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리플접대라는 걸 포기한 또 하나의 이유가,
"도대체 이걸 뭐라고 댓글을 달아야 하지?"
예를 들어 본문을 전혀 읽지도 않고 달리는 리플이다.
"본문을 읽어주세요."
웃기지? 그렇다고 또 리플에서 본문의 내용을 풀어줄 수도 없는 거다. 뻔히 안 읽는다.
아니더라도 이야기가 어지간히 꼬이고 나면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상대가 이해해줄까? 한참을 고민하다 보면 내리는 결론이란,
"그냥 말을 말자."
말로 해서 안 될 문제라는 걸 알게 되면 더 이상 말을 않게 된다. 혹은 어떻게 말로써 표현해야 할까 모를 때도 차라리 침묵으로써 주장을 대신하게 된다. 어이없고 황당할 때. 그럴 가치가 없을 때. 필요가 없을 때.
일상에서도 곧잘 그런다. 굳이 말을 해서 될 일이 아니면 말을 않는다. 나 자신이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말을 꺼내 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혹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다. 가끔 그것을 망각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믿기지 않는 게 아니라 믿기 싫은 거다."
어차피 봐서 이해를 구할 것도 아니고, 나 자신도 이야기가 정리가 되지 않고, 또 그럴만한 문제인가,
"처음에는 왜 이런 것들을 해명해야 하는가 싶었다."
"대응을 안했다고 하지만 그 동안 나는 전쟁중이었다."
타블로가 MBC의 특집방송에서 나와 했던 말들이다. 왜 침묵했는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왜 최진실은 나서서 해명하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을까? 생각해 본 적 없겠지?
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정선희도 차라리 죽어버리지. 아닐까?
"방송에 얼굴을 내비치는 자체가 불쾌하다."
어떤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의혹을 제기한 시댁식구들도 이미 사건의 이해당사자다. 제 3자도 아니고, 어떤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한 것도 아니고, 그냥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사이는 완전히 틀어져 버렸지. 그렇게까지 하는데 친동기 친부모라도 과연 좋은 얼굴로 대할 수 있을까? 뇌는 생각하라고 달려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해명하고 뭐하고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완전 개싸움에 진흙탕투성이가 될 텐데.
하기는 어차피 그런 걸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피투성이가 되어 난장판 속에 뒹굴고 있기를. 진실이라는 이름 아래 정선희라는 한 인간이 망가지고 상처투성이가 되어 괴로워하는 모습을.
바로 그것이 대중의 속성이니까. 마녀사냥을 왜 했을까? 그냥 스트레스 해소였다. 과도하게 엄격하고 억압적인 사회는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그 스트레스를 해소할 대상을 찾거든. 왕따가 그래서 나온다. 과거 잦았던 유대인학살이나, 천민에 대한 차별과 학대나. 한 마디로 만만한 거다.
의혹을 갖는 건 좋다. 하지만 의혹은 죄가 아니다. 의혹은 단지 의혹일 뿐 구체적인 사실 없이는 그저 망상에 불과하다.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나 증언이 없는 이상에는 그것은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왜 밝히지 않는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세상에는 말로써 풀어가지 못할 이야기들이 얼마든지 있다. 상황이 그렇고, 여건이 그렇고, 처지가 그렇고, 감정이 그렇고, 무엇보다 무어라 말해야 할 지 모르겠고. 과연 당시 상황에서 정선희가 뭐라 했으면 욕을 안 먹었을까? 타블로는 졸업증명서에 졸업장에 다 보여줬어도 조작이라 했었는데.
"의혹이 있는데도 해명을 하지 않으니 너는 유죄다."
대단하신 판사들 나셨다. 언제고 민사든 형사든 재판정에 섰을 때 그 소리 들어보기 바란다.
"스스로 무죄를 입증하지 못했으니 너는 유죄다."
어쩌면 한국사회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죄형법정주의의 원칙따위는 너무 이른 것이 아닐까.
의혹이야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확정하고. 단지 의혹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방적으로 해명을 요구하고. 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죄인으로 단정짓고 대하고.
그냥 오만한 거다.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거다. 눈앞에 사람이란 안 보이지? 모니터 너머에 있으니까 사람 가이 안 보이지?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하고서도 전혀 반성이 없다. 어찌 보면 대단한 거다.
"그것과 이건 다르다."
그렇지. 죄도 없는 사람을 억지로 사형대에 올리고서도 단지 실수일 뿐 그건 본질이 아니다. 반성하는 사회에서는 그로 인해 법도 바꾸고 제도도 바꾸고 사람들의 인식도 바꾸는데.
나도 정선희의 진실이 무언가는 모른다. 그리고 사실 별 관심도 없다. 진짜 그것이 범죄수준의 악이라면 이미 경찰이나 검찰이 나섰을 거다. 범죄검거와 처벌은 그들에게는 실적이다. 연예인따위 아무리 인맥이 있어봐야. 그리고 그런 정도가 아니라면 어차피 정선희는 남이다.
오늘 오전에도 썼던 사람 사이의 거리다. 아무리 연예인이고, 매일같이 TV로, 라디오로, 인터넷뉴스로 접한다 하더라도 연예인이란 철저히 타인이다. 나와 연예인의 접점은 나와 연예인이 만나는 그 미디어의 순간에 한정한다. 그 이상 내가 신경쓸 필요가 있을까? 더구나 스스로 밝히기 어렵다는 문제인데. 사실로 확정되지 않은 동안에는 그것은 사실이 아니니 굳이 구애받을 필요가 없고.
그렇게 확신이 있다면 증거를 찾아 돌아다녀 보든가. 그 좋아하는 것 있잖은가? 네티즌수사대라고. 엄한 일반인 신상은 털어도 이런 진상을 밝히는 능력은 안 되는 모양이지? 증거를 제시하고서 나쁘다 말하면 누가 뭐랄까? 의혹이 있는데 밝히지 않으니 나쁘다. 건방도 이 정도면 신급이다. 무협과 판타지에만 막장이 있는가 했더니 그런 것들을 누가 읽는가를 안다.
개념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닌데. 언제고 안드로메다와 우리 은하가 충돌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데 그때쯤이나 되면 개념들을 챙길까?
생각없다는 게 이렇게 무섭다. 의심없는 정의라는 것이 이렇게 혐오스럽다. 자신의 정의에 대한 맹신이란. 미쳤다는 게 바로 이런 걸 두고 미쳤다 하는 것이다. 어쩌면 사회적인 질병일지도.
곰곰히 생각해 보기 바란다. 과연 그것은 확정된 사실인가? 사실이기에 판단하고 결론을 내린 것인가? 사실도 아닌데 어떻게 판단을 내리고 결론을 내리고 그를 대할 수 있는가?
말이란 할 말이 없고, 어떻게 해야 할까도 모르겠고, 할 수가 없으면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조차도 말이다.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침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말인들 알아들을 수 있을까. 침묵을 들을 생각이 없다는 자체가 말을 해도 듣지 않겠다는 뜻이다.
한 인간을 저렇게 내몰고서도 여전히 더 내몰지 못해 안달하는 그 잔인함을 보며, 아니 스스로 잔인한줄도 모르는 그 무도함들을 보면서. 과연 이런 것이 대중이로구나. 여론이로구나.
나는 그래서 다수의 정의나 선의를 믿지 않는다. 대중의 현명함이나 지혜로움도.
다수가 그렇게 주장한다 해서 정의는 아닌 것이다. 대중이 그리 생각한다고 정답은 아닌 것이고.
의심없는 지혜야 말로 무지다. 의심없는 정의가 곧 악이고 무도함이다. 대중은 의심따위는 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내가 이상한 것인가? 사람들이 이상한 것인가? 결론은 어느 쪽이 더 사람들에 상처를 남기는가.
정보화가 인간에게 지혜를 주지는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결론. 한숨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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