘서트도 그러고 있다. 물론 예능도 마찬가지다. 메인이 있고 서브가 있고 서브는 메인을 서포트한다. 재미를 위해서. 그리고 일류라면 그에 따른 자존심이라는 게 중요하겠지.
그래서 이경규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일류라 할만한 MC 가운데서 게스트로도 서브로도 전방위로 활약 가능한 것이 현재로서는 거의 이경규가 유일하다. 김제동은 메인으로는 부족하고, 김구라도 사실 메인급은 아니다. 김구라는 꽤 애매한 게 공중파로 한정했을 때 그는 메인급도 서브급도 아니다. 대신 케이블로 가면 메인급으로서 상당한 롤을 가지고 있지만. 신동엽도 누구 서브로 세울 급은 아니고. 그런데 이경규는 자기가 메인이면 메인인대로, 서브면 서브인대로 그때그때 맞춰갈 줄 안다. 아마 그동안 침체기를 겪으며 스스로도 여러가지로 많은 변화를 격은 듯. 노장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그제 이경규가 승승장구서 한 말도 이 연장이라 할 텐데,
"같이 MC석에 있다고 다 동급으로 보이죠?"
승승장구와 안녕하세요 모두가 갖고 있는 문제. 밤이면 밤마다를 보면서 느끼던 위화감. 메인의 롤이 너무 미약하다. 신동엽은 분명 일류MC지만 컬투와 이영자가 자꾸 그 영역을 넘보려 들며 안녕하세요는 MC들끼리 떠들다 끝나는 산만함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확실히 컬투나 이영자나 신동엽이 컨트롤하기에는 - 이영자 하나라면 모르겠는데 컬투에 이수근에. 너무 많다. 밤이면 밤마다에서도 탁재훈의 롤이 있으면 그에 나머지가 맞춰가야 할 텐데 전혀 그럴 조짐이 보이지 않고. 어디에 갖다놔도 제 역할을 하던 임하룡이나 김학래 같은 유능한 서브가 없다는 게 문제다. 결국 그런 게 팀웤이라 할 텐데.
유강이 강하다는 것도 그런 뜻일 게다. 아니 유라인이네 강라인이네 하며 라인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각자가 갖고 있는 롤을 확고하게 관철하자면 그에 맞는 파트너가 필요할 테니까. 확고하게 롤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장악함으로써 그들의 역량이 프로그램 안에서 발휘되는 것이다.
하필이면 승승장구를 보고 다음날 "라디오스타"를 보는 바람에. 문득 그 대사가 귀에 들어왔다. 나머지도 재미있었지만, 사실 그냥 재미있고 마는 것이지 무슨 코멘트라 필요한가? 재미있으면 재미있는 것이다. 우스우면 우스운 것이고. 적당히 심형래의 바보캐릭터를 가지고 치고받고 하는 엄용수의 감각은 라디오스타와도 잘 어울렸다. 다만 급수가 너무 높다는 게 문제일 테지. 서브로 쓰기에는 너무나 대선배이고, 그렇다고 메인으로 쓰기에는 스스로 롤을 주도할 정도는 아니고. 아마 다른 예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양락도 그런 부분 때문에 결국 MC자리에서 모두 물러났다.
아무튼 간만에 세 사람의 개그맨들로부터 여러 그립기도 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 보니. 김학래는 확실히 감이 많이 녹슬었고, 오히려 엄용수는 토크에서 빛을 발하고, 심형래는 그를 위한 샌드백이 되어 주었다. 그의 어눌함이 엄용수와 있음으로써 더 큰 웃음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
어쨌거나 김희철이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은 알겠는데 라디오스타만의 MC사이에 치고받던 MC사이에서 생산되던 이야기들이 사라지지 않았는가. 게스트에 눌린 탓일까? 그저 게스트 일변도다. 이런 건 라디오스타가 아니다. 그냥 들어주는 라디오스타라니. 김희철의 더 큰 분발이 필요하겠다. 나름 좋은 말도 있고 웃음도 있었지만 그저 게스트가 하는 말을 들어주고 하는 것은 라디오스타가 아니다.
이제까지 해 온 그대로다. 누가 메인인가? 누가 롤인가? 그동안 잘 해 오지 않았던가? 중심을 잡고 서로 치고 받으며 MC자신들만으로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생산해 오던 점에서. 메인이 있으면 서브가 있고, 서브가 있으면 메인이 있고. 다음주를 기대해 본다. 역시 게스트 때문이겠지. 어렵다. 상당히 난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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