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고 있지 않으니 오히려 더 확실하게 보인다. 내가 윤지훈이라는 캐릭터에 왜 그렇게 불쾌감과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던가.
윤지훈은 한 마디로 먼저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는 인간형이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정의로운 사람.
그는 고다경을 보고서도 한 번에 그녀에 대한 모든 판단을 끝냈다. 이명한에 대해서도. 그리고 정우진에 대해서도. 그가 직접 자기손으로 서윤형을 부검을 하려 한 이유도 단지 이명한을 믿을 수 없다. 정우진도 믿을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은 누가 판단하는데?
이게 뭐와 같느냐면 경찰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감 잡았어!"
혹은,
"너지? 불어! 내가 다 알거든? 너 말고는 그럴 사람이 없어!"
아무런 객관적인 어떤 사실이나 증거가 없음에도 자의적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상황을 판단하고, 그래서 그 판단이 틀렸으면?
시스템이라는 게 왜 있는가? 개인의 판단이란 얼마든지 틀릴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얼마든지 그 판단에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책임을 시스템을 통해 분산해 놓는 것이다. 구조화된 제도를 통해서 그 오류가능성을 최소화하고 그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자. 그 시스템 자체가 잘못 작동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조차도 개인의 자의적 판단에 맡기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렇게 법이 정해져 있고 시스템이 되어 있다면 당연히 따르는 것이다.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을 탓해야겠지. 그 안에서 누군가 잘못했다면 그것을 책임소재를 가려 비판하면 되는 것이다. 자기가 뭐라고 그것을 임의로 깨고 무시하고 하는가? 그것도 멋대로 단정지어서.
뭐와 같느냐면, 정작 국과수에서 과학적인 분석결과가 나와도 그것을 받아들고서는,
"제 녀석들이 뭘 알아? 중요한 건 현장의 감이야!"
혹은,
"이건 음모야! 무언가 다른 의도가 개입된 것이라구!"
낭만적이던 시절에는 그것도 좋았지만 하필 국과수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말이지. 과학수사 하자면서.
그저 소리지르는 게 싫은 게 아니었다. 그 제멋대로가 싫은 것이었다. 자기만 옳다는 독선. 그리고 독선에 취해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오만.
문득 깨닫고 말았네. 기껏 길게 써놓은 글을 첫머리 몇 문장만 보고서 판단하고 리플다는 사람들 덕분에. 마찬가지다. 글이란 전체를 봐야 하는데 넘치는 정의감에 단 몇 문장만으로도 흥분해서는. 전체 가운데 실제 그런 뜻도 아닌 단어 하나에 정의감에 불타 한 마디를 남기고.
악플러라는 게 다른 게 악플러가 아니거든. 의도적인 악플러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생각없이 악플 다는 사람들이다. 정의로운 사람. 선량한 사람. 도덕적인 사람. 올바른 사람. 내가 가장 싫어하는 타입이지.
역시 판단이 먼저고 이유는 나중이구나. 내가 왜 윤지훈이라는 캐릭터에 그리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는가. 싸인에 대해 어떤 불편함까지 가지고 있었는가.
물론 싸인이 나쁜 드라마라는 건 아니다. 재미있게 보는 사람들더러도 뭐라 하는 게 아니다. 그냥 내 취향이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싫은 놈이 정의인 척 소리질러대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기란 불가능하지.
이제야 깨닫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이유는 항상 나중에 따라붙는다. 사소한 일로도 그 이유는 떠오를 수 있다. 새삼 느끼는 점이다. 나는 이런 걸 싫어한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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