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건 쉬워요. 하지만 어떻게 웃기는가는 아직 어려워요..."
"이런 건 너무 저질이잖아요? 이러지 않고 웃기는 방법을 더 공부해야 할 것 같아요."
아마 며칠 되었을 텐데. 아무 생각없이 단지 웃음만을 욕심내는 어느 아이돌에 대해 화를 낸 적이 있었다.
하긴 예능이라는 것일 테지. 적당히 나가 한두번 넘어져주고, 우스꽝스러운 분장으로 바보노릇도 하고, 독특한 말투며 표정이며, 개인기도 좀 보여주고, 편하지 않은가? 그냥 우습겠거니.
왜 게스트로 나가서는 그리 잘 웃기다가 고정이 되면 못 웃기는가? 혼자서는 웃기는데 MC가 되거나 롤을 맡고서는 그대로 죽어버리는가? 사실 지금 일류라 할만한 코미디언 MC가 몇 안 된다. 그 수많은 스타들 대가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강호동이 그냥 힘만 센 게 아니다. 유재석이 그냥 사람만 좋은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노력을 한다. 웃기기 위해서. 유재석이 해피투게더나 놀러와에서 여러 다양한 분야의 게스트가 나왔을 때 몰라서 어색해 하는 것 본 적 있는가. 마치 오래전부터 팬이었던 것처럼 항상 적절히 잘 호응해준다. 아이돌 응원멘트까지 외우고 있다. 팬들 착각하게스리.
항상 고민한다. 항상 연구한다. 코미디언이란 웃음의 탐구자이자 탐험가들이다. 항상 새로운 웃음을 찾고, 새로운 웃음을 개척하고, 그리고 더 웃기지 못함을 한탄한다.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
"식상한 자신이 두렵다."
언제까지 하려는가?'
"나 스스로가 나 자신에게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때는 떠나려 한다."
김태원 자신도 말하지.
"처음 나를 매우 신기하게 봤다. 아마 그래서 예쁨을 받은 것 같다."
역시 받는다.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타입의 캐릭터였다."
지난주도 그랬지.
"항상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주어야 예능도 살아난다."
그가 그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을 발굴하여 예능에 수혈하곤 했던 것은 그러한 새로움에 대한 탐구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웃음에 대한 욕심이 크기에 웃음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발굴하는 눈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에 비하면 예능감이 있다? 감을 잃었다? 이미지 소모다? 그냥 나와서 적당히 웃겨주다 언제 있었는가 모르게 사라져 버린다. 특별히 노력하는 것도 없고, 자기계발하는 것도 없고, 그러느니 차라리 나와서 굳이 웃기려 하지 말고 평소 하던 모습을 보이라. 되도 않는 욕심을 부리느니 진정으로 그 프로그램에 최선을 다하는 진정성을 보이면 사람이 좋아서라도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정도 경험도 있고, 웃음에 대한 이해도 있고, 그래도 예능인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들. 그보다는 항상 웃음을 고민하고 연구해야 하는 코미디언들. 그나마도 없이 조금 관심을 받는다고 뭐라도 되는 양 팬들의 떠받듦을 받는 아이돌들. 우물이 수백념을 마르지 않는 것은 그만큼 깊이 파들어갔기 때문이다. 웅덩이는 그냥 마른다. 웃음욕심이 나면 그만한 노력을 하던가.
사실 그래서 예능감이라는 말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 원래 매력이 있어서 웃긴다면 그건 감이라 할 수 없겠지. 그건 캐릭터다. 만일 어떤 재능이 있고 능력이 되어 웃긴다면 그것은 노력이다. 실력이고. 감이라 해서는 안 된다. 참 어중띤 말이다. 감이라. 그 감은 어디서 나오는 감인데?
당장 뒤이어 나온 김병만도 그 달인 프로그램 하나를 위해 뼛조각이 몸 안을 돌아다닌다고 하는데도 수술마저 거부하고 무대에 서고 있는 중이다. 때로는 땀으로 목욕을 할 정도로 두려운 동안에도 그것을 딛고. 과연 예능감이 있다고 하는 가운데 그런 정도로 노력하고 도전하는 이가 누가 있던가.
하여튼 참 이경규란 나오는 예능마다 모두가 레전드다. 찾아다니며 굳이 모아 볼 가치가 있다. 모아 보는 정도가 아니라 시시때때로 반복해 본다.
"신인이지만 이들도 시험봐서 들어온 사람들이고 프로인데 아이디어 회의도 하고 자기계발을 할 시간도 주어야지 관례를 버리지 못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순간 소름이 좌악 돋았다. 이런 게 바로 선배일 것이다. 앞서 살았기에 선생이다. 지금을 사는 후배들에게 보다 넓게 멀리 깊게 볼 수 있도록 돕는. 윤형빈이 이윤석을 대신해서 하인을 자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존경받을 수 있는 선배란 그래서 오히려 드물다.
웃음이란 어디에서 나오는가? 단지 감? 사람이 재미있어서? 하지만 어느때도 일류는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이다. 공부하는 사람이다. 항상 미지를 탐구하는 사람이다. 그 나이가 되어서도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경규는 지금도 일류이고 이 나이에도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자신이 좋다."
"다시 과거로 더 젊은 시절로 돌아가라 해도 가지 않겠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만큼 최선을 다해 충실하게 살아온 삶이라는 뜻이다. 물론 한 점 후회가 없지는 않겠지. 그러나 그만큼 열정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나이든 자신의 모습에도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가장 힘든 것이 거울 앞에서 자기를 마주하는 것이다.
"언젠가 놓아줄 날이 있으리라."
천만의 말씀. 이경규는 자신을 놓아줘도 나는 못 놔주겠다. 70되어서 "할 말 있어요"라는 프로그램 만들어 마음껏 자폭하는 모습까지 봐야겠다. 90넘어서 80넘은 이윤석의 수발을 받는 모습도. 아마 그때는 또 그때대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이경규를 보여주고 있겠지. 그는 멈추거나 뒤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닌 항상 앞만 보며 나아가는 사람이니까.
다만 이경규와는 또 다른 타입의 웃음으로서의 김태원... 아니 역시 같은 과일까?
"카메라가 있든 없든 신경쓰지 않는다."
말하자면 김태원은 천연계다. 굳이 계산하지 않고도 웃길 수 있는 사람이다. 타고났달까? 아마 이런 것을 예능감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김태원이 특별한 것은 그만한 삶의 경험이 있고, 그의 말이며 행동 하나하나에 그같은 경륜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삶이다.
신인 가운데서도 그련 겅우가 적지 않다. 말만 하면 빵빵 터지는 사람들. 행동 하나하나가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사람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역시 거기서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따로 노력을 하지 않아도 김태원은 그런 삶을 수십년 살아오며 그것이 몸에 체화되어 있다. 단지 일시적으로 웃기고자 하는 예능감과의 차이일 것이다. 웃음보다 앞선 삶과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탐구이며 탐험이다.
"데리고 가느냐와 달고 가느냐의 차이야!"
여기서는 이경규마저 쓰러지고 말았다. 짧지만 적절했고 정확하지만 여운이 있다. 웃자는 소리인데 향기가 묻어난다. 누가 있어 과연 그 상황에 이런 멘트를 던질 수 있을까. 김태원이기에. 코미디언 이경규가 아닌 음악인 김태원으로써 그의 삶이 궤적이 만들어준 웃음일 것이다. 사람들의 그의 웃음을 사랑하는 이유다.
게스트로 인기를 모으다 정작 고정멤버가 되어서는 이내 사라지고. 다른 프로그램에서 조금 인정받고 잘 나간다고 또다시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는 또 조용히 묻히고. 한동안 대세라며 떠받쳐주다가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잊혀져 버리고. 과거에도 그런 경우가 있지만 지금은 더 빠르다. 왜일까?
웃음을 욕심내고자 한다면 먼저 웃음을 이해하라. 예능감이라는 걸 갖고 싶다면 예능을 먼저 이해하라. 개인기를 연습하기보다 그쪽이 더 돌아가더라도 오래 가는 길이 아닐까. 아마 연기를 하든 다른 일을 하더라도 이것은 중요한 것이다. 말 그대로 지혜일 테니까. 마지막에는 인간과 삶을 이해하라.
아무튼 재미있었다. 빵빵 터졌고 웃다가 정신없이 시간이 다 가고 말았다. 그러면서 남는 깊은 여운은 이경규가 항상 말하던 페이소스겠지.
"항상 직진만 하고 살았고 직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날 한계에 부딪혀 문득 오른쪽을 보는데 길이 있어 그리로 가니까 경규형님이 계셨다."
"술보다 더 좋은 것을 발견했다. 남자의 자격에서 일곱 형제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경규형과 윤석이는 나의 삶을 바꿔준 생명의 은인과 같은 존재다.
"베테랑 고속버스 기사분 같다. 항상 그 뒤만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놓인다."
"결국 나중에는 윤석이와 나만 남을 것이다. 내가 90살이 되어도 윤석이는 80살이 되는데 그때도 내 수발을 들고 있을 것이다."
김승우의 말처럼 이런 것이 남자의 우정이라. 티격태격 서로 디스하는 가운데서도 서로에 대한 깊은 정과 신뢰가 있다. 그 이전에 존경과 존중이 있다. 아마 이때까지 승승장구 몰래온 손님 가운데 최고가 아니었을까? 입담도 그렇고 그 여운도 그렇고.
"인기란 차창에 서리는 성에와 같다. 해가 뜨면 녹아버리고 있었는줄도 모른다."
이경규의 명언이라고 이윤석이 말해준 그 말이 떠오른다.
"선풍기 바람이 시원하지 않은 것은 그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오는지 알기 때문이다.
자연의 바람이 시원한 것은 그 바람이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이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어디로부터 오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공자나 예수나 부처나 자기가 책을 쓰거나 한 적이 없다. 다 제자가 썼다. 공자는 성인이 되지만 주석을 단 주자는 학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 뿜는 향기는 그 어떤 향기보다도 향기롭다. 향기란 인간의 깊이에서 나온다. 말은 그것을 기록하고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말하지만 이경규가 자신을 놓아주어도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이경규란 이경규 개인의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 모두의 것이다. 이 시대의 보물이다. 어찌 감히 이경규라 해도. 항상 감사하는 까닭이다. 최고다.
덧, 그리고 이기광에 대해서,
"이기광씨가 이 프로그램의 가장이에요. 책임을 가져야 해요."
인정.
"여기서 대답해 주십시오. 이윤석씨를 버리실 겁니까?"
감탄했다. 확실히 지난주도 이경규가 톡톡 건드릴 때마다 그때그때 반응이 좋았다. 아직 덜 여물었지만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꽤 괜찮아지리라. 무엇보다 경험이 쌓이면.
승승장구는 참 재미가 없는데. 그러나 이경규라서 재미가 있었다. 승승장구의 새로운 매력도 보았고. 나 역시 이기광을 기대해 본다. 가능성이 보인다.
김병만에게는 조금 미안하다. 김병만에 대해서도 쓰고 싶었는데 이경규의 향기가 너무 강해서. 취해버렸다.
김병만도 물론 훌륭한 코미디언이다. 우리 시대의 코미디언 연작을 기대해 본다. 웃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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