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라는 게, 선거라는 게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군요..."
장일준과 단일화 협상을 끝내고 그 시점으로 잡은 충청권에서의 승리를 위해 박을섭과 손을 잡기로 결심했을 때,
그녀는 경쟁자인 김경모와 장일준마저도 인정했을 정도로 한 점 티끌없이 맑고 깨끗한 깊은 산속 계곡의 얼음만큼이나 올바랐던 정치인이었다. 불의를 용납하지 못했고, 불법과 비리를 용서하지 않았으며, 작은 잘못에 대해서조차 엄격했다. 그래서 장일준이 박을섭을 잡고자 그의 불륜사실을 폭로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뒤집어씌웠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누구보다 분노했으며 단호했었다.
하지만 정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리고 그것을 가르쳐준 것은 다름아닌 장일준이었다.
"단일화 철회 기사, 분명 장일준 의원 쪽에서 흘린 것 아니었나요?"
그녀는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우수한 검찰이었고 또한 정치인이었다. 장일준의 무고함이 드러나는 순간 그녀가 장일준의 단일화제의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은 이미 그 내막에 대해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것은 확인에 불과했다. 장일준이라는 정치가에 대한.
그 순간에조차 장일준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오히려 여유로웠으며 당당했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누구보다 진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이것이 정치라는 듯. 그녀가 박을섭과 손을 잡기를 결심한 이유다.
단일화에 대해 다시 협상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자기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장일준을 보면서, 뭐랄까 두려움을 느꼈달까? 아니면 동경이었을 것이다. 깨달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신희주는 진시므로 장일준을 이기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것은 미움도 분노도 혐오도 아닌 정치인으로서의 각성이었을 것이다. 눈앞의 이 대단한 사람을 이기고 싶다. 설사 자신이 가장 혐오하던 박을섭과 손을 잡는 한이 있더라도.
하기는 장일준이라고 다를까. 자신의 형을 죽인 사람이다. 자신의 형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도 그의 정치생명을 끝내는데 한 몫 도왔었다. 그러나 박을섭과 신희주의 단일화로 충청권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고 경선에서의 승리가능성이 희박해지자 그는 그 청암을 직접 만나기로 한다. 그를 만나 승리를 위한 도움을 얻고자.
청암이란 장일준에게도 신희주에게 있어 박을섭과 같은 존재다. 증오의 대상이며 혐오의 대상이며 타협할 수 없는 존재다. 아니 박을섭에게 있어 신희주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정치적인 스승이며 기반인 청암을 정계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만든 존재.
"저도 70살까지는 이 바닥에서 비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게 서로 타협하면서 하는 게 정치지."
김경모조차 구태정치의 상징이랄 청암을 만나러 찾아왔을 때, 그들은 모두가 괴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박을섭과의 단일화를 결심한 신희주나, 청암을 설득하고자 나선 장일준과 김경모, 앙숙이었을 신희주를와 손을 잡은 박을섭 모두에게. 장일준 역시 신희주처럼 박을섭을 끌어들일 고민을 했었다.
우리도 그렇지. 과거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정치인이 대선후보로 나섰을 당시 만나서는 안 되는 사람을 만나 오히려 바람이 꺾이기도 했었다. 쿠데타를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고 죽인 인사에게 정치가들은 선거 때만 되면 찾아가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린다. 심지어 그를 비판하던 젊은 정치인마저.
경선이 진행되는 것을 보라. 그런 무리수를 던졌어도 고향이니까 충청권은 박을섭을 지지한다. 너무나 당연하다. 고향 출신 정치인이니 어찌되었거나 그를 지지하여 표를 준다.
"우리가 남이가!"
사실상 정책이며 비전이며 거의 쓸모 없이 누가 누구와 손을 잡고, 누구의 지지를 등에 업고, 누구의 조직표를 끌어들이고 하는 것으로 선거의 판세가 결정난다. 현명한 유권자만이 제대로 된 정치인과 민주주의를 맞이할 자격이 있다. 그런 식으로 연고에 이끌리고 인정에 이끌리는데 과연 제대로 된 정치가 유권자와 상관없이 자리잡을 수 있을까?
아무튼 또 인상적이었던 것이,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단지 그런 의혹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사람들에게 믿어진다."
정치만이 아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난다. 자기 눈에만 보이는 연기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확신한다.
"지금 저 집에서 불을 때고 있구나."
아니라는 증거가 제시되었어도, 불을 땐 적이 전혀 없음을 보여주어도, 그러나 모든 것이 의도된 것이고 조작된 것이라. 거짓은 그렇게 사람들의 무모한 믿음 속에 진실이 되고 실체를 가지고 사실로써 여겨진다. 늘 보아오던 모습이 아니던가? 대중은 그렇게 현명하지 않다.
"그런 거짓으로 인해 선거가 결정된 예도 있다."
참 이런 게 정치구나 하고 느끼게 만드는 드라마다.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실제로는 이렇구나. 사실 들어서 알 뿐이지 그 내막까지 실제로 느끼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배우들의 연기로나마 그 실체를 보고 듣고 이해할 수 있으니.
다만 거슬렸던 점이라면 장인영의 어머니 주일란과의 문제에서 결국 장인영과 주일란의 눈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결국은 통속적인 멜로코드. 한참을 울며 사정하고 있는데 순간 그 장면만 스킵하고 싶었다. 이후 주일란의 인터뷰에 대해서도. 도대체 이런 게 왜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시원할 정도로 쿨하고 내정한 드라마에서 끈적거리고 거치적거리는 장면이었다 할 수 있다. 이후 장인영과 유민기의 이별 역시. 도대체 이 두 사람은 왜 나오는 것일까?
유민기 역의 제이는 연기에 기복이 심하다. 신인이라서일까? 감안하고 보면 나쁘지는 않지만. 일단 외모가 되고 분위기가 있다. 그에 비하면 장인영 역의 왕지혜는 뭐랄까 연기의 기본이 안 된 느낌? 장일준의 냉철함과 김경모의 알 수 없음에 비하면 그냥 애들이다. 청암의 연기는 뭐 말할 것도 없고. 드라마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또 한 요소들. 역시 무어니무어니 해도 드라마는 연기다.
재미있었다. 주일란의 인터뷰에서부터 장일준과 신희주의 단일화 논의, 여기에 단일화를 앞두고 신희주와 박을섭이 단일화를 하고, 위기에 몰린 장일준이 청암을 직접 설득하기로 하고, 더구나 청암을 만나러 가서 마주친 라이벌 김경모. 약간의 거슬림은 있었지만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그 도도한 흐름에. 이런 게 정치드라마구나. 멋있었다. 최고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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