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와 길라임은 이미 부부입니다."
"이익~~!!"
너무나 당당한 아들의 모습에 화가 나서 베개를 치켜들고 때리려 하다가 도저히 돌이킬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눈물을 삼킨 채 베개를 내리고 흐트러진 머리를 가다듬던 모습. 한참을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파들파들 떨다가는 이내 원래의 차갑고 오만한 표정으로 돌아와 아들을 대한다.
"그래, 졌다. 너는 이제부터 내 아들이 아니다."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웠다. 김주원의 행동에 분노하고 원망하다가 끝내 그것을 받아들이고 아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그 모습이. 그렇게 서럽게 눈물을 글썽이며 바라보던 아들에 대해 전혀 타인을 보는 듯 냉정해지는 그 과정과 순간들이. 베개를 내려놓고 잠시의 침묵과 이내 머리를 정리하는 그 동작들이.
"가족도 아닌 사람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어머니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정말 멋지지 않은가. 아들조차도 혈연이어서 아들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세계 안에 있기에 아들이다. 김주원이 항상 말하는 사회지도층으로서, 남들과 다른 세계를 사는 고귀한 신분의 여성으로서, 자기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그 집념과 단호함이란.
무언가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단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김주원의 아버지에 대해. 그런데 설마...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있는 거야. 내가 네 아버지를 만난 것처럼..."
"먼저 도망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쪽이다."
말했잖은가? 내가 이 드라마를 정말 마음에 들어하는 이유. 기품이 있다. 철저히 그쪽 세계와 이쪽 세계를 나누는 우아함이 있다. 그들과 우리는 다르다. 그래서 판타지일 테지만. 문분홍여사는 김주원의 아버지 - 자신의 전남편에 대해서도, 길라임에 대해서도, 그리고 길라임과 결혼한 아들 김주원에 대해서도 철저히 다른 세계에 사는 존재로써 구분해 대한다.
만일 거기서 눈물을 흘리고 자신들과는 다른 삶을 살 것을 다짐하며 같은 선택을 하는 김주원에게 무너졌다면 얼마나 하찮은 신파가 되었을까? 참 걱정했었다. 설마 이렇게 끝나겠는가?
하지만 김주원 스스로도 말했지.
"어머니는 항상 옳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언제나 당당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머니는 가이드라인이 확실한 분이셨다."
정말 멋있었다. 마치 이야기속에 나오는 귀부인마냥. 고귀한 신분의 고집스럽고 단호한 우아함이 있었다.
끝까지 아들에게 집착하여 그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아들마저도 자신이 정한 선을 넘어서니 냉정하게 관계를 정리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이쪽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아들이 아니다. 자신의 아들이었지만 김주원의 말처럼 길라임의 남자다. 그쪽 세계의 사람이다. 설사 손주들은 받아들여도 김주원과 그 아내는 그래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다.
모순이라 여기겠지. 하지만 나폴레옹은 코르시카의 촌놈으로 유럽의 귀족들에게 비웃음을 샀을 뿐이지만 그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황가의 일원으로 그래도 귀족사회에서 대우받으며 망명생활도 보냈고 나중에는 황제까지 될 수 있었다. 김주원도 그쪽 사람이고, 길라임도 그쪽 사람이고, 그러나 그렇다고 손주까지도 그런 것은 아니다. 선이 분명하다.
아마 문분홍 여사가 아니었다면 시크릿가든의 엔딩은 참으로 썰렁했을 것이다. 마침내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부모의 축복마저 받으며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해피엔딩... 그것도 물론 나쁘지는 않지만 그동안 김주원과 길라임의 사이에 놓여 있던 장애들을 전제했을 때는 이 정도는 남겨두어야 마무리에도 여운이 있고 완성도가 있다. 계급의 차이란 그렇게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분명 한 번은 후회하는 때가 오겠죠. 그러나 그 후회까지도 안고 계속 살아 보려구요."
그것은 김주원 자신도 인정하고 있는 바였을 테고. 그에 비하면 아직 5년밖에 - 하긴 문분홍 여사도 10년만 더 살아보라 했었다. 10년을 살고, 다시 10년을 살고... 판타지라서인지 길라임은 그쪽 세계에 너무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지만. 김주원의 아버지는 도망갔는데 길라임은 꿋꿋이 버티며 여전히 행복하다. 역시 여자라서일까? 그러고 보면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은 항상 여자다.
아무튼 마지막에 드라마의 주제를 작가 스스로 길라임의 입을 통해 들려준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마법같은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은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이기도 하고,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며, 사랑이 더 깊어지는 순간이기도 하고,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으며 마법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김주원의 주치의이기도 했던 김주원의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그것은 기적이다."
사랑, 그것은 기적. 로맨틱 코미디가 추구하는 바다. 그 어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더라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사랑을 이루는 운명의 이름으로 우연조차 필연이 된다. 모두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꿈꾼다.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꿈꾼다. 정말 동화같은 사랑. 시크릿가든이란 바로 그런 꿈이 자라나는 자신만의 정원일 것이다.
김사랑은 여전히 예뻤고. 그런 식으로 끝이 나는가? 20살에 오스카를 만났다고 했으니 벌써 나이 서른다섯. 오스카 앞에 다시 나타났을 때도 벌써 서른이었다. 정말 긴 기다림이었는데. 따로 오스카와 윤슬의 관계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봤어도 좋았을 뻔했다. 썬과의 관계도 역시. 썬의 비중이 더 커졌으면 좋았겠지만 그러면 드라마가 지저분해졌겠지. 임종수 감독과 김주원의 동생 희원과의 관계 역시. 그래서 임아영의 분량이 후반들어 급속히 줄어든 것이 나로서는 아쉽기만 할 뿐이지만.
어쨌거나 표정이 참 예쁜 아가씨다. 무엇보다 표정이 예쁘다. 눈매가 애교스럽고, 눈을 살짝 움직여 표정을 짓는 것이 해맑으면서 순수해 보인다. 전신샷을 보면 그리 섹시할 수 없는데 얼굴만 놓고 본다면 마치 아이와 같다. 아, 이런 걸 청순글래머라 하던가? 거의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본 가장 큰 이유다. 가장 큰 성과이고.
"군밤은 나 맞아. 하지만 치즈케잌은 딴 년이야. 그래도 최우영 사랑한다!"
마지막에 오스카의 청혼을 받고 행복한 눈물을 그렁일 때에는 나조차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 앞으로 지켜보는 보람이 있으리라. 아름다운 매력적인 여성은 언제나 환영이다.
김주원이 외할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으려 찾아갔을 때,
"요즘 것들은 이렇게 제멋대로야. 나는 세 번이나 정략결혼을 하고서야 이제서야 사랑을 찾았다."
참 유쾌한 결말 아닌가. 끝내 나는 딸인 문분홍 여사의 편이라며 김주원에게 먼저 허락을 받고 오라고 하고, 외할아버지의 새부인은 그 문분홍 여사를 이해하며 동정하는 말을 하고. 처음에는 어쩌면 악역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짜릿하도록 깔끔한 드라마다. 그렇지. 그렇게 등장하는 사람마다 꼬여 있어서야 그런게 막장드라마겠지. 정상적이지만 다른 세계. 그것이 계급이라는 것 아닐까.
그나저나 마지막까지 판타지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은,
"어려서 실제는 한 번은 만났다."
순정만화의 기본공식이다. 아니 순정만이 아니라 로맨스물에 흔히 나오는 장면들이다. 아주 오래전 스쳐지나간 인연이 있었다. 단지 그때는 몰랐거나,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혹은 기억을 못하거나. 사랑은 운명이다. 우연처럼 보이는 사랑도 사실은 과거의 알지 못하는 순간 이미 시작된 필연이었다. 로맨틱 코미디는 미래의 이야기여도 결국은 과거의 이야기이기 쉽다.
어찌 보면 진부하지만 그러나 세련된 마무리가 있어 어색하지 않은 드라마였달까. 뻔한 스토리에 플롯에 시퀀스, 하지만 뻔하지 않게 마무리하는 능란함이 있었다. 배우의 연기 역시. 그보다는 그 자신의 매력이. 마지막까지도 그리 뻔히 보이는 내용이었음에도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작품의 힘일 것이다.
재미있었다. 마지막까지, 늘어지려나 싶은 것을 긴장을 놓치 않고 깔끔하게 훌륭히 마무리지었다. 수미일관하는 주제가 있고 완성도가 있다. 간만에 좋은 드라마를 보았다 생각한다. 수고했다.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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