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이윤석의 경솔함...

까칠부 2011. 1. 24. 22:37

솔직히 옹호하는 글을 먼저 썼었는데, 역시 이런 쪽으로는 쓰기가 상당히 조심스럽다. 나는 별 것 아닌데 그러나 그런 것들로 인해서 상처받는 사람이란 것도 있는 것이거든. 특히 소외되었을수록. 소수자일수록. 차별과 편견이라는 폭력 아래 놓인 사람일수록.

 

맞다. 나는 어쩌면 다수에 속한다. 말로야 이해하네 뭐네 해도 결국은 당사자가 아니기에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흉내나 낼 뿐이다. 따라서 나는 당시 그렇게 심각하게는 생각지 않았었다.

 

"저러면 문제가 될 텐데...?"

 

하지만 이윤석의 태도가 진지했고, 말이며 행동이 신중했으며, 또한 피상담자가 고민하던 것도 그것이었으므로. 혹시 내가 동성애자는 아닌가 불안하고 두렵다. 인권선진국에서조차 소수성애자로서 자신을 인정하고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소수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공공연히 말하는 한국사회에서 그것은 과연 얼마나 큰 고민이며 걱정이었을까?

 

차라리 진짜 동성애자였다면. 동성애자임이 확실하게 드러났다면. 그랬다면 이윤석도 그리 말해주었겠지.

 

"괜찮아. 그건 그렇게 심각한 게 아냐."

 

그래서 그리 말했던 것이었다.

 

"괜찮아.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

 

동성애라기보다는 사춘기에 흔히 나타나는 성적정체성의 혼란에 가까워 보였으니까. 동성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직 성적정체성이 확고히 자리잡기 전 일시적으로 그런 과도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이윤석도 그리 물었던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그런 감정이 안 들고?"

 

그리고서 자기가 생각하기에 동성애라기보다는 일시적인 성적정체성의 혼란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을 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정상"이라는 말이 나오고 PD가 그것을 자막으로 받아적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나 역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렇다고 설마 동성애자인가 고민하는 학생에게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데,

 

"동성애는 이상한 것 아니야."

 

그건 마치 확인사살 같지 않은가. 어른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동성애라는 현실이다. 확실하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어야 하겠지만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데 그런 걱정을 미리부터 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확실해지면 그때 가서 다시 상담을 받으면 될 일이다. 아니면 아닌대로. 시간을 두고 하는 상담이라면 보다 깊이 넓게 들어갈 수도 있었을 테지만 불과 몇 분 만에 이루어지는 상담에서 그 이상 들어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배려 차원에서도 당시로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수에 속한 이른바 "일반인"의 시각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소수성애자 당사자나 그런 문제에 관심이 많은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거기에서 "정상"이라 말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정상"이란 "비정상"을 전제한 말인데 그러면 동성애란 "비정상"이냐? 워낙에 소수성애자들에 대한 폭력이 일상화되다 보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한 마디로 경솔했다. 당시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정황이 있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로 인해 상처를 입고 분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한 것이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그로 인한 결과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면 어찌되었든간에 남자가 욕을 먹는 것처럼 사회의 다수이고 주류인 입장에서 소수이고 비주류인 입장에 대해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잘못한 것이다. 몰랐다면 당연히 바로잡아야겠지.

 

지금이라도 공식적으로 사과와 해명을 하면 어떨까? 이윤석 자신이 나서서. 그리고 신원호PD역시. 자막으로 인해 일이 더 커진 책임도 분명 있으니까. 다음주 재방분에서는 자막을 달리 넣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원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선의로 그런 것인데 그것이 상처가 되었다면 죄송하다.

 

누구나 잘못은 저지른다. 나쁜 것은 잘못을 저지르는 그 자체가 아니다.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그것을 모르는 것이고, 잘못을 알고 나서도 반성하지 않는 것이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는 다짐이 있다면 물론 잘못 그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지만 더 이상의 잘못은 없을 것이다.

 

남자의 자격을 신뢰하기에. 그리고 누구보다 이윤석을 신뢰하기에. 그런 책임감과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본의가 아니었어도 그러나 결과적으로 잘못이었기에 인정하고 사과한다. 그리고 반성한다. 어쩌면 쉬우면서도 어렵고 어려우면서도 쉬운 일이다. 부디.

 

아무튼 결국 끝까지 한 번 써 보고 나서야 나도 깨달았다.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옳아도 결코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논리로써 따질 대상이 아니다. 합리란 논리적으로 타당한가가 아니라 이성에 비추어 타당한가일 것이다. 다시 반성한다. 나는 알지 못한다. 무지는 그 자체로 죄다. 다시 한 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