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놀러와 - 이 시대 최고의 가객 송창식...

까칠부 2011. 2. 2. 07:24

사실 노래실력이라는 게 어떻게 딱히 계량화해서 비교하기 어려운 게 있다.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가. 누가 더 고음이 올라가고 누가 더 음색이 좋고 누가 더 느낌이 좋고. 아무리 봐도 정말 노래 못하는데 듣고 있으면 감동이 있다, 그러면 역시 노래를 잘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가수들의 노래실력에 순위를 매겨본다면 항상 가장 높은 자리에 놓이는 것이 송창식 아닐까. 물론 임재범이며 나훈아며 이승철이며 무엇보다 가왕 조용필... 하지만 단순히 노래 한 가지만 놓고 보았을 때 송창식이 갖는 그 특별함을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는 아마 지금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미성과 처절한 비브라토 그리고 폭발적인 성량. 어떤 장르의 노래에서도 빛을 발하는 최고의 목소리. 그리고 기교마저 뛰어넘은 최고의 음색과 표현력.

 

슬픈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느새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다. 김태원이 왜 그렇게 비브라토에 집착하는가 그 모범답안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신날 때는 신나고, 유쾌할 때는 유쾌하고, 때로는 능글거리면서, 그리고 구수하게, 혹은 후련하게, 또한 서정적으로 감미롭게. 락인 듯 국악인 듯 포크인 듯 성악인듯 아마 존재하는 모든 장르의 발성은 다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윤도현이면 보컬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인다. 특히 록보컬다운 폭발적인 파워보컬은 가히 일품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가볍게 부르는 송창식의 목소리에 그냥 먹혀버린다. 한껏 힘을 주어 부른 노래가 송창식의 능글맞은 목소리에 그대로 삼켜진다. 장기하도 물론. 윤도현과 장기하라는 두 보컬이 그대로 송창식에게 묻혀 버린다. 세 사람이 부르는데 송창식의 목소리 하나밖에 안 들렸다.

 

하기는 그럼에도 송창식과 화음을 이루며 소리를 겨루는 조영남과 김세환과 윤형주라는 것은. 윤형주의 화음은 청량하고, 김세환도 단순히 목소리만 좋은 미성가수는 아니다. 조영남이야. 노래 하나만은 모두들 인정하니까. 단지 너무 제멋대로라는 점에서 마이너스가 있을 뿐. 어제도 김세환과 윤형주가 그 부분을 지적했는데. 기껏 연습 끝내고서 또 새롭게 어렌지한다고. 너무 자기 감성에 취하는 것도 보컬로서는 감점이 되는 부분이다. 단지 아무런 반주 없이 목소리만으로 맞춰도 그 아름다운 소리란. 바로 이런 게 40년을 묵힌 최고의 목소리라는 것이겠지. 세월이 음악을 더욱 아름답게 숙성시키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단지 노래만 잘하는가. 송창식의 노래 대부분은 송창식의 자작곡이었다. 그 아름다운 선율들이. 포크와 클래식과 발라드와 록과 국악을 넘나드는 그 독특한 음악세계는 송창식 자신에 의한 것이었다. 그것이 송창식의 감히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목소리에 실려 더운 사람들을 감동케 했던 것이었다. 그의 멜로디는 지금도 유효하다. 단지 그 누구도 송창식이 될 수 없을 뿐. 송창식은 송창식 단 한 사람 뿐이다. 송창식에 의해 쓰여지는 음악들도. 마치 또 하나의 멜로디처럼 들리는 가사들 역시. 그것이 송창식이었다.

 

아무튼 이장희의 말마따나 "어머니"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왜 이리 눈물이 나려 하는가. 지난번 추석특집으로 처음 세시봉이 나와서 "웨딩 케이크"를 불렀을 대 이하늘이 눈물을 지은 이유를 안다. 나 역시 눈물을 흘릴 듯 울컥 했었거든. 그렇지 않아도 가슴을 후비는데 윤형주의 미성이 등을 쓰다듬어주고 있으니. 그래도 눈물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남자인 까닭이라.

 

아쉽다면 그럼에도 윤도현과 장기하가 조금 더 세시봉 멤버들과 함께 하기를 바랬었다. 송창식만이 아닌 조영남과도, 김세환과도, 윤형주와도. 혹은 후배들의 세시봉에 대한 헌정이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으면 싶었었다. 명곡이 보통 많은가. 하기는 그랬다면 또 내용이 지나치게 산만해지고 방대해졌을 테지만. 역시 주인공은 세시봉인 게 좋았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하늘같은 대선배들과 후배들이 함께 할 무대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일 게다. 언제고 후배들과 함께 하는 콘서트를 볼 수 있을까?

 

이장희의 등장은 정말 좋았다. 간만에 듣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도 좋았고 - 역시 이장희도 비브라토가 일품이다. 이장희의 노래는 이장희가 아니면 소화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이장희의 목소리로만 표현되는 그 특별한 무언가가. 이장희만의 노래다. - 함께 듣는 강근식씨의 기타도. 그러고 보면 음악프로그램에서도 세션기타를 이렇게 강조해 보여주고 들려주지는 않는다. 송창식과 듀엣을 이룬 기타의 전설 함춘호와, 역시 이장희와 듀엣을 보여준 강근식. 이분들의 기타가 있었기에 음악은 더욱 아름답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미성의 보컬에도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최고의 기타가 있기에 음악은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남자가 남자에게 "I Love You"라 하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 닭살스러울 수 있을 텐데도, 그러나 역시 진심이 담겨 있기에. 40년의 우정과 서로에 대한 진정한 존경과 사랑과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의 추억이 있기에. 서슴없이 서로에 대해 팬이라 말하고, 존경한다 말하고, 자랑스럽다 말하고, 사랑한다. 그것은 어쩌면 가장 고귀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존경의 표현이 아닐까. 김나영의 눈물은 어쩌면 음악보다도 더 아름다운 그 한 마디에 대한 또한 동경이며 경외일 것이고.

 

이제는 잊혀져가는 옛팝송들도. 록의 기원을 이루는 60년대 로큰롤에서부터 발라드의 뿌리가 되는 달콤한 사랑노래들, 그것을 번안하여 부르며 한국의 대중음악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던 그 역사가 그 자리에 있었다. 함께 부르던 팝에서 현대 한국의 대중음악이 나왔고, 그 번안해 부르던 가사에서 현대 한국 대중음악의 정서가 완성되었으며, 그들 자신에 의해 쓰여지고 불려진 노래들로 인해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정서를 담아 부르는 바로 우리의 노래들로 인해서.

 

윤도현이 말한 것처럼 거대한 강물이 도도히 흐르는 것 같다. 이미 그들은 바다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바다. 87년에도 송창식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최고의 록넘버 가운데 하나인 "담배가게 아가씨"를 내놓았고, 윤형주도 "고백"이라는 노래로 조용필이 전성기를 열어가는 시대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70년대 청년문화의 결실을 80년대로 전해주었고, 그것은 80년대를 거쳐 90년대로 넘어오며 지금의 한류라 불리우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었다. 팝송은 잊혀지고 도리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한류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대중음악을 찾아듣게 된. 그분들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 깊은 기원의 어딘가는 그분들에게 분명히 닿아 있다.

 

아름다운 음악이 있고, 아련한 옛추억이 있고, 촉촉히 젖어 흐르는 오랜 남자들만의 우정이 있었고, 음악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애정과 서로에 대한 존경심. 항상 만나도 설렌다는 조영남의 말처럼. 나 역시 저분들의 음악을 들을 때면 지금도 설렌다. 아름다움은 시효가 없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터리오 세시봉의 멤버 이익균씨, 세시봉의 막내 양희은씨, 오랜 동지이자 친구 이장희씨, 기타의 전설 함춘호씨와 또 강근석씨. 후배로서는 윤도현과 장기하가 있었고, 또 DJ DOC의 이하늘과 리쌍의 길이 있었다. 어느새 팝송을 따라부르는 끝세대 유재석도. 음악을 참 좋아하는구나. 언제고 음악프로그램의 MC를 맡는 유재석도 기대해 본다.

 

안타깝게도 설연휴를 앞두고 이런저런 일들로 본방을 보지 못한 터라. 그러나 내내 마음은 그리로 가 있었다. 겨우 끝무렵을 보고, 다시 새벽부터 일어나 처음부터 보고. 설을 앞두고 참으로 값진 선물이 아니겠는가. 방송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놀러와라는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감사한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