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카라 박규리 왕따설 - 그게 아이돌이다...

까칠부 2011. 2. 6. 15:03

아이돌이란 오전에 급히 쓰느라 빼먹은 것 같은데 투사의 대상이다. 동경이란 곧 투사다. 내면의 욕구와 추구를 특정한 대상을 통해 구체화하여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신해서라도.

 

당장 생계형이라는 것만 해도 그렇다. 생계형에 사람들이 열광하며 수많은 판타지를 생산한 것은 그러한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시크릿을 포함 수많은 후배 걸그룹들이 생계형을 표방하며 나온 것도 그러한 대중의 추구를 읽었기 때문이다. 화려함과 대단함, 혹은 우정이나 의리, 근성, 열정, 성실함, 선량함, 순수함... 그렇게 생산되고 그렇게 포장되고 그렇게 소비된다.

 

그리고 그것은 곧 그 역도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아이돌에게 안티란 그래서 필수와 같은 것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판타지가 존재한다면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판타지도 존재한다. 그것은 내면의 네거티브적 욕구와도 통한다. 실제 그래서가 아니라 그러기를 바래서.

 

이번 카라 사태의 경우는 그런 네거티브적인 상상을 발휘하기에 아주 좋은 소재다. 그동안 다양한 판타지를 카라를 통해 보았듯 부정적인 사건은 부정적인 상상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게 더 재미있다. 막장드라마가 재미있는 것은 그 막장스러움이 자기의 부정적인 상상 - 즉 욕구를 아무 죄의식없이 투사하여 버릴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쓰레기통이다. 이제까지 아이돌로써 긍정적인 판타지로 투사되었다면 부정적인 사건은 그러한 부정적인 욕망을 대상에 쿠사하게 된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무학대사의 말을 떠올려 보면 된다.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

 

자기란 타인을 비쳐보는 거울이며 타인을 자기를 비쳐보는 거울이다. 타인을 통해 무엇을 보는가는 그 자신의 내면에 무엇이 존재하는가와 같다. 앞서 아이돌에 자기의 욕구와 추구를 투사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카라가 보이는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찾아보며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리고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어떤 추측들을 기정사실화하고. 단지 재미있으니까. 그렇게 여기고 싶으니까. 그런 빌미를 카라 자신이 제공한 것이고, 그것은 또한 카라의 아이돌로서의 대중적 이미지의 한 부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제 와서 하지 말라? 어림도 없는 소리다. 이미 상상의 불은 지펴졌다. 마치 구하라와 한승연의 다정한 모습을 보면서 짐짓 부정적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처럼 그들은 끊임없이 카라를 보면서 그 사실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게 연상하고 여길 것이다. 그것은 이미 카라의 일부가 되었다.

 

어쩌겠는가? 어쩌기는 어째. 안고 가야지. 사실은 진실에 우선한다. 믿음은 사실에 우선한다. 믿음을 바꿔놓을 수 있는 것도 사실 유일하게 사실 뿐이다. 그래서 말한 것이다. 섣부르게 친한 척 하지 말라고. 부정적인 상상은 그런 개연성을 통해서도 강화되고 하니까. 그보다는 리얼리티 등을 통해서 봉합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쪽이 훨씬 설득력 있을 것이다. 사람은 리얼보다는 리얼리티를 더 믿는다. 믿음이 항상 사실에 우선하는 까닭이다. 일본에서 그와 관련한 리얼리티를 하나 했으면 좋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게 아이돌이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상상케 하는 것. 성실할 것이다. 순수할 것이다. 가난할 것이다. 생계형일 것이다. 근성이다. 근거는 없어도 그렇게 여겨진다. 그것이 아이돌의 이미지다. 뭐랄 것인가.

 

아이돌이란 현대 자본주의와 쇼비즈니스가 미디어와 만나 만들어낸 욕망의 정화다. 말 그대로 우상이다. 우상이란 대중의 욕망에 기생해 존재한다. 부정할 것인가? 받아들일 밖에. 차라리 판타지를 만들라.

 

기획사와 멤버 사이에 갈등하는 박규리와 그런 박규리에 실망하며 집단으로 행동했지만 미안해하는 멤버들과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멤버들에 대한 의리와 카라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는 구하라. 어색하지만 그러나 서로의 진심을 알기에 마침내 다시 만났을 때 전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다.

 

그럴싸하지 않은가? 사실여부와는 상관없이 바로 이런 게 먹힌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TBC에서 우라카라 스페셜로 한 번 내보내도 괜찮을 것 같다. 우정에는 항상 갈등과 위기가 존재하는 법이니. 설득보다 오히려 소비할 수 있는 다른 판타지를 보여주는 것이 더 확실하다.

 

대중의 욕망의 첨단에 존재하는 카라가 대중의 욕망을 부정해서야. 판타지를 부정하려 해서야 그것이 과연 아이돌일까. 팬심이라는 게 결코 그러지 못하겠지만. 확실히 내가 팬이 아님을 느낀다. 팬이라기엔 하는 소리들이 참 치사하다. 너무 세파에 찌든 탓일까. 그러나 그것이 또 정답에 가까우니.

 

안고 가는 것이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그 안에서 방법이 보일 것이다. 대중이 카라를 통해 보고자 하는 것들과 보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보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아이돌이다. 어려울 것 없다. 아이돌이다.