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무한도전 - 데스노트, 무지 그리고 공포...

까칠부 2011. 1. 23. 06:53

공포란 무지에서 나온다. 알지 못하기에 무섭다. 어떻게 못 하니까.

 

공포란 실체가 없다. 개가 짖는 소리에 실체가 있던가? 벌소리가 난다고 실제 벌이 있던가? 차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어도 그것이 실제 차가 부서진 것은 아니다.

 

오르페우스가 하데스로부터 아내 에우리디페를 구해낼 때도, 이자나기가 이자나미를 요미로부터 구하려 했을 때도 끝내 그들을 방해한 것이 바로 그 공포였다. 뒤를 돌아볼 수 없다는 공포.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공포.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 어떤 위험이 있을 지 모른다. 두려움은 조급함이 되고 조급함은 끝내 입구에서 아내들을 놓치게 되었다.

 

앞만 보고 달리라.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라. 옆도 보지 말고 뒤도 보지 말고. 오로지 앞만 보고 있는 그 앞에 옆과 뒤는 곧 미지이며 공포가 된다. 당장에 스탭들을 모두 자기 앞으로 모이도록 시켰던 정형돈처럼. 아예 사정도 보지 않고 발길질을 하고 주먹질을 하던 박명수처럼.

 

그리고 공포는 마침내 불안을 낳고, 불안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다시 폭력을 낳는다. 그냥 학생이다. 지나가던 학생이다. 그러나 이미 생겨난 의심은 그 학생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혹시 관계가 있지 않을까? 혹시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들과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끝까지 의심하고, 확인하고, 그러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어쩌면 제대로 우리 사회를 디스한 것이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람들은 오로지 앞만 보고, 위만 보고 달릴 것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오로지 저 앞만을. 저 위만을. 옆도 보지 말고 뒤도 보지 말고 아래도 보지 말고. 더 많은 부와 더 많은 명예와 더 많은 권력과 더 많은 행복. 행복마저도 계량하며 남들보다 위에서, 남들보다 앞서며, 남들보다 더 대단하게.

 

나머지는 단지 앞으로 위로 가기 위한 수단이거나, 혹은 그것을 저해하는 요소일 뿐. 그래서 항상 의심하고 경계한다.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그리고 원망하고 미워한다. 앞으로 위로 가야 하는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들에 혹시 그것이 나에게 나쁘게 작용하지나 않을까.

 

타진요사태가 왜 그리 커졌겠는가? 박재범의 마이스페이스는 왜 그렇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겠는가? 무슨 일만 터지면 나오는 무슨무슨녀.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바로 내지르고 폭력부터 휘두르고 본다. 마치 개소리가 들리고 벌소리가 들리니 주먹과 발부터 나가던 박명수처럼. 그리고 정작 넘어진 여자작가들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만다. 돌아보면 지는 것이니까.

 

오로지 의심하고 불신하고 증오하고 원망하며 인정마저 저버렸을 때. 자기마저 속이고 오로지 앞만을 보고 달려갈 수 있을 때. 끝까지 그를 관철할 수 있었던 박명수와 정형돈만이 미션을 완수할 수 있었다. 노홍철 역시 미안해하고 두려워하면서도 끝끝내 눈을 주위로 돌리지 않았다. 결국 그것이 그를 함정으로 몰아넣었지만. 성공만을 보고 달려갔을 때 성공은 곧 함정이 되어 그를 잡아먹는다.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어느새 각박해지고 조급해진 우리 사회에 대한. 주위를 둘러볼 줄 모르고, 살필 줄 모르고, 이해하려 들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 대해.

 

먼저 낙오되고 다른 사람을 낙오시키기 위해 달려드는 멤버들 역시. 먼저 낙오되었기에. 먼저 미션을 수행했기에. 하기는 발단 자체가 길을 빼고 촬영을 했던 데 대한 불만이고 분노였다. 버려질 수 없다. 원망한다. 그렇게 하나하나 더해지며 마침내는 노홍철마저 마지막 순간에 끌어내린다.

 

앞부분의 일상을 바꾸는 것이야 지난주에 이야기했으므로. 정말 무한도전다운 미션이었다 할 수 있다. 간단하지만 그러나 심오한 룰. 짓궂은 제작진들과 그보다 더 짓궂은 멤버들. 가차없이 속이고 서슴없이 괴롭히며 악의없는 악의로써 서로를 공격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캐릭터와 그리고 웃음. 처음 정형돈과 하하, 박명수를 공격했던 개그맨들은 너무 서툴고 어색해서 재미가 덜했지만 멤버들끼리 서로 디스하고 공격할 때는 정말 바닥을 구르며 웃었다. 이런 게 예능이다. 이런 게 바로 무한도전이었을 터다.

 

심오한 주제같은 건 없었다. 그저 웃자고 게임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노래란 들려지면 그 순간 가수가 아닌 청자의 것이듯, 예능 역시 방송을 타는 순간 시청자의 것이 된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PD야 무슨 생각을 하고 만들었든 보는 입장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로 보여지고 받아들여지는가?

 

의미심장했다. 그리고 유쾌했다. 음울했고. 그러나 사악하게 밝았다. 마치 악동들처럼. 천진난만한 악의는 차라리 순수한 웃음으로 승화된다. 재미있었다. 정말이지 실컷 마음껏 웃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역시 무한도전은 이래야 한다. 동의하는 사람 많을까? 초심을 찾는다더니 진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 5년 전 도전했던 그 미션에 도전하는 장면이 앞에 있었기에 더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무한도전의 저력을 본다. 과연. 훌륭했다. 짧지만 알차고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