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앤비나 트로트나 사실 바이브레이션을 사용한 그루브가 그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 트로트에서도 알앤비를, 알앤비에서도 - 특히 우리나라 알앤비 가운데서도 트로트를 찾아보게 되는데, 물론 아주 같지는 않아서 둘 사이에는 서로 넘을 수 없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그 근본에서의 차이다.
간단히 트로트는 그루브보다는 바운스에 가깝다. 쿵 따 쿵 따 하는 이른바 뽕짝이라 하는 폭스트로트의 2박자 리듬을 4박자까지 늘려 쓰는 것이 트로트인 때문이다. 여기에 전통적인 민요의 3박자나 6박자가 더해지면 우리나라 특유의 트로트가 된다. 그 바운스에 특유의 그루브를 싯다 보니 트로트만의 신명나는 구성짐이 만들어진다. 한국 사람들이 어디 놀러 가서도 트로트를 곧잘 부르고 춤도 추고 하는 것은 그래서.
그리고 더해 더 중요한 근본적인 차이가 그루브 그 자체의 차이다. 알 앤 비는 원래 신께 바치는 노래였다.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의 노래는 신과 정령을 부르는 노래였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다시 신을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알앤비 특유의 창법이란 아프리카의 토속음악이 아메리카에서 종교음악인 가스펠을 만나며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알앤비의 그루브란 신에게 바쳐지는 그루브다. 내면으로부터 시작해 밖으로 뿜어지는 바이브레이션인 것이다. 아름다우면서도 경건하게 구슬프게 뽑아내는.
그에 반해 한국의 전통음악이란 개인의 이야기였다. 개인의 감정과 개인의 일상사와 주위의 풍경들을 노래하는 것이었다. 다른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흔히 말하는 신명 - 내면의 충동에 의해 부르던 노래였다. 그리고 그 소리는 자기에게 수렴했다. 이른바 삼키는 소리다. 소리를 삼키는 바이브레이션이다. 하춘화도 놀러와에서 그것을 두고 "굴리기" 혹은 "넘기기"라 말했었지. 잘 굴린다. 잘 넘긴다.
민요의 창법이란 내지르는 창법이 아니다. 그저 내지르기만 해서는 민요 특유의 구수함과 구성짐이 살아나지 않는다. 삼켜야 한다. 어떻게 삼키느냐? 목을 떨고 몸을 떪으로써. 마치 내쏘던 목소리를 다시 삼켜 목젖을 떨고 몸을 떨듯이. 다시 소리를 자기에게로 수렴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꺾기니 떨기니 끊기니 하는 트로트의 기법들일 것이고. 그것들은 민요에도 있다. 잘 넘긴다 하는 것이겠지. 소리를 목구멍으로 넘겨 삼키는 그대로.
가사들도 직설적이지만 자기에게로 수렴하는 가사들이 많았는데, 조금은 자학적이기까지 한 그것이 사실 원래의 트로트의 맛이었다. 조금은 수줍게, 조금은 능글맞게, 누군가에게 들려주고자 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자. 내 이야기처럼. 사실 사람에게 가장 부끄러운 것은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순간이다. 내 이야기를 나 자신에 들려줄 때처럼 어색한 때가 어디 있겠는가.
아무튼 그래서 트로트를 잘 부르려면 목소리부터 기름져야 했다. 기름지다는 것은 비성과 흉성과 비브라토가 적절히 잘 섞인 목소리다. 그리고 소리를 삼키는 두께가 있다. 같은 목소리도 트로트를 제대로 부르려면 바뀌게 된다. 다만 트로트고고에 이르러서는 록의 창법을 받아들여 야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지르는 창법이 나왔고 이후로도 트로트의 창법에 많은 영향을 준다. 그래도 역시 소리를 그대로 내쏘아 지르기보다는 안으로 가두어 삼키는 기본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할 수 있다. 그냥 지르면 그건 록이겠지.
문득 지난주 7080에서 남진 선생님이 노래 부르는 것을 들었다. 느낀 것은 일반적인 트로트보다는 오히려 스탠다드와 민요에 더 가깝지 않은가. 스탠다드의 세련됨에 민요의 구성짐이 어우러진 느낌이랄까? 그런데 그것이 바로 트로트라. 팝을 부르는 것을 듣는데 트로트 특유의 뽕끼 없이 제대로 맛깔나게 소화해 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차이라면 민요의 창법에 있지 않을까. 전부터 생각해 오던 것. 트로트의 구성짐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그 답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트로트는 부르는 노래다. 듣는 음악이 아니다. 들어서 맛이 아니라 불러서 맛이다. 듣는 것도 충분히 흥겹지만 자기가 소리 내어 불러봐야 한다. 들려주고자 하는 음악이 아니라 자기의 안에서 시작되어 다시 돌아오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마치 자기 이야기를 곱씹어 삼키듯. 자기의 오만 감정을 가만히 입에 담이 삼켜 녹여내듯. 그것이 또 신명이겠지. 슬픔도 원망도 분노도 아쉬움도 그렇게 흥겨운 춤사위가 되어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민요와 트로트가 만나는 접점이다. 원래의 민요를 대신해 트로트가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일 테고.
오늘을 즐겨라에서 트로트 오디션을 하는데 내내 보면서 아쉬웠던 부분이다. 조혜련은 거기 왜 나갔는가? 나름대로 괜찮은 실력이었지만 마치 샤우팅하듯 질러대는 그 소리가 왜 감점이 되었을까? 그리고 크리스탈과 이특은 노래도 잘 하고 했는데 왜 이리 허전히가만 할까? 신동의 목소리는 참으로 찰지더만.
워낙 트로트를 좋아한 터라 간만에 보지 않던 오늘을 즐겨라까지 찾아보았다. 더구나 지난주 7080에서 남진 선생님까지. 그 구성짐을 오랜만에 맛보고 싶은데. 노래방 가면 항상 베스트는 트로트라. 어지간하면 모인 전부가 즐길 수 있는 노래가 트로트다. 시작이야 어떻든 이미 이것은 우리 음악이다. 다름아닌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된. 그것을 깨닫는다. 아침나절부터.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아침부터 노래방은 - 문 여는 곳이 없다. 차타는 곳까지 노래 부를 수 있게 조금 돌아서 갈까? 오랜만에 밤에는 노래방부터 들러야 할 지도. 끊고 꺾고 굴리고 넘기는 그 트로트만의 구성짐을 오랜만에 다시 한 번. 시간이 흘러도 한국인의 감성에는 트로트라. 정답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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