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사람 사이에도 어쩐지 하기가 꺼려지는 말이라는 게 존재한다. 서로 건드리기 예민한 이야기들. 예를 들어 영웅호걸이나 무한도전에서 노홍철의 이별 이야기를 가지고 웃음소재로 삼지만, 사실 현실에서 누구 헤어지고 한 이야기 가지고 함부로 떠들고 하지는 않지 않은가.
어쩐지 물어봐도 상처가 될 것 같고, 들어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을 것 같고, 서로간의 관계가 어색해질 것 같고, 그런 때는 적당히 이야기를 묻곤 한다. 그리고 더 가까워지고 나면 그때서야 끄집어내어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다. 이제는 이 정도는 이야기해도 되겠다.
사람 사이의 거리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 거리가 있다. 그것을 한비자는 역린이라는 말로써 정리했다. 안노 히데하키는 A필드로써 구체화시켰다. 서로 넘어서서는 안 되는 벽. 그 벽을 하나씩 허물고 다가가는 것이 사람이 사귄다는 것이고 친해진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끝내 넘어서지 못하는 벽이란 존재하고.
아마 연예인이라 만만해 보여서일 것이다. 대중이라니까. 연예인이라고 항상 대중의 눈치를 보고 고마워하니까. 인터넷에서 몇 마디 떠들면 바로 방송이든 어디서든 반응이 오니까. 잘 나가던 연예인이 하차하고, 그리 대단해 보이던 사람들이 대놓고 사과하고. 더구나 항상 화면 너머로만 보다 보니 현실감이 없다. 인격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객체로써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
어떤 구체적인 증거도 없다. 만일 그 주장들이 사실이라면 경찰이 먼저 수사에 나섰을 것이다. 그건 범죄다. 하지만 아무런 증거 없이 주장만 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믿는다. 믿는 것까지는 좋다. 강요한다. 자백하라고. 타블로도 그랬지만 없는 일이고 아닌 일로 자백한다는 자체가 우스운 것이다.
"나는 아니다."
얼마나 구차한가. 더구나 스스로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자신이 상처를 입고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졸지에 남편을 잃고 친구마저 잃고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타블로도 말했었다.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당시 정선희의 처지가 일일이 그런 소문들에 대해 해명하고 말고 할 상황이었던가. 오히려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그런 불행한 일을 당했는데 그러고 진창에서 드잡이질하고 있었다면.
그런데도,
"너 이랬지? 털어놔! 결백하면 사실을 말해!"
"말하지 않는 게 바로 유죄라는 증거야!"
물론 본심은,
"우리는 이미 심증을 가지고 있어. 확실해. 그러니까 그를 위한 증거를 내놔!"
과연 현실에 존재하는 누군가였다면 그리 말할 수 있었을까? 실제 얼굴을 마주하고, 몸을 부대끼고, 말을 나누는 그런 사이에서였다면 저리 집요해질 수 있었을까? 조금 더 조심했을 테고, 말이든 행동이든 신중하게 삼가며 했을 것이다. 하기는 아예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뒷담화를 했겠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거리가 없다는 뜻이니까.
같다. 왜 그리 없는 자리에서 남의 뒷담화를 하는가? 보이지 않으니까? 느껴지지 않으니까? 거리라는 것이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으니까. 단지 남의 눈치만 보다 보니 그 눈치가 사라지니 거리낌이 사라지는 것이다. 오로지 자기만이 존재하는 유아적인 에고. 그 에고에는 단지 답만이 있지 이유라든가 과정은 생략된다. 대개 설사 아니라 밝혀도 이미 결론을 내리고 났으면 그 이외의 반론이나 반증은 아예 들리지도 않는다. 오로지 자기의 믿음과 그 믿음으 전제로 한 추측과 그리고 확신에 찬 단정 뿐. 한 인간의 삶이야 어떻든.
도대체 무슨 구체적인 증거들이 있어서. 어떤 증거도 없이 단지 그럴 것이라는 심증만으로.
"무죄라는 증거가 없으니 그 증거를 내놓으라!"
사극을 보면 나온다.
"여봐라! 저 놈이 바른 말을 할 때까지 매우 쳐라!"
고문받다 죽어도 끝까지 자백하지 않은 자신의 책임이지 엄한 혐의로 고문하는 자신의 책임은 아닌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도, 군사독재시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단지 혐의가 있다는 것만으로 피의자에게 고통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시대의 수준이랄까.
의혹이 있으면 스스로 직접 증거를 찾아보던가. 자기가 직접 증거를 가져다 사실 아니냐 따져묻는 게 우선이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에서 유죄를 입증해야지, 어떻게 무죄를 주장하는 입장에서 일일이 자기의 무죄를 주장해야 하는 것일까? 더구나 당사자이고 전혀 상관없는 제 3자이고.
참으로 철없는 에고에 생각없는 정의감이랄가? 악을 무찌름으로써 정의를 실천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정의인지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누가 악인가가 중요하겠지. 그래서 인터넷상에서도 항상 악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것일 테고.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는 게 있다. 모든 성현들이 말하는 그 기본이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하듯 하라는 것이다. 가족에게처럼. 연인에게처럼. 배려하고 존중하고 삼가고 아끼며. 먼저 듣고 자신을 낮추고. 설사 그것이 연예인이더라도. 하물며 그것이 상처가 될 수 있고 확실치도 않은 것이라면.
항상 보면 안타깝다. 안쓰럽고. 사실 그다지 좋아하는 연예인도 아닌데. 바로 이것이 대중의 속성이라. 인간의 더러운 본성이기도 하다. 단지 누군가는 그것을 억누르고, 누군가는 그것이 잘못인지도 모를 뿐. 누구를 탓하겠는가. 그런 것도 가르쳐주지 않은 그들의 부모나 선생들을 탓할 뿐. 아이의 잘못은 부모가 쓰는 거다.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인간인 것을 잊지 않는 것. 상대도 물론이고 자신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건 너무 간단하다. 그냥 앞만 보면 된다. 자기조차 돌아보지 않고 그냥 앞만 보고 있으면 된다. 주위를 보지 않을 때 눈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된다. 괴물이 되는 순간이다.
그나저나 밤이면밤마다에 출연하는 유이의 얼굴이 갈수록 예뻐진다. 사실 절대 내 취향은 아니었는데. 오히려 못생겼다고까지 여겼을 정도인데. 그러나 이렇게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그저 또래의 아가씨랄까. 순수해 보인다는 것도 있고. 꿀벅지란 어쩌면 굴레였을지도.
공형진의 인맥이 동원된 현빈과 원빈의 양빈. 그러나 여전히 MC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는 너무 빈약하다. 탁재훈도 웃기고, 박명수도 웃기고, 김제동도 웃긴데, 그것을 잇는 하나의 일관된 선이 없다. 그것이 게스트에 집중하게끔 하지만 게스트 빠지면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글쎄... 일단은 재미는 있었다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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