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더럽다. 고금동서의 진리다. 과연 착하고 깨끗하기만 한 사람이 정치라는 걸 할 수 있을까? 결국 정치란 상대를 이기고자 하는 것인다. 모두가 권력을 바란다면 바로 나, 혹은 우리가 그 권력을 독차지하자는 것일 텐데. 김경모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적진에서 매수하여 배신자를 만들고, 그렇게 얻은 정보로써 김경모와 백찬기가 대상을 나눈다. 김경모는 깔끔하게 진실을 알림으로써 신희주를 장일준에게서 떼어놓고, 백찬기는 자신의 성향대로 박을섭을 찾아가 새로운 음모의 씨앗을 뿌리고. 차라리 신희주란 얼마나 명쾌한가 말이다. 한 점의 부정도 용납지 않는. 그래서 느겨는 승리자가 되지 못하겠지. 박슬섭같이 탐욕스럽기만 해서도 승자가 되지는 못한다.
소리장도. 후흑이라고 한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칼을 간다. 웃는 가면을 쓴 뒤로 상대에게 먹일 독을 준비한다. 김경모는 그게 되고 장일준도 그것이 가능하다. 김경모이 깨끗한 얼굴 뒤에는 정치가로서의 치밀함과 단호함, 독함이 숨어 있다. 괜히 백찬기가 그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아니 김경모가 백찬기의 존재를 용납하는 자체가 백찬기의 더러움을 용인하기 때문이다.
설마 일이 그렇게 터질 줄이야. 백찬기의 비열하지만 한참 멀리 앞을 내다보는 수가 정말 절묘하다. 김경모라면 그렇게 못 한다. 신희주라도 안 된다. 장인영의 생모를 이용해서 일을 꾸미자면 박을섭이 적당하다. 박을섭이라면 작은 꼬투리로도 일을 더 크게 키울 수 있다. 박을섭의 방식대로라면 장인영의 생모는 사실이든 아니든 장일준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패로 작용할 수 있다. 대중은 이유를 보지 않으니까. 논리를 따지지 않는다. 단지 주어진 사실과 결론지어진 믿음만을 쫓을 뿐이다. 한 번 생겨난 의혹은 그래서 죽을 때까지 따라간다. 박을섭도 죽겠지만 장일준도 무사하지만은 않다. 최소한 장일준과 그 아내 조소희와의 관계에 의한 대중의 호감을 어느 정도는 제거해 줄 것이다.
다만 일이 고약하게 꼬였다는 것은 그래도 박을섭인데, 일을 완벽하게 꾸미느라고 장인영의 유전자 샘플을 얻으려던 것이 유민기의 것까지 함께 채취했다는 것이다. 장일준의 아들이 확실한 유민기로 인해 박을섭은 제대로 착각을 하고 말았으니. 더구나 유민기까지 그로 인해 착각한 듯하다.
"너희들은 남매야!"
피도 섞이지 않은, 더구나 아들로 인정받을 가능성도 희박한 유민기임에도 양녀인 장인영과의 사이를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보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테지. 과연 극중 인물들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다만 백찬기는 장인영 생모의 주장이 거짓임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이렇게 공교롭게 사건이 꼬이는구나. 장인영과 유민기의 관계, 그리고 조소희의 반대, 그로 인하 갈등과 그래서 별장에서 함께 지새운 시간들, 여기에 박을섭의 사주를 받아 장인영의 유전자 샘플을 채취하려는 의도가 끼어들고,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이 마치 퍼즐처럼 짜맞춰져가는 사건들이 마치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추리물을 보는 것 같다. 이렇게까지 이야기구조가 완벽하게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아마 드물 듯.
놀랐고. 그리고 감탄했고. 아이들마저 걱정할 정도로 빚에 쫓기느라 어쩔 수 없이 배신할 수밖에 없었던 캠프 정책팀장 홍일구의 배신은 입체적이면서도 디테일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그렇다고 솔직하지만은 않은. 그야말로 생활인의 본연의 모습일까? 자신이 의심받는 상황에서도 고상렬에게로 떠넘기는 장면은 이후 백찬기에게 따져묻는 장면과 정확히 대비된다. 선하지만 나약한 회색 인간의 전형이랄까? 회의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책임을 더는 교활함이 오히려 친근하기까지 하다.
유민기와 장인영의 러브라인이 굳이 필요했겠는가 싶었는데 이래서 러브라인을 넣었구나. 또 쓸데없는 사랑타령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물론 주는 박을섭의 음모보다는 조소희와의 갈등이겠지만. 남편의 숨겨둔 아들과 그를 용인해야 하는 현재 아내와의 갈등. 딱 드라마의 소재 아니겠는가. 스테디다.
과연 여자로써 남편의 숨겨둔 아들인 유민기의 존재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정치인의 아내로써 그것을 참아내며 감당해내려는 조소희의 증오어린 표정이라니. 그러나 역시 하는 말이며 행동이 장일준과는 별개로 장일준이 권력을 쥐어서는 안 됨을 말해주고 있다 하겠다. 이런 타입은 분명 권력을 쥐고 나면 크게 일을 낸다. 인정에 악하고 정리에 매달리고 그런 주제에 권력욕이 강하다. 감정을 다스리지도 못한다.
제대로 밉상연기에 성공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하희라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그만큼 조소희의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냈다는 뜻. 이제 과연 이 상황을 장일준은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 예상컨데 이로 인해 유민기와 장인영의 사이가 용인될 것 같기도 하다. 유민기와 조소희의 관계가 본격화되 것도 같고. 물론 유민기를 아들이라 밝히지는 않겠지만. 그건 진짜 막장이다. 아무리 그래도 한국 대중이 그런 것까지 용납할까?
아무튼 참으로 정치의 더러운 부분을 제대로 잘 묘사해낸 회차였다 생각한다. 박을섭의 사생활을 들추고 그 책임을 신희주에게 떠넘긴 - 더구나 그 신희주에게 단일화를 제의한 장일준부터도 더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러나 홍일구에게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일을 꾸미는 김경모 진영이나, 백찬기로부터 받은 자료를 가지고 장일준을 몰아넣으려는 박을섭이나 모두가 더러움의 극이었다. 토하고 싶을 정도로. 더구나 그러면서도 누가 악이란 것도 없이 철저히 냉정하게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이런 추악함이 권력에 있어 일상인가. 아마 이렇게까지 차갑게 욕망과 그로 인한 음습한까지 직설적으로 그려낸 드라마도 얼마 없었을 듯. 그래서 내가 다른 유혹을 다 뿌리치고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이겠지만.
박을섭 역을 맡은 이기열씨인가? 대단하다. 얼핏 참 음습하고 추악해 보이는 장면인데 이상하게 이기열씨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능청스럽다는 게 이런 것일 게다. 분명 나쁜 놈인데 귀엽다. 이제는 구식이 되어 버린 낡은 방식이라서일까? 박을섭의 존재가 또 드라마를 지나치게 음험하게 흘러가는 것을 막아주고 있다. 확실히 그렇게끼자지 음험해지면 드라마로서 지켜보기가 꽤나 힘들어지겠지.
조이고 풀고를 반복하는 가운데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했다. 어느샌가 잠시 눈을 떼는 사이 그 장면이 잃어버린 퍼즐로 다가온다. 도대체 어디까지 대본을 미리 써 놓을 것일까? 원작이 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드라마 보면서 작가에게 감탄해보기도 처음이다. 연기자들과 더불어 찬사를 보낸다. 최고다.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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