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프레지던트 - 한국사회의 고질병, 온정주의...

까칠부 2011. 1. 19. 23:19

내가 한국 드라마 싫어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하긴 어디는 안 그렇겠냐만. 한국사회가 왜 이 모양인가?

 

"윤성구와 내가 어떤 시간을 함께 지나왔는 지 알아?"

 

그게 뭔 상관인가? 이미 일은 저질러졌고 그로 인해 당장 모시는 후보가 위기에 빠졌다. 후보 보좌관으로서의 공적인 책임이 우선인가? 윤성구와의 사적인 관계가 우서인가?

 

하기는 조소희부터도 그렇다. 조소희가 기대는 건 오로지 인정. 친정아버지와 오빠, 혹은 남편, 자식, 고상열과 신희주를 설득하러 가서도 결국 그녀가 기댄 것은 그들의 온정이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그녀는 태연히 납치라는 범죄마저 저지르고.

 

전혀 어색함이란 없다. 그것이 문제라는 것도 없다. 제법 똑똑하다는 선거참모조차 그런 인정에 넘어가고 만다. 자식을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단지 백찬기에게 분노만 할 뿐인 윤성구는 어떻고.

 

이런 놈들이 정권을 잡는다 생각해 보라. 윤성구가 비리를 저질러도 오재희는 침묵을 지킬 것이다. 대일그룹에서 문제거 터져도 조소희는 그것을 막을 것이다. 때로는 불법도 저지르겠지. 그리고 장일준은 그것을 화는 낼지언정 참고 넘어갈 것이다. 아니라 보는가? 심지어 자기가 모르는 새 벌어진 일로 인해 위기도 맞겠지.

 

하기는 김경모는 어떨까? 김경모의 참모 백찬기도 김경모 모르게 일을 꾸미기는 마찬가지다. 과연 김경모가 정권을 잡고 나면 백찬기는 어떻게 처신할까? 김대정 정권 당시도 가장 어렵던 시절에 함께 했던 동지에 대해서 김대중은 끝내 단호하지 못했고 그것이 아름답지 못한 말년의 원인이 되었다.

 

눈물이나 질질 짜고. 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불륜과 사생아라는 원색적인 인신공격과 루머에 대해서조차 반전의 기회로 삼으려 하는 장일준은 대단하다. 그랬다. 이건 리얼 정치드라마였다. 한국 정치인이라면 저래야 한다. 이념보다는 온정을, 정책보다는 인정을, 공적인 관계보다는 사적인 정리를, 또 그것을 국민들은 좋게 여기지. 매몰찬 것보다야 다정한 것이 좋다. 그러나 다정한 사람은 결국 인정에 끌리고 만다.

 

한비자도 그랬다. 인자한 군주보다는 차라리 인정머리 없이 냉정한 군주가 낫다고. 법가의 기본원리도 그것이다. 어차피 개인의 인정이나 판단 따위 믿을 게 못되니 법을 믿자.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이 사적인 감정이나 관계를 배제한 절대군주일 테고.

 

참 보면서 내내 기분이 더러웠다. 박을섭 때문이 아니었다. 조소희 때문에. 그리고 윤성구 때문에. 윤성구를 봐주는 오재희 때문에. 저런 게 우리나라 정치로구나. 아니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이구나.

 

그리고 또 하나 장일준의 아들 유민기. 딱 하는 짓거리가 비슷하다. 정확하게 알아볼 생각 없이 단편적인 주장만 가지고 사실로 확정하고. 직접 만나서 묻는다고 사실을 말하리라 누가 장담하는가? 왜 장일준은 거짓말을 한다 생각하면서 주일란이 거짓말할 가능성은 생각지 않을까? 먼저 결론을 내리고 나면 사실은 그리 끼워맞춰질 수밖에 없다. 그런 게 PD라니. 하긴 이 또한 리얼리티이기는 하다.

 

하필 또 오늘 터진 사건이 그래서. 남편 대통령 만들겠다는 조소희의 오지랖이나 섣부른 판단으로 일을 꼬아가는 유민기 PD나. 리얼은 리얼리티라 생각했다. 참 현실적이구나.

 

열받지만 그래서 재미있는 드라마. 원래 현실은 열받는 거니까. 그래서 아마 인기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분통이 터지지만 고개가 끄덕여진다. 기다려 보는 보람이 있다. 최수종은 멋지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